IRA 우려가 현실로.. 진짜 대응은 지금부터다

입력 2022. 10. 7. 18:33 수정 2022. 10. 12.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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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외교부도 산업부도 IRA 입법 동향파악 못 해
ㆍ개정 어려워… 시행령·‘FTA 국가 유예’ 협의를

“정부가 인터넷 검색만 해도 찾는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전혀 관심을 안 가지고 내용도 모르다가 이제 와서 대응한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다.”(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9월 13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입법 기념행사에서 시민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 워싱턴DC 로이터=연합뉴스


“우리와 같은 입장인 일본·독일·유럽연합(EU)의 (IRA) 대응과 비교하면 (정부의) 인지 시점이나 대응 강도·수준·시기 등에서 우리가 앞서고 있다. 통상당국에선 가장 빠르고 높은 강도로 대응하고 있다.”(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IRA 폭탄’은 일찌감치 예고됐다. 우려했던 대로 국내 전기차 산업 피해가 현실이 됐다. 정부 대응은 기민했을까. 정부는 IRA 공개 후 시행까지 급작스럽게 진행됐음에도 비교적 발 빠르게 대응했다고 강조하지만, 정부의 부실한 대응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향후 IRA 하위법인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우리 측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의 대응 능력에 따라 피해가 더 커질지, 위기를 기회로 바꾸게 될지 판가름 날 전망이다.

‘BBB에서 IRA까지’ 정부 대응 어땠나

정부는 IRA의 모태가 된 ‘더나은 재건(BBB)’ 법안이 발의될 당시인 지난해 9월부터 적극적인 대응을 해왔다고 항변한다. 주미대사관은 법안 발의 한 달 후인 지난해 10월, 일본과 EU 등 25개국과 공조해 미국 의회에 “해당 법안이 국제 자동차기업과 수입업자에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된다”는 내용의 공동서한을 발송한 바 있다. 미국산 전기차에 최대 1만2500달러의 세액공제를 보장하는 내용 등을 담은 3조5000억달러 규모의 BBB 법안은 지난해 11월 미 하원을 통과했다. 상원에서 처리가 안 된 후 7400억달러 지출 계획을 담은 IRA로 수정·축소됐다.

올해 7월 27일 공개된 IRA 법안은 미 상원(8월 7일)과 하원(8월 12일)을 통과한 후 지난 8월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서명으로 발효됐다. 정부는 IRA 공개부터 시행까지 이례적으로 빠르게 처리됐다고 설명했다. 방문규 국무조정실장은 10월 4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미 행정부가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전격적으로 처리했다. 이를 두고 미 정치전문매체인 ‘폴리티코’도 ‘best kept secret’(최고의 기밀)이라고 보도했다”고 전했다. 법안 공개 후 2주 만에 미 의회 문턱을 넘어서고 그 즉시 발효되면서 정부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는 ‘항변’이다.

그럼에도 적지 않은 성과를 보였다고 정부는 강조했다. 당초 BBB 법안에는 1대당 7500달러(약 1000만원)의 전기차 세액공제와 함께 노조가 결성된 미국 내 공장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한해 1대당 4500달러의 추가 세액을 공제한다는 항목이 포함돼 있었다. 정부의 지속적인 외교 노력으로 우리 입장이 반영되면서 ‘노조가 있는 미국 내 공장 생산 전기차에 대한 추가 세액공제’ 조항이 빠졌다고 한다. 현대차도 도요타와 테슬라처럼 미국 공장에 노조가 없는 만큼 우리한테도 이익이라는 설명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과 사전환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속속 드러나는 ‘부실 대응’ 정황

정부 설명과 달리 최근 국정감사에서는 정부의 부실한 대응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주무부처인 산업부와 외교부 등의 IRA 입법 동향파악이 전무했다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신영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산업부는 대미통상 네트워크 구축, 경제통상 분야 미 의회자문, 한미 경제효과 홍보 네트워크 등을 위해 미국 로펌(자문회사) 7개사와 자문계약을 맺고 있다. 이들과 지난 4년간(2019~2022) 맺은 자문계약 규모는 약 351만달러(약 50억원)다. 신 의원은 산업부가 제출한 자문내역을 인용, “IRA 통과로 인한 자동차 보조금에 관한 분석이 IRA 법안 통과 이후에 이뤄졌으며, IRA의 모법으로 통하는 BBB 법안에 대해 자문을 제공한 로펌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이에 대해 산업부는 “안건이 생길 때마다 이들 로펌들로부터 충실히 자문을 받았으며, IRA 사안 발생 직후 법안 분석과 효과 등에 대해서도 자문 요청을 했다”고 해명했다.

외교부도 마찬가지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7월 27일 IRA가 공개될 때까지 동향파악도 하지 못했다”면서 “(외교부의 국회 보고에 따르면) ‘주미한국대사관 내 상무관실에서는 분쟁과 관련해 자문회사를 쓰고 있지만, IRA 등 입법 동향파악을 위해 별도로 상세하게 분석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 코리아 소사이어티 등도 ‘미 의회 코리아 스터디그룹(CSGK)’을 만들어 2018년부터 현재까지 경비로만 45만4300달러(약 6억4380만원)를 쓰고 있지만, 정작 CSGK 소속 미 의원 60명 중 현재까지 한국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의원은 단 한명뿐인 것으로 전해졌다.

IRA의 갑작스러운 미 의회 처리 때문에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는 정부 주장에 대해서도 반론이 나온다. “외교부가 지난 3월 BBB 법안의 차별적 내용과 미 의회 입법 동향 등을 담아 대통령직인수위에 보고”(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했고, “IRA 공개 하루 뒤인 7월 28일(현지시간)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에서 생산된 전기차의 경우 7500달러 보조금 지급’ 발언 영상이 유튜브 등 플랫폼에 공개됐음에도 코트라(KOTRA) 측은 7월 29일 전기차 보조금 내용이 빠진 소위 ‘깡통 보고서’만 코트라 본사에 보고했다”(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것이다. 8월 3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방한 이후 보인 정부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면담이 불발된 이후 8월 4일 이뤄진 둘의 전화통화에서도 미국 측에 의견 표명 또는 우려 전달 등 우리 측의 즉각적인 대응은 없었다. 방문규 실장은 10월 4일 국감장에서 “8월 4일에 (주미대사관의) 전문이 왔지만, 그 당시엔 펠로시는 하원의장이고 (IRA는) 상원에서 통과도 안 된 법안”이라며 “이제 발의돼 상원에서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법안에 대해 하원의장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건지…”라고 했다.

쉽지 않은 법 개정, 대안은 뭘까

오는 11월 미 중간선거 이후 IRA 전기차 원산지 규정(북미지역 최종 조립 조건)을 일부 유연하게 적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이미 미 상원에서는 세액공제 3년 유예를 골자로 하는 IRA 개정안이 발의(스테판 워녹 민주당 조지아주 상원의원)되기도 했다. 미국 내 우호적인 여론도 정부가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는 이유 중 하나다. 월스트리트저널은 10월 4일(현지시간) “IRA는 북미산 전기차에만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탓에 EU와 일본산 자동차도 차별을 받게 됐지만, 한국의 반발 여론이 가장 크다”고 적었다. 바이든 대통령도 한국 내 악화된 여론을 의식한 듯 달래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바이든 대통령은 10월 4일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에서 “인플레 감축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우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한미 간 솔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협의를 지속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IRA 개정이 쉽지 않다는 게 미국 현지나 국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정만기 무역협회 부회장은 10월 4일 “미 중간선거 이후 IRA 개정이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쉽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했다. 그는 마트 블러트 미국 자동차정책위원회(AAPC) 회장 등을 인용해 “IRA 개정이 쉽지 않을 것이며, (연내 마련할 것으로 보이는) 미 재무부의 세부 지침(가이드라인) 마련 과정에서도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전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미 의회 문턱을 넘고 미 대통령이 서명까지 한 법안인데다 IRA 시행으로 바이든 대통령 지지율이 오르는 등 여러 상황을 감안했을 때 (한국을 위해) 예외 규정이나 특례 조항을 삽입하는 법 개정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월 20일 인천국제공항 제2여객터미널에서 미국과의 인플레이션 감축법과 반도체법, 바이오 행정명령 등 양국 간 주요 현안 협의를 위해 미국 워싱턴으로 출국하고 있다. / 연합뉴스


현실적인 대안으로 IRA 시행령에 우리 정부나 기업의 입장을 담는 방식은 가능하다. 정부도 이런 방안을 염두에 두고 한미 고위급 채널을 가동 중이다. 산업연구원(KIET)도 9월 29일 펴낸 ‘미국 IRA의 국내 산업영향과 시사점: 자동차와 이차전지 산업을 중심으로’ 보고서에서 “미 재무부가 후속 가이드라인을 2023년 이전에 마련하기로 돼 있는 만큼 양국 간 실무협상을 통해 동 가이드라인에 우리의 이익이 최대한 확보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적었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도 검토할 수 있는 카드다. IRA의 보조금 조항이 “다른 나라 수입품을 자국산 또는 특정 국가 수입품과 차별 대우하지 말아야 한다”는 WTO 규정을 위반했다는 논리를 펼 수 있다. 다만 실익이 없다는 의견이 많다. 미국이 WTO 신임 위원을 선임하지 않는 등 WTO의 대법원격인 상소기구가 수년째 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제소 이후 최종 결심까지 장기간 소요될 수밖에 없어 그사이 국내기업들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밖에 없다. 정무적인 판단도 고려 대상이다. 산업부는 지난 8월 말 내부 보고서에서 “(WTO에 제소할 경우) 미국을 WTO에 제소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과 공조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리와 같은 입장인) EU도 우려하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적었다.

자유무역협정(FTA) 체결국 간의 차별 요소를 적극 부각시킬 필요는 있다. 김필수 교수는 “EU나 일본은 미국과 FTA 체결이 안 돼 있지만 우리는 미국과 FTA를 체결했다. 이번 ‘IRA 북미’ 지역에 포함된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FTA 체결국인데, 이들과 마찬가지로 미국과 FTA를 체결한 한국이 역차별을 받는 모양새를 적극 어필하는 것이다. 한국에 (IRA 개정을 통해) 특혜를 주기 어렵다면 FTA를 체결한 국가들에 대해 유예기간을 두는 방안을 한미 간 적극 협의하는 방법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했다. IRA 개정에 반대하거나 한국에 우호적인 미국 내 여론을 민관이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아울러 배터리 소재와 부품 등 공급망 다변화도 서둘러야 한다. 황경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IRA에서 규정한 배터리 소재와 부품 등 조건을 맞추려면 공급망 다변화가 시급한데, 문제는 신규 광산 개발이나 투자는 리스크가 커 기업이 주도적으로 끌고 가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공급망 다변화를 위한 정부의 금융과 세제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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