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의 그림] 숨구멍 뚫어놓은듯 올록볼록..건물전체가 '살아있는' 예술품
진달래&박우혁의 '스킨앤드셀'
10층 높이 건물 전면 뒤덮어
원판 디스크 12시간마다 회전
로비 천장엔 보석 이미지 모빌
화장실마저 미술작품으로 전시
"그림 덕에 더 머물고 싶은 곳"
미술 작품이 된 건물이 있다. 프랑스 파리 퐁뇌프부터 개선문까지 통째 천으로 감싸 ‘포장’해버린 대지미술가 크리스토(1935~2020)와 잔 클로드(1935~2009)의 작업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개념과 방식이 전혀 다른 얘기다. 서울 강남구 삼성역과 코엑스 주변에서 단연 눈에 띄는 곳, 하나금융그룹 플레이스원(PLACE1)이다. 균일한 재료로 만들어진 매끈한 표면의 건물들과 달리 올록볼록한 외관, 하얀 바탕 위에 솟은 알록달록한 색감이 쳐다보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곳이다.
혹자는 “문어의 빨판 같다”고도 말하는 둥근 원판 설치 작업으로 건물 전체를 뒤덮은 이는 타이포그래피 디자이너이자 예술가 듀오 진달래&박우혁이다. 10층 높이의 건물 전면과 양 옆면이 작품이니, 펼쳐진 면적만 놓고 본다면 가히 서울 도심에서 최대 규모일 듯하다. 지름 2m의 원형 아트디스크가 건물 앞면부터 양옆에 총 138개 설치돼 있다. 원 전체가 연보라색 혹은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채워진 게 있는가 하면, 절반 혹은 케이크 한 조각만큼만 색을 입힌 것들도 군데군데 보인다. 빠듯한 시간에 쫓기며 살아가는 도시인이라면 그 색면의 크기가 업무 시간, 휴식 시간, 수면 시간으로 느껴질지도 모른다. 옆면은 흑백의 다양한 패턴을 가진,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는 아트디스크가 빼곡히 각자의 자리를 차지했다.
작품의 제목은 ‘스킨앤드셀(Skin&Cell)’. 진달래와 박우혁 작가는 “성장과 분열을 반복해 형성된 다수의 세포로 이뤄진 집합체의 건축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표피는 물·불·돌·바람·모래 등 자연을 이루는 5원소를 추상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소개했다. 쉽게 말하자면 색상 면이 피부, 흑백 면이 세포인 셈이다. 이들 원판형 아트디스크는 12시간마다 180도 회전하며 앞·뒷면을 바꾼다. 건물 전체가 작품인 동시에 움직이는 작품이라는 뜻이다. 원판이 회전하는 순간 지름 2m의 벽체가 잠시나마 활짝 열리게 된다. 그 틈으로 공기가 드나든다. 성장하는 세포이자 숨을 쉬는 피부다. 작가들이 구상 단계에서 그린 형태가 있지만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이나 인쇄물의 망점(網點)처럼 138개의 원을 통해서만 모습을 보여주고 그마저도 각자 다른 시간대로 움직이며 어긋나기에 전체를 한눈에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보이는 게 전부도 아닐뿐더러 본다고 다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2017년 이 건물의 리노베이션을 주도한 하나증권 클럽원wm센터의 전병국 부사장과 아트 디렉터들은 건물 내 ‘버려지는’ 공간들을 예술로 채워 사람들이 조금 더 머무를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자 했다. 벽, 천장, 바닥, 엘리베이터 통로 등이 그런 곳이다. 쓸모없는 곳에 예술의 의미를 담았더니 기다리고 대기하는 자투리 시간이 생각지 못한 영감과 재미로 채워졌다. 예탁 자산 30억 원 이상인 초고액자산가(VVIP)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원’ PB센터만의 특별함이기도 하다.
1층 정문으로 들어서면 로비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린 보석, 팔찌, 미술품, 고층 건물 등을 만날 수 있다. 값비싼 것들의 향연인가? 설치 작품 ‘모빌2’의 작가 권오상은 “영국의 유명 디자인·건축 잡지 ‘월페이퍼’에서 추출한 이미지들을 확대 제작해 모빌로 만들었다”면서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구독하는 이 잡지에 소개된 것들은 사람이 만든 그 달의 가장 ‘그럴싸한’ 물건들이라 생각해 선택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가장 탐내는 물건들이지만 잡지에서 뽑아낸 납작한 이미지는 허상일 뿐이다. 심지어 손에 닿지도 못하는 천장에 매달렸다. 세계화와 자본주의에 대해 ‘깨어 있는’ 작가의식이 느껴지는 동시에 욕망하는 것을 붙잡기 위해 애써보라는 응원의 목소리가 함께 들린다. 권 작가는 ‘육중한 입체’라는 조각의 본질에 저항하듯 가벼운 스티로폼에 평면 이미지인 사진들을 수백 장 붙여 만드는 ‘사진 조각’으로 유명하다. ‘모빌’은 그의 조형 언어가 확장된 형태다.
여기는 주차장도 예술이다. 로비에서 부드럽게 이어지는 지하 1층의 주차장은 한쪽 벽이 통유리로 된 슈퍼카 전시장을 겸한다. 화려하다 못해 현란한 바닥은 작가 빠키의 ‘원형의 진폭과 선의 층위들’이다. 색과 선의 조합 자체가 속도감을 형성한다. 안쪽 벽면에서는 미디어 아티스트 정정주의 ‘트랜스퍼(Transfer)’를 만날 수 있다. 작품에 빠져드는 동안 잠시 테라스와 바닷가를 한가로이 거니는 듯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
엘리베이터홀 쪽으로 걸어가보자. ‘통합관제실’이라 거의 항상 닫혀 있는 육중한 문이 있다. 문 안으로 또 다른 문이 나타난다.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들기도 하고 ‘문 속의 문’이 차례로 열리고 닫힌다.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줄 듯한 가상의 문이자 공간이 펼쳐진다. 방탄소년단(BTS)의 글로벌 아트 프로젝트에도 참여한 적이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 강이연의 ‘표면(Surface)’이다. 새로운 차원으로 연결되는 듯한 가상의 공간 한 층 위에 전시된 스페인 태생의 작가 파블로 발부에나의 작품과 번갈아 감상하면 더 즐겁다. 복도와 기둥에 대한 연구를 미디어 아트로 구현한 작품인데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을 공간과 대상을 빛을 이용해 아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발부에나의 재능이다.
지하 2층에서 9층까지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후면에도 작품이 숨어 있다. 검은 그물망에 탁구공 크기의 플라스틱 공을 잔뜩 채워 넣은 최성임의 ‘빈 나무(The hollow Tree)’다. 작품은 11개 층 높이를 길게 관통한다. 가볍고 덧없는 소재로 만들어졌지만 강한 의지와 생명력을 보여준다. 각 층의 유리 벽면은 김용관, 박윤경, 파라모델, 제이미 리 등이 시트지 작업으로 풍성함을 더했다. 화장실에서도 예술을 경험할 수 있다. 9층 화장실은 박정혁, 8층 인세인박, 2층 이상원, 1층 이중근, 지하 1층은 염지희의 작품이다. 그림 덕에 찾아가고 싶고 더 머무르고 싶은 공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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