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용어의 조건] ③ "'낯설다'와 '어렵다'는 별개..쉬워야 한다는 편견 버려야"

고재원 기자 ,이영애 기자 2022. 10. 7.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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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내 '원숭이 두창' 확진자가 발생하여 관련 안내문이 인천공항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모습이다. 한연합뉴스 제공

“’쉽다’의 반대는 ‘어렵다’도 있지만 ‘낯설다’도 있습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말 서울 중구 모처에서 진행된 국어문화원연합회와 동아사이언스가 추진하는 '쉬운 우리말 쓰기' 자문위원 좌담회에서 “한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전문 분야 용어를 듣고 알아듣기를 바라는 게 문제일 수도 있다”며 이 같이 말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로 처음 들어보는 익숙치 못한 용어들이 불쑥 등장했다. PCR(유전자증폭검사), 감염재생산지수(R값) 등 의과학 용어들이 일상으로 들어오며 혼선을 겪기도 했다. 방역 전문가들은 용어로 인한 이런 혼선들은 국가의 방역정책이나 개인의 건강에 치명적 타격을 준다고 분석한다. 올바른 이해가 결국 질병 감염률을 낮추는 것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최대한 용어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2021년 동아사이언스가 오픈서베이에 의뢰한 설문조사 결과 중. 출처 코로나19 관련 용어 10개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지도와 이해도 조사 (조사대상 1000명)

다만 이런 이해를 높이는 방안이 무조건적으로 ‘쉬움’만 추구해서는 안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명예교수는 “쉽다는 말에 굉장히 거부감을 갖고 있다”며 “세상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왜 자꾸 쉬운 말을 써야 하고 쉽게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어려운 것은 도전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필요가 있다”며 “항상 의과학 용어는 쉬워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 반면 정치인들은 ‘윤핵관’ ‘개딸’과 같은 알아듣지 못할 용어를 쓰는데 이게 합리적인지 의문이 든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낯선 용어와 어려운 용어를 구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한글이 무조건적으로 낯설지 않거나 어렵지 않다는 편견도 버려야 한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조영욱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는 “4판 의학용어 사전에서 최대한 한글로 바꾼 적이 있다”며 “하지만 5년 후 이 결정을 다시 뒤집었다. 이미 익숙한 한자어를 굳이 한글화해 더 어려운 상황을 만드는 사례가 됐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윤경식 경희대 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교수(경희의과학연구원장)도 "의학에서는 해부학 용어의 많은 부분이 한글화됐다"며 "해부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은 한자어와 영어가 익숙한데 이를 다시 한글로 바꿔 설명하는데 되려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가령 ‘키오스크’란 용어가 있다. 정보통신기술(IT)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며 터치스크린 방식의 정보전달 시스템인 무인단말기 키오스크가 대규모로 사회에 보급됐다. 조 학술이사는 “키오스크란 용어는 무슨 용어인지 이해는 못해도 어떤 것인지는 안다”며 “익숙한 영어나 한자어를 바꾸는 것은 오히려 낭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QR코드'란 용어도 하나의 사례다. QR 코드의 'QR'은 '빠른 반응(Quick Response)'의 줄임말이나 대부분의 경우 이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러나 QR코드는 더이상 낯선 용어가 아니다. 생활 속에 깊숙히 들어와 익숙한 용어가 됐다. 굳이 이 용어를 한글화한다고 '빠반'으로 바꿀 필요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용어 순화에 대한 이유와 목표를 명확히 설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왼쪽부터)임시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를 하고 있는 의대생, 코로나 발열 체크를 하고 있는 어린이, 재택치료 행정안내센터의 모습. 연합뉴스 제공

쉽다의 반대 개념인 '어렵다'와 '낯설다'를 모두 충족하는 '삼중수소'란 용어도 있다. 삼중수소는 방사성 물질로 인체에 영향을 주는지 여부로 쟁점이 되는 물질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여파로 파괴된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다이이치 원전) 오염수에는 이 삼중수소가 포함돼 있다.

이덕환 명예교수는 "삼중수소는 삼중수소다"라며 "이런 용어들은 용어 순화의 필요성이 없다"고 말했다. 최무영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역시 "낯선 용어 중에서도 잘 정착되는 용어가 있다"며 "모든 용어를 다 바꿀순 없다"고 덧붙였다.

‘2022쉬운우리말쓰기' 자문위원들이 이달 20일 오후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좌담회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니다.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편집자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우리 사회엔 방역과 백신 접종 등과 관련한 의과학 용어들이 홍수처럼 쏟아졌습니다. 정부나 의과학계는 어느 때보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정체 불명의 감염병 실체와 대처법 찾기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과학 분야 전문 용어가 수도 없이 대중에게 노출됐고 새로운 개념의 방역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국어문화원연합회와 함께 3년째 의과학용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찾는 기획을 진행해왔습니다. 올해는 세대간 격차를 넘고 소외계층도 이해할 수 있는 의과학용어 활성화 방안을 모색합니다.

[고재원 기자 ,이영애 기자 jawon1212@donga.com,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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