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기자에게 물었다 "왜 언론을 떠나나요?"
경향신문이 창간 76주년 기획으로 기자들의 ‘탈언론’ 행렬을 다뤄 눈길을 끈다. 경향신문은 지난 6일 창간기획으로 별지 6~7면 두 개 면을 털어 ‘기렉시트(기자와 쓰레기를 합친 기레기+엑시트(탈출))’와 언론에 대한 고소·고발 문제를 다뤘다. 젊은 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나는 문제는 최근 2~3년 사이 본지를 포함한 미디어 전문지들이 주요 이슈로 다뤄왔으나, 주요 언론사에서 ‘직접’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적은 거의 없었다. (기사 보기: ‘기렉시트(기레기+탈출)’ 탈출구는 공익·신뢰)
경향신문은 젊은 기자들이 언론을 떠나는 이유를 찾기 위해 서울 주요 신문·방송·통신사의 3~13년차 취재기자 17명을 대상으로 일대일 심층 전화인터뷰를 했다고 밝혔다. 조사 참여자는 신문사 9명·방송사 6명·통신사 2명이었고, 20대 1명, 30대 15명, 40대 1명이었다.
조사 참여자들은 “언론사들이 수용자 및 미디어 환경 변화 대응에 실패했다”는 점을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1년 언론 수용자 조사’에 따르면 종이신문 이용률은 지난해 8.9%에 불과했고, 네이버 등 인터넷 뉴스 이용률은 79.2%, 유튜브 등 동영상 뉴스 이용률은 26.7%로 매해 성장 중인데 언론사들의 주 수익모델은 종이신문에 게재되는 대기업 광고라는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경향은 조사 참여자들이 “수익모델 창출 실패를 ‘절망’으로 인식했다”고 전했다. 기사에서 한 7년차 기자는 “문제는 대기업 광고 이외의 수익모델 창출을 위한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다른 언론사 상황도 비슷하기 때문에 아예 언론계를 떠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낡은 조직문화에 대한 지적은 더 뼈아팠다. 한 10년차 기자는 “일부 선배들은 아직도 취재원들에게 ‘우리가 보도해주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라’라는 태도를 보인다”면서 “지금 이 배에서 뛰어내리지 않는다면, 저들과 함께 늙어가게 될까 두렵다”고 했다.
언론사가 ‘네이버·유튜브의 하청업자’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 4년차 기자는 “우리 회사는 우라까이(베끼기를 뜻하는 은어)로 조회 수를 높이는 연성뉴스만 쓰는 직군을 별도로 운영한다”며 “내가 공들여 취재한 기사보다 우라까이 기사가 더 유통되는 걸 보면 ‘내가 지금 여기 왜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번아웃 겪어도 해결책 없어…그래도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조사 참여자 대부분은 번아웃 증후군(극도의 피로감으로 무기력증·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상)을 겪고 있거나 겪은 적이 있다고도 답했다. 경향은 “이들 스스로 체크한 번아웃의 강도는 10점 만점에 평균 7.9점이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마땅한 해결책은 없었다. 경향은 “번아웃의 유일한 해결책은 비교적 노동강도가 약한 부서로 이동하는 것뿐이었다”면서 “버틸 수 없어 그 부서를 나왔다. 힘들어하는 동료들도 ‘그냥 버티다 부서 옮길게요’라고 말할 뿐이다”라는 7년차 기자의 말을 전했다.
그런데도 기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기사에 따르면 조사 참여자 대부분은 기자로 남아 있는 이유에 대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한 기자는 “소소하더라도 사회에 도움이 되는 기사를 쓰고 싶다. 그게 아직 언론사에 남아 있는 이유”라고 했고, 또 다른 기자는 “내 기사를 보고 누군가 도움을 받을 때, 그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했다.
대안으로는 “비즈니스 모델 발굴과 조직문화의 변화”, “기자 재교육과 휴식 제도” 등이 언급됐다. 한 11년차 기자는 “정보 접근성이 높아진 ‘만인 기자 시대’에서, 기자의 전문성을 키우는 시스템을 만든다면 시민들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향은 관련 기사로 콘텐츠 유료화와 후원제로 성장 기반을 재확보한 해외 언론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경향은 “해외 언론은 ‘유료 구독’과 ‘후원제’를 비즈니스의 축으로 삼아 다시 성장하고 있다. 뉴스 이용자를 세분화해 그들과 소통하고, 뉴스 편집·제작 시스템을 정보기술(IT)로 자동화하려는 노력이 더해진다”고 전했다.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이 ‘사건’의 중심이 된 사연
경향은 또 7면에 ‘언론은 어쩌다 ‘사건’이 되었나’란 제하의 기사(기사 보기: 고소·고발·수사 ‘대상’이 된 언론…보도의 자유 침해, 혹은 자업자득)를 싣고 “언론을 향한 정치권·정부 관료들의 고소·고발과 뒤이은 수사·재판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면서 “분명한 것은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 자체가 일종의 ‘사건’이 되었다는 사실”이라고 보도했다.
경향은 2008년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제작진에 대한 수사부터 ‘검언유착’ 관련 채널A와 MBC, KBS에 대한 수사 사례 등을 언급하며 “언론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책임을 지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권력자의 고소·고발과 그에 뒤이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는 언론을 위축시킬 의도로 악용될 수 있어 위험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고 전했다.
다만 “언론이 빈번하게 고소·고발과 수사 대상이 된 것이 언론 스스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다. “공정성과 객관성이 생명인 언론이 정치권의 진영논리를 답습해 불신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경향은 “언론이 정치적인 사안에서 플레이어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심석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교수의 말을 전하며 “언론이 일방의 편을 들거나 직접 ‘선수’가 되어 사안에 가담하는 경우가 늘다보니 수용자도 보도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하게 되었고, 지지하는 정치세력과 언론사 입장이 다르면 법을 통해 처벌하자고 나서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영흠 한국언론진흥재단 선임연구위원은 그러나 “언론이 언론답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법을 통해 단죄하자고 이야기하는데, 그렇게 법을 통해 단죄하려고 하면 할수록 언론은 언론다운 보도(탐사·기획 보도)를 하기 힘들어진다”며 “대화와 토론의 영역에서 해결돼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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