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시사IN] "손녀에게 '시사모' 활동을 말하고 싶다"

남양주·주하은 기자 2022. 10. 7.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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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터뷰해도 뭐 쓸 게 없을 텐데. 〈시사IN〉에는 너무 우군이라."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 앞에서 만난 황보반씨(63)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를 걱정했다.

그 모든 걱정에도 〈시사IN〉은 15년째 살아남았고, 〈시사IN〉을 향한 황보반씨의 애정도 계속됐다.

인터뷰 말미, 그는 자신이 '〈시사IN〉에 바라는 게 한 가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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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5주년 특집] 많은 독자들이 자신과 잡지에 얽힌 이야기를 보내왔다. 크고 작은 변화를 겪은 독자들의 사연과 응원이 〈시사IN〉 편집국에도 울림을 주었다. 이 중 다섯 사연의 주인공을 직접 만났다.
민주열사 묘역 관리 시민단체 ‘모란공원사람들’에서 일하는 황보반씨(사진)는 2007년 ‘시사저널 사태’ 때부터 <시사IN>과 함께한 창간 독자다. ⓒ김흥구

“나는 인터뷰해도 뭐 쓸 게 없을 텐데. 〈시사IN〉에는 너무 우군이라.”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 앞에서 만난 황보반씨(63)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을 인터뷰하러 온 기자를 걱정했다. 한 시간 뒤, 그의 걱정이 기우가 아니었음을 알게 됐다. 황보반씨는 인터뷰 내내 “나는 다 좋다”를 여러 번 반복해 말했다.

15년째 이어온 애정이었다. 황보반씨는 ‘시사저널 사태’ 이후 조직된 ‘〈시사저널〉을 사랑하는 모임(시사모)’ 때부터 〈시사IN〉과 함께해온 창간 독자다. 〈시사저널〉의 오랜 독자였던 그는 어느 날 기사의 논조가 달라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바이라인(기사에 표기하는 기자 이름)을 가만히 살펴보니 원래 알던 기자들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시사저널 사태’에 대해 알게 된 황보반씨는 2007년 1월20일 시사모에 합류했다. 기자들을 응원하고, 파업을 지지하는 모임에 참석했다.

당시 〈시사저널〉 노조가 농성을 할 때는 직접 기자들을 찾아가기도 했다. 정희상 노조위원장과 김은남 노조 사무국장이 엿새째 단식 중이던 날이었다. 두 사람의 단식은 일주일로 마무리하고, 다른 기자들이 릴레이 단식을 하겠다는 말이 나오고 있었다. 황보반씨는 김은남 사무국장을 찾아가 ‘당신들도 독자도 고생할 만큼 했다. 더는 독자들 고생시키지 마라. 기사도 못 쓰는 기자가 무슨 권리로 독자를 고생시키냐’라고 말했다. “그땐 일부러 더 모질게 말을 했다. 어떻게든 릴레이 단식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곧 (2007년) 대통령 선거인데, 그때를 놓치면 창간이 힘들어 보이기도 했다.”

〈시사IN〉이 창간할 때 황보반씨는 주주로 참여하지 못했다. 주주가 되기 위해선 적어도 50만원을 투자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랬던 그는 현재 〈시사IN〉을 총 3부 구독한다. 자신이 한 부를 보고, 친구들에게 두 부를 나눠주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최근 대학에 입학한 조카에게도 1년간 구독해줄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는 50만원도 없어서 주주가 못 됐는데, 지금은 구독비만 1년에 50만원씩 쓴다니까”라고 말하며 황보반씨는 웃었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일일 거다. 독자들과 결합이 돼서 잡지를 창간해 이렇게 오래 왔다는 것은.” 지난 15년을 돌아보며 황보반씨가 말했다. 창간을 함께할 때까지만 해도 그 역시 예상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2~3년 정도 발간하되, ‘한풀이’하고 끝나는 것 아닌가 걱정도 됐다. 아마 모두가 하던 걱정이었을 것이다. 그 모든 걱정에도 〈시사IN〉은 15년째 살아남았고, 〈시사IN〉을 향한 황보반씨의 애정도 계속됐다. “이젠 잡지가 너무 많이 쌓여서 창간호 말고는 정리해야 하나 싶은 수준이다”라고 황보반씨가 너스레를 쳤다.

인터뷰 말미, 그는 자신이 ‘〈시사IN〉에 바라는 게 한 가지 있다’고 말했다. 30년 뒤, 자신의 사후가 될지도 모를 그 시점까지 〈시사IN〉이 ‘살아남아’ 준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내 손녀가 지금 여덟 살인데, 30년 뒤면 한창 사회에서 활동할 때다. 손녀가 ‘돌아가신 우리 할아버지가 시사모 활동을 하면서 〈시사IN〉이 창간되도록 같이 도움을 줬다’ 이렇게 말할 수 있도록 그때까지 장성했으면 좋겠다.”

남양주·주하은 기자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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