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생각] 아름답지 않은 세상에서 그러나 아름다운

한겨레 2022. 10. 7.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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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너 색소폰 연주자 벤 웹스터, 외로움은 평생 그를 쫓아다녔다.

"그 찰나에 방해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평선 너머 구름 사이로 태양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몇몇 나무들은 검은 실루엣이 되었지만 다른 나무들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어요. 잎을 통해 떨어지는 옛 빗방울로 젖은 고요함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새들은 높은 나무 위에서 날아올라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어요. 벤은 그 숲의 끝에 있었어요. 산 입구 문기둥에 기대어 멀리 농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들판 위를 지나고, 구름이 천천히 언덕 위를 넘는 것을 바라보면서 말이죠. 우리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그곳에 있었어요. 마치 이런 장소에서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새 한 마리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요. 전 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날 오후가 떠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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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그러나 아름다운

제프 다이어 지음, 황덕호 옮김 l 을유문화사(2022)

테너 색소폰 연주자 벤 웹스터, 외로움은 평생 그를 쫓아다녔다. 코펜하겐에 머물던 시절 그는 클럽 영업을 마치고 항구로 걸어가 해가 뜰 때까지 그곳에서 연주하곤 했다. 청중은 바다와 어슴푸레한 안개 속의 뱃사람들, 하역노동자들, 갈매기들. 어느 날은 고래 두 마리가 수면 가까이 나타나 벤의 연주를 들었다. 고래들은 ‘물살과도 같이 느린 블루스 음악’의 기억을 품고 대양 깊은 곳으로 돌아갔다. 어느 날 벤은 영국의 시골을 보고 싶다고 했다. 벤과 일행이 시골에 도착하자 가느다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일행은 작은 숲으로 들어갔다. 숲의 끝에 이르자 벤은 자신은 거기서 일행을 기다리겠다고 했다. 벤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좁은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일행은 벤이 걱정이 돼서 이내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했다. 그러나 그들은 길을 잃고 말았다. 그들이 벤과 헤어졌던 자리에 오게 된 것은 완전히 운이었다. 오솔길을 따라 숲의 끝으로 향했다가 우연히 벤을 발견한 것이다. 그들은 기쁨에 넘쳐서 그의 이름을 부르려다가 참았다. 왜일까?

“그 찰나에 방해하고 싶지 않은 행복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평선 너머 구름 사이로 태양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고 몇몇 나무들은 검은 실루엣이 되었지만 다른 나무들은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었어요. 잎을 통해 떨어지는 옛 빗방울로 젖은 고요함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었죠. 새들은 높은 나무 위에서 날아올라 들판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어요. 벤은 그 숲의 끝에 있었어요. 산 입구 문기둥에 기대어 멀리 농가에서 피어오르는 연기가 들판 위를 지나고, 구름이 천천히 언덕 위를 넘는 것을 바라보면서 말이죠. 우리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그곳에 있었어요. 마치 이런 장소에서는 처음 보는 아름다운 새 한 마리와 우연히 마주친 것처럼 말이죠. 사람들은 그의 음악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를 물어요. 전 그의 음악을 들을 때마다 그날 오후가 떠올라요.”

이 장면은 꼭 나에게 일어난 일처럼 기억에 강하게 남아 있다. 약간 비슷한 일이 나에게도 있었다. 폴란드 바르샤바 공원에서였다. 내 친구는 나더러 금방 돌아올 테니 공원에서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는 다른 친구를 만나러 갔다. 날씨는 찌는 듯이 더웠다. 나는 우리가 헤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땡볕 아래서) 꼼짝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움직이면 만나지 못할까 봐). 내 친구는 나를 믿지 않았다. 내 친구는 내가 반드시 길을 잃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랑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초조한 얼굴로 뛰어왔다. 나는 내 친구가 땀을 흘리면서 두 팔을 휘저으며 달려오는 것을 우연히 봐버렸다. 그러나 못 본 척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 황홀한 눈으로 뚫어지게 나뭇잎을 바라보는 척했다. 그 여행의 다른 것은 잊었어도 허둥지둥 뛰어오던 친구의 상기된 얼굴만은 기억에 남아 있다.

내가 소개한 이야기는 제프 다이어의 걸작 <그러나 아름다운>에 나온다. 세상에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이 너무 많다. 듣고 싶지 않은 뉴스가 너무 많다. 삶이 아름답지 않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러나,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 나는 이런 이야기, 얼굴들을 모아 모아 삶을 만들고 싶다. 네루다 시의 한 구절이 생각이 난다. “삶이여,/ 넌 포도밭 같다:/ 넌 빛을 모아두었다가 포도송이로/ 바꾸어 나눠 준다.”

정혜윤/<CBS>(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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