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돈선의 예술인 탐방지도 -비밀의 방] 54. 기억의 저편, 잃어버린 시간 찾아서 - 키네틱 아티스트 윤운복

최돈선 입력 2022. 10. 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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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정크아트 공모 대상 등
국내 키네틱아트 예술계 권위 인정
아내 식당 정크아트 인테리어 화제
환경·해킹 등 사회현상 작품 투영
이달 '사라진 기억' 주제 개인전
 윤운복작, 보고싶다 친구야 천장

통!

하면, 통통 튀어간다는 느낌이 먼저 온다. 공작소 이름이 ‘通’으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곳의 통엔 ‘꿰뚫다, 두루 미치다, 오가다, 서로 소통하다,’ 라는 뜻이 담겨 있다. 좀 별난 형체들이 저 안쪽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이상한 언어로 나를 맞이할 듯한, 그런 통이란 이름의 공작소를 찾아간 날은 맑은 햇살이 금빛으로 빛날 때였다.

그래서일까. 통의 안쪽은 어둑했다. 백색의 전구 알들이 천장에 작은 태양처럼 고즈넉이 떠 있다. 후덕한 부처의 상을 한 주인은 환한 웃음으로 나를 맞이한다. 공간은 그다지 크지 않으나 신기한 작품들로 꽉 들어찼다. 날개 전지판이 달린 에코 인공위성 두엇이 공중에 떠 있고, 한쪽 구석엔 도르래를 통해 쉴 새 없이 필름들이 돌아간다. 작은 TV엔 옛날 흑백의 가족사진과 아이들, 지구환경에 관한 영상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TV에 나타난 원시인류-지구인이여 각성하라

벽 한가운데 붙여진 흰 종이가 눈에 띈다. ‘2021 대한민국 환경사랑 공모전 정크아트 부문 대상’이란 글자가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2017년엔 대한민국 정크아트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현재 윤운복은 정크아트 작가이면서 환경작가라 불린다.

윤운복 작가는 해마다 여러 공모전에 빠짐없이 작품을 출품한다고 한다. 그것이 환경이든 정크아트 부문이든. 지구환경의 중요성이 무엇보다 절실한 지금, ‘우리의 현재’에 대한 물음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더불어 수많은 수상 경력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제는 키네틱아트 작가로서 윤운복은 한국의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 키네틱아트(kinetic art)란, 조각에서 작품의 전체 또는 부분이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계의 작동원리를 알아야 한다.

1922년 가보Naum Gabo가 ‘키네틱 조각’을 발표한 것이 시초였다. 예술과 과학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이 장르는 세계적 작가 백남준의 예술로 큰 호응을 받았다.

윤운복 작가

나는 한동안 천장에 떠 있는 인공위성을 쳐다보았다. 저 인공위성이 지구에 보내는 신호는 무엇일까. 환경일까. 평화일까. 벽에 붙어있는 박격포탄의 부딪힘. 그것은 적의를 품은 폭발이 아니라 사랑과 화해의 입맞춤이다. 그 입맞춤 가운데 밝고 아름다운 빛이 깜빡인다. 정크아트 중 생명처럼 움직이고 깜빡이는 작품을 본 적이 있었던가. 백남준 작품 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다. 정크아트는 주로 야외에 설치되기에 대부분 거대한 형체로 전시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이처럼 아담하고 유난히 반짝이는 작품엔 피가 돌고 있는 느낌이다.

윤운복은 가슴으로 움직인다. 더불어 그가 만들어내는 작품도 움직인다. 이것으로 윤운복이 추구하는 작품의 테마는 확연해진다. 작품엔 늘 생명의 피톨이 돌아간다. 그리고 야외에 전시되는 작품이라기보다 실내에서 함께 호흡하고 만지고 쓰다듬는 작품이 주를 이룬다. 여타의 정크아트보다 다른 느낌이다. 때로는 화면에 인간의 모습과 자연이 흐르고, 무엇인가 움직이는 물체 속에서 메시지를 던지고, 서로의 동질감을 감지하고 공유한다. 그것이 윤운복 아트의 즐거움이다.

딱딱한 물성에서 부드러운 물성으로 변환되는 순환과정, 그것을 통한 마음의 교류가 작품의 주조가 된다.

버림받은 것들, 이 차가워진 부품들의 결합에서 관람자는 문득 가슴이 따뜻해져 옴을 느낀다. 그것이 윤운복 예술이 지향하는 중요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단 한마디로 요약하면 ‘감성’이다. 수식어는 필요 없다. 그래서 ‘통’일까. 통은 두루 통한다는 뜻이 아닌가.

윤운복은 삼척에서 나서 자랐다. 어릴 때는 그림을 잘 그려 화가가 되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무작정 서울로 갔다. 그는 극장 간판을 그리는 화공이 되었다. 그러나 TV보급으로 극장이 쇠락해지자 다른 길을 찾아야 했다. 그때 우연히 춘천에 발을 디뎠고, 즉시 젊은 아내를 설득하여 춘천으로 왔다. 1996년, 서른여섯의 나이였다.

춘천은 예술적인 영감을 주는 도시였다. 윤운복은 춘천에서 자신이 꿈꾸던 작업을 하고 싶었다. 생계를 위한 간판 작업이나 조형물 설치작업 틈틈이, 폐품을 모으기 시작했다. 고물상을 취급하는 분들과 친해졌다.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면 뭐든 가져갈 수 있게 해주었고, 폐품 값도 윤운복 작가가 알아서 줬다.

테이블에 놓인 수상한 지구.

2011년엔 춘천민예총에 가입하여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 첫 개인전을 가졌다. 춘천에 온 지 6년 만이었다. 평창비엔날레 특별상도 받았다. 이밖에 강원도 아름다운 간판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아 간판계에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고물을 수집하여 뭔가 이상한 형체를 만들어내는 작업을 아내는 다소 불만스러워했다. 그러자 윤운복은 아내가 영업하는 음식점 ‘보고싶다 친구야’ 실내 장식을 정크아트로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 인테리어가 소문이 나자 방송과 언론에 소개되기까지 했다. 영업은 번창했다. 이제 아내는 식당업을 다른 이에게 넘겼지만, 남편의 실력을 인정했는지 그로부터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장식물 중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가 녹아내리는 천장’은 단연 압권이었다. 그것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 유명해졌다.

자신도 모르게 시간의 흐름을 무의식중에 느끼기 때문일까. 아니면 시간의 흐름조차 사라져버린 공(空)의 세계를 본 때문일까.

나는 윤운복 작가를 능동적인 사람이라 이름하고 싶다.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자리를 누구보다 명확히 알고 있다. 버려지는 것들, 그것을 다시 벼리는 작업이 윤운복이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의 세계이다. 그래서 윤운복은 자신이 처한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다. 우리 주변에 닥쳐온 이야기, 현재와 미래의 지구환경에 대한 고민이 가슴속에 늘 자리한다. 그리고 해킹으로 감시당하고 있는 사회, 인간의 탐욕,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작품 속에 고스란히 투영된다.

윤운복 작, Hahacking(2017), 디지털모니터, 혼합재료.

춘천은 윤운복의 현재이다. 그러므로 중도가 플라스틱 레고에 덮인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이다.

작품 ‘Let it go’는 중도 선사시대 유적지를 덮어버린 레고에 대한 절규이다. 작가는 지구 전체를 레고가 덮어버린 플라스틱 지옥을 표현했다.

“제발 놓아줘!”

매년 750억 개 이상의 레고 조각이 팔려나가는 지구. 레고는 우리 선대의 아름다운 유적지 중도를 거침없이 파헤치고 알록달록 플라스틱의 화려함으로 점령해 버렸다. 마치 무자비한 외인부대가 주둔한 식민지처럼. 이미 망자가 되어버린 중도는 오늘날 우리 지구의 현실이다.

오는 시월 하순이면 ‘Remember60’이란 테제로 전시를 연다. 다섯 번째 전시다. 사라지고 없는 것에 대한 기억, 작가는 자신에게 묻는다.

‘현재 나는 행복한가.’

그 물음에 대한 해답은 사실 모른다. 다만 그것을 기억의 저편 ‘잃어버린 시간’에서 찾고자 할 뿐이다. 시인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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