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이영지의 '말다운 말'

입력 2022. 10. 7. 04:04 수정 2022. 10. 7.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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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말다운 말이 드문 시절이다. 이 말인즉슨, 말답지 않은 말이 참 많은 시절이라는 말이다. 기술과 매체의 화려한 랑데부는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많은 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획기적인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확장된 자유 앞에서 사람들이 느낀 강렬한 감정이 해방감이 아닌 피로감이라는 사실이다. 허무할 정도로 무의미한 ‘복붙’ 기사들, 그 아래 배설처럼 덧붙는 댓글들, 그를 자극적으로 재조합한 영상으로 조회수를 노리는 사이버 렉카들. 뭐라도 한마디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목소리 큰 사람들과 뭐라도 한마디 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초조함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말의 파도는 우리의 하루에 몇 번이고 밀려 들어왔다 그대로 밀려 나간다. 휩쓸린 육체와 정신이 제자리를 찾기도 전, 다음 또 다음 놈들이 눈을 부릅뜨고 덤벼든다. 눈을 뜨자마자 휴대폰 액정을 켜는 일상에서 이 같은 재앙을 피할 방법은 현재로서는 불가능에 가깝다.

명치 근처에서 갑갑하게 맴돌기만 하던 생각을 구체적으로 떠올리게 만든 건, 뜬금없게도 가수 이영지가 진행하는 유튜브 콘텐츠 ‘차린 건 쥐뿔도 없지만’ 때문이다. 약칭 ‘차쥐뿔’은 채널을 만든 지 4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구독자수 172만명을 넘겼다. 티저를 제외한 모든 영상이 조회수 300만을 넘었고, 그 가운데 ITZY의 이채령과 세븐틴의 호시가 출연한 편은 1000만뷰를 기록했다(모두 6일 기준). ‘차쥐뿔’은 겉으로만 보면 평범해 보인다. 업로드는 일주일에 한 편, 실제 이영지가 사는 집 한쪽에 얼기설기 마련한 세트에 손님을 초대한다. 해당 게스트에 어울리는 간단한 안주와 술을 준비하고, 그렇게 준비된 걸 먹으며 이영지와 게스트가 이야기를 나눈다. 호스트와 게스트로 구성하는 토크쇼로 보나, 술과 음식이 곁들여진 ‘술 먹방’ 콘텐츠로 보나 그리 특별할 게 없는 형식인 이 콘텐츠는, 그렇다면 왜 지금 이렇게까지 즐겁고 뜨거운가.

‘차쥐뿔’의 인기 비결은 이 콘텐츠의 시작이자 끝인 이영지로부터 비롯된다. ‘합법적 망나니’라는 프로그램 캐치프레이즈에서 ‘게스트에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싶고, 사실 조금 귀찮기도 해서’ 고수하는 민낯까지, 콘텐츠는 이제 막 스무 살을 넘은 이영지라는 사람이 가진 매력을 그 어떤 꾸밈도 없이 고스란히 보여준다. 특히 그 가운데에서도 그의 말하기와 듣기 기술은 도무지 타고났다고밖에는 설명하기 힘든 어떤 경지 그 자체다. ‘말’을 토닥이고 어루만지는 동시에 유쾌하게 가지고 노는 이영지의 천부적 감각은 그가 가진 능력을 기술이 아닌 재능의 영역으로 수렴하게 만든다.

그의 재능이 가장 빛난 회차가 덴마크 출신 가수 크리스토퍼 편이라는 건 사람 사이 오가는 ‘말’에 대한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콘텐츠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출연자를 맞이한 이영지는 초반의 긴장을 지나 금세 자신만의 페이스로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문법은 조금 서툴지언정 언어를 타지 않는 그만의 솔직하고 꼼꼼한 말을 대하는 방식은 같은 모국어를 쓰는 게스트를 만났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분위기를 만든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서로의 나라를 대표하는 술을 나눠 마시고, 언어만 다를 뿐 별반 다르지 않은 지금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대화는 점점 깊어진다.

좋은 연애를 하고 싶지만 결국 나쁜 남자에 끌리고 마는 연애 패턴이나 겉은 쿨한 팝스타지만 속으로는 남들처럼 사람을 판단하고, 질투도 하고, 휴대폰 중독에도 시달리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고 있으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콘텐츠가 아무래도 좋아진다. 말이란 같은 소리와 뜻을 가진 것이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을 이어주는 다리라는 걸 ‘차쥐뿔’을 보며 깨닫는다. 마음이 담긴 말이 말다운 말을 만든다. 말이 넘쳐나는 시대, 더욱 중요해진 진짜 말의 가치가 이영지의 말다운 말 속에 숨어 있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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