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윤석열차'는 오늘도 달린다
2015년 프랑스에선 신년 벽두부터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게 불붙었다. 그해 1월7일 파리에 있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사무실에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테러를 저질러 12명이 사망한 사건이 계기였다. 테러는 샤를리 에브도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만평을 게재한 것이 발단이 됐다. 샤를리 에브도는 풍자에 성역을 두지 않고 도발적인 비판을 해온 매체로 잘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를 형상화하는 일체의 행위를 죄악시하는 이슬람의 입장에서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이후 논란은 프랑스 국경을 넘어 번져나갔다.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라는 구호로 대변되는 표현의 자유와, 특정 종교를 모욕하는 자유까지 허용되어선 안 된다는 견해가 갈렸다. 자기들의 입장과 다르다고 만평 작가를 죽이고 언론 매체에 테러를 일으키는 건 야만적 행위라는 비판에 대해 자기가 믿지 않는 타 종교에 대한 ‘선 넘는’ 조롱은 표현의 자유로서 존중받을 수 없다는 의견이 맞섰다.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돼왔다. 대한민국 헌법 21조 1항은 모든 국민에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규정해 ‘표현의 자유’의 근거를 마련하고 있지만, 같은 조 4항에서는 언론·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 공중도덕,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며 제한적인 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이 때문에 표현하는 쪽과 이를 받아들이는 쪽의 입장에서 명예나 권리, 권익의 경계를 놓고 다툼이 일곤 한다.
물론 표현의 자유라고 해서 모든 게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이나 학살 등 반인륜적 범죄의 정당화, 인종 차별·혐오와 같이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약자에 대한 조롱과 비하 역시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하에 숨을 수 없다.
한 고등학생이 그린 한 컷짜리 만화가 우리 사회에 ‘표현의 자유’라는 화두를 환기시켰다. 얼마 전 재단법인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한 전국학생만화공모전 카툰 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한 ‘윤석열차’라는 제목의 만화가 전시되면서다. 그림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얼굴을 한 기차를 부인 김건희 여사가 기관차에서 조종하는 모습이 담겼고, 그 뒤 열차에 법복을 입고 칼을 든 사람들이 탄 모습이 그려져 있다. 열차 앞 선로에는 질주하는 기차에 사람들이 놀라 달아나는 모습이 묘사됐다. 논란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윤석열차’에 금상을 준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 “유감을 표하며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히고 선정 과정 조사에 나서겠다고 하면서 촉발됐다. ‘표현의 자유를 문제 삼아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문체부는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정치색을 빼지 않고 작품을 공모한 진흥원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파장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대다수의 시각은 문체부의 대응이 지나친 게 아니냐는 쪽으로 모아진다. 보통 만평으로 부르는 한 컷짜리 만화는 매일 신문에 실리는 데다 대부분 정치와 관련된 소재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 문체부의 대응이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온 ‘자유’의 가치에도 반한다는 점에서다. “문체부가 지극히 주관적인 잣대를 핑계 삼아 헌법의 기본권 중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부정하고 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연상된다”는 반발이 문화계 안팎에서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문학이나 그림, 만평 등에서 ‘풍자’는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로 쓰인다. 직접적 비판이 아닌, 기지와 해학을 담아 에둘러 표현하는 ‘풍자’는 사회의 부조리나 모순, 불합리 등을 신랄하게 꼬집으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이번에 이슈가 된 ‘윤석열차’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을 뒤에서 조종하는 듯한 김 여사와 대통령을 추종하는 검사들이 검찰 요직을 차지한 현 세태를 폭주기관차에 빗대 묘사한 것이다. 문체부 입장에선 아마도 이런 풍자가 불편했던 모양이다. 진흥원을 향한 경고는 ‘구체적 지시 없이도 윗사람이 원하는 바를 헤아려 일을 처리하려는’ 그들만의 심모원려가 작용한 것 같다. 그런데 너무 오버스러워 보인다. 웃자고 한 얘기에 죽자고 덤비는 꼴 아닌가. 요즘 뉴스에 붙는 인터넷 댓글을 한번 보시라. ‘윤석열차’보다 더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비난이 넘쳐나고 있다. 오죽하면 여당에서까지 “너무 나갔다”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느냐”는 지적이 나왔을까.
조홍민 사회에디터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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