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코리아 R&D 패러독스' 다시 생각하기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내년도 R&D(연구·개발) 예산안은 30조7000억원이다. 정부 R&D 30조원 시대를 맞아 우리 R&D 시스템의 저효율 구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세계 1위 GDP 대비 R&D 투자와 인구 대비 연구인력에도 경제적 성과를 내지 못하는 우리의 형편을 자조하는 '코리아 R&D 패러독스'는 고투자·저효율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 전문가들은 낮은 R&D 생산성으로 '코리아 R&D 패러독스'가 고착화했다고 지적한다. 산업현장과 동떨어진 기초과학 연구, R&D 성과를 사업화로 연결하는 전략부재를 원인으로 꼽는다. 과연 그런가. 과학기술정책 분야에 몸담은 필자나 현장의 과학기술자들은 다소 억울하다. R&D 생산성이라는 개념은 무엇일까. 투자와 성과를 산술적으로 측정할 수 있을까. 상당한 성과가 있는데도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엄정한 팩트체크를 통해 잘한 것은 잘했다고 해야 과학기술계의 사기도 올라가고 더 잘할 수 있는 여지가 마련된다.
한강의 기적, IMF 외환위기 극복,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 코로나19 극복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는 위기극복의 역사다.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강국으로 글로벌 공급망의 중심에 있다. 1인당 GDP는 3만1497달러로 G7 국가인 이탈리아(3만1288달러)를 추월했고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 글로벌 특허강국이며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은 2020년 13개사로 세계 6위다. 2018년 세계 7번째로 수출 6000억달러를 돌파한 후 수출의 규모와 내실은 더욱 견고해졌다. 자동차 생산은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에서 앞서가며 세계 5대 강국에 진입했고 조선업은 지난해 전세계 선박발주 1924만CGT 중 819만CGT(42.6%)를 수주해 압도적 세계 1위를 달성했다. 블룸버그가 평가하는 혁신지수(Bloomberg Innovation Index)는 6년 연속 1위다. 우리 사회의 모든 부문이 합심해서 이룬 성과다. 그런데 이 중 R&D만 콕 찍어 '코리아 R&D 패러독스'라고 폄훼해서야 되겠는가.
TDX(전화교환기), 초고집적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와 수입대체 개발, 인력양성과 연구인프라 구축에 이르기까지 정부 R&D의 성과와 업적은 충분하다. K국방의 위상을 드높이는 국방 R&D 기술, 방사광가속기와 ITER(국제핵융합실험로) 같은 거대연구장비, 발사체 누리호와 달탐사선 다누리같은 우주개발, 국민 삶의 질 제고와 사회문제 해결 등 정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역할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민간이 해결할 수 없는 영역까지 고루 살피는 정부 R&D의 가치를 경제적 잣대로만 평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R&D 투자 역사가 길지 않기에 절대적인 R&D 투자규모와 지식스톡의 총량도 주요국 대비 부족하다. 소위 축적의 시간이 더 필요한 이유다.
날로 격화하는 기술패권 시대에 국가든 기업이든 R&D를 통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초원천기술을 확보하지 않으면 생존을 담보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코리아 R&D 패러독스'는 이런 엄혹한 시기에 과학기술계가 좀 더 분발했으면 하는 국민적 관심과 기대가 반영된 질책이라고 생각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과학기술계 내외부에서 R&D의 성과를 정확히 이해하고 평가하며 부족한 부분은 제도개선과 혁신으로 고쳐나가면 된다. 영국 경제학자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는 저서 '기업가형 국가'에서 미국 정부의 지원을 통해 개발된 요소기술들이 아이폰 개발로 연결된 사례를 소개하며 정부의 R&D 투자 당위성을 설명한다. 정부의 장기적인 노력과 투자의 결실이 인류의 삶을 바꾼 21세기 최고의 혁신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혹독한 비판과 질책보다 격려와 기대로 과학기술계를 칭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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