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대형 메기' 프리즈에 놀란 韓 화랑들

전지현 2022. 10. 7. 00:0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외국 갤러리들 완판 행진에
국내 화랑들 위기 느껴
세계 통할 작가 발굴하고
미술시장 체질개선 나서야
1988년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국내 직접 배급을 시작하자 한국 영화계는 극장에 뱀까지 풀면서 저항했다. 당시 외화 수입은 국내 영화사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으며 그 수익금으로 한국 영화를 제작했기 때문이다. 2006년 스크린쿼터(자국 영화 의무상영제도)가 축소될 때도 영화인들은 삭발을 하고 거리로 나서며 결사반대했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대로 한국 영화계는 말라죽지 않았다. 오히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미국 아카데미 4관왕(2020년)을 휩쓸며 세계 영화계를 휘어잡았다.

대중문화계도 마찬가지다. 1998년 정부의 일본 대중문화 개방 조치 때 거세게 반발했지만 지금은 한국 드라마와 K팝이 열도를 점령했다. 센 놈을 만나면 강해지는 메기효과가 통한 것이다.

미술계는 최근에야 개방의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겨우 연간 매출 1조원을 바라보는 국내 미술 시장에서 4일간 1조원대를 팔아치우는 세계 3대 미술장터인 영국 프리즈(9월 2~5일 코엑스)가 열린 후 한 달째 사분오열 중이다.

먼저 프리즈에 지갑을 활짝 열자마자 금융위기가 닥치고 판매가 저조하자 대작을 앞세운 외국 갤러리들에 한국 미술 시장을 내줬다는 한탄이 터져나온다. 국내 대형 화랑 10여 곳은 외국 갤러리들의 공세를 버틸 수 있지만, 군소 화랑들은 싸울 체급 자체가 안 된다는 비판이 거세다. 프리즈와 공동 개최한 한국국제아트페어(KIAF)에 참여한 중소 화랑은 "프리즈와 같이 열려서인지 여느 해보다 작품을 못 팔았다"며 "솔직히 내가 컬렉터(수집가)라도 평소 접하기 힘든 외국 유명 작가 작품들이 포진한 프리즈에서 사겠다. 한국 작가 작품은 언제든 구입할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암담하지만 프리즈와 한국국제아트페어는 5년 공동 개최하기로 계약했기 때문에 버텨야 한다. 내년 9월 초 코엑스뿐만 아니라 송현동 이건희기증관 예정지로 규모를 키워 열릴 예정이다. 이제 후퇴는 불가능하니 국제 시장에서도 살아남을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사실 한국 미술 시장은 그동안 단색화와 일부 젊은 인기 작가에게 의존해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번 한국국제아트페어에서도 현대미술 일색이었으며 한국화와 고미술 작품을 찾기 힘들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화랑 체질을 개선해야 할지 예전보다 더 절실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 프리즈의 '선물'일지도 모른다. 정답은 어찌 보면 단순하다. 열심히 작가를 발굴해 투자하고 좋은 전시를 만들어 세계에 알리는 화랑 본연의 업무에 충실해야 한다. 인기 작가에게만 매달려 작품을 받아 판매하는 데 급급한 아트 딜러 같은 화랑들이 부지기수다.

미술평론가 윤진섭은 "안일한 화랑들은 재고 처리 작품을 걸기도 했다"며 "독자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국제 경쟁력을 갖춘 작가들을 발굴하고 끊임없이 지원해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계 시장 규모의 1%에 불과한 한국 미술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군소 화랑들이 뭉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미술평론가 정준모는 "영세 화랑들이 주식회사 형태로 맷집을 키워 자본금을 투자받으면 싸워볼 만하다"며 "20억~30억원짜리 그림 20~30점을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비판과 반성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이 아시아 미술 중심으로 부상했다는 긍정적 평가가 엇갈린다. 관람객들도 피카소, 베이컨, 리히터 등 세계 미술 거장의 대작들을 한곳에서 볼 수 있었고 작품 선택 폭이 넓어졌을 뿐만 아니라, 콧대 높은 외국 갤러리들이 한국 컬렉터들에게 작품 구매 우선권을 준 것도 고무적이다.

프리즈가 한국 작가들의 세계 진출 교두보가 된 것도 분명하다. 이번에 외국 미술재단과 미술관, 평론가, 디지털 플랫폼 관계자들이 많은 한국 작가들을 만나고 갔다.

시장은 이미 열렸으니 이제 기회를 잡아야 할 때다.

[전지현 문화스포츠부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