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진단] WTO 만가(輓歌)를 부를까

2022. 10. 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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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반칙에 美가 피로 느끼며
WTO 체제 갈수록 힘 잃어
IRA법 WTO에 걸어본들 효과無
당분간 美 방식으로 대응할밖에
그러나 다자주의는 우리 숙명
장기적으론 WTO로 돌아가야
지금 세계 경제가 요동을 치고 있다. 대달러 환율은 급등하고 있고 경제성장률도 전 세계적으로 저조하다. 그 큰 요인은 두 가지다. 2008년 이래 이른바 각국이 실시한 통화량 증대(QE·양적완화) 정책으로 급격히 풀려나간 통화량을 수습하고 인플레이션을 줄일 목적으로 미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인상하고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주요국들이 자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며 자유무역 질서를 퇴화시켜 보호주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 4반세기 동안 세계무역의 질서를 자유와 공정이라는 기치를 걸고 잘 운영해왔으며, 이를 통해 세계 경제 전반의 건실한 성장을 이끌어왔던 세계무역기구(WTO)가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그 근본 원인을 추적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2000년까지만 해도 WTO가 세운 원칙에 따라 세계무역이 순항하면서 별 이변 없이 잘 발전돼 왔다. 그런데 2001년 중국이 WTO 정회원이 되면서부터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인구 13억명을 가진 대국이 회원이 되면서 이른바 최혜국 대우라는 혜택에 더해 개도국이 받는 각종 이점을 이용해 세계 시장에 초스피드로 뛰어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원산지 규정, 지식재산권 규칙, 반덤핑 규칙 등을 어겨가면서 무자비하게 세계 시장을 공략했다. 이로 인해 WTO 규정을 잘 지키려고 애쓰는 국가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 대표적인 예가 미국이다.

미국 등 선진국들은 WTO 기능을 살리기 위해 일찍이 '도하라운드'라는 새로운 다자협상을 시작했다. 2001년에 시작한 이 협상은 중국, 인도, 브라질 등 개도국들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고, 드디어 2009년 미국은 도하라운드 실패를 선언하고 독자 노선을 걷기로 결정했다. 미국이 빠진 다자협상은 활력을 잃게 됐고, 따라서 WTO 기능도 점점 약화됐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선포하며 일방적으로 미국산 전기차에만 감세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미국 태도를 보면 이미 WTO는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미국을 WTO에 제소할 것도 고려한다고 하나 이는 아무런 효력을 발생시키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IRA에 대응하는 우리 전략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즉 미국이 선호하는 동조국(like-minded countries·LMC) 정책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적극적 활용이다. 다시 말해서 미국이 채택한 정책을 우리도 그대로 채택하는 것이다. 전기차는 이미 미국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할 정도로 미 국민들이 애호하는 한국산 전기차를 미 소비자들에게 가급적 싼값으로 공급하기 위해 우리 정부도 미국을 향해 수출되는 국산 전기차에 세금을 깎아주는 가능성을 내비치는 것이다. 이는 미국의 LMC 정책과 한미 FTA 원칙에 철저히 부합하는 것이다. 다만 이 정책을 한시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미국이 IRA를 중단할 때 우리도 중단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자주의를 지향하는 우리나라는 어디까지나 WTO 원칙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은 꾸준히 하는 것이다.

미국 정책에 맞장을 뜨려면 우리 정부의 용기와 결단력이 필수적이다. 미국은 이를 미국에 대한 반격이라고 여길 것이다. 우리 정부는 한결같이 이것이 불가피한 정책이며, 문제의 원천 제공자는 미국임을 강하게 주장하는 것이다. 이번에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방한해 IRA 시행 과정에서 고려해보겠다고 했으니 일단 기다려보는 것은 좋다. 그러나 우리의 국제 위상과 국력, 그리고 세계가 바라보는 한국의 이미지는 이제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개도국 중 하나로서 선진국들에 좀 봐달라고 매달리던 시대는 이미 저만치 지났다. 자유와 공정, 그리고 상생과 균형을 위해 세계 질서 유지에 앞장서고 있는 대한민국임을 더욱 강조하면 된다. WTO 만가(輓歌)를 불러서는 안 된다. 이의 복원을 원하면서 단기적으로 미국 하는 대로 하는 것이다.

[유장희 전 KIEP 원장·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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