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현실에 한 걸음 다가간 전력정책
이는 자연생태계만이 아니라 사회나 조직의 위기 극복에도 종종 사용하는 것으로 기존 질서에서 새로운 질서로의 안정적 전환 능력을 뜻하는 '복원력(resilience)'이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새 정부의 전력 정책 평가를 '패나키'라는 생소한 개념으로 시작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전력산업도 탄소중립이란 새로운 질서로 안정적으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0여 년간 역대 정부의 전력 정책을 되돌아보자. 일부 긍정적인 흐름도 있었지만, 녹색성장과 원전 확대, 탈원전과 재생에너지 확대 그리고 이러한 급변침을 둘러싼 배타적이고 소모적인 갈등의 소용돌이가 더 컸다. 또 천정부지로 치솟는 연료 가격에도 요지부동의 전력요금을 두고 벌인 치열한 공방도 있었다. 하지만 에너지 부존 여건이 좋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특정 전원을 정치적으로 배제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사치였을 수 있다. 또 탄소중립과 수급 안정에 가장 중요한 수요 절약을 요금 신호가 아닌 정치 구호로 달성하려는 것 역시 과욕이었는지 모른다.
새 정부가 발표한 5대 에너지 정책의 첫걸음에 해당하는 전력수급기본계획 초안을 보면 역대 정책과 구별되는 2가지 특징이 있다. 하나는 원전, 재생에너지, 화력발전 등 '전원 간 균형'이고, 다른 하나는 '전력시장의 다원화'이다. 전력산업의 안정적 전환을 위해서는 탈원전 혹은 친원전 문제보다 전원의 다양성이 더 중요하다. 전력산업의 대전환을 떠나 우리의 에너지 현실에서 보더라도 특정 전원에 대한 불확실하고 과도한 쏠림을 피하고 다양한 전원 간에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다. 이런 측면에서 새 정부가 내세운 원전, 재생에너지, 화력발전 간의 균형은 구체적인 각론에서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현실적인 방향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아직 초안이기 때문에 이러한 차별성이 향후 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에 어떻게 구현되고 성과를 거둘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전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하나 덧붙이고 싶은 점은 이전 정책들의 경우 내용상 '전원과 시장의 다양성'이 부족했지만, 수립 및 집행에서도 정치적 갈등으로 '다양한 의견수렴'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의도한 정책이 현실에서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수렴이 필수적이다. 사회 구성원 내부의 의견 차이와 이해 갈등에 대응하면서 새롭게 진화할 수 있는 정책 복원력의 원천 역시 의견의 다양성에 있기 때문이다.
[조영탁 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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