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산 10%는 기후 대응 위해 사회적 상속"
기성세대가 누려온 성장의 과실은 미래세대의 환경 등 빼앗은 결과
후손에게 더 나은 세상 물려주기 위해 60대 이상 100여명 행동 나서
기후위기 체감·에너지 전환 등 토의하며 지난 1년간 50회 넘게 모임
“죄송하게 제가 머리에 염색을 했습니다.”
검은 머리로 염색한 ‘60+기후행동’ 운영위원 강남식씨(65)가 말문을 열었다. 강씨 앞에는 6명의 60대 시민이 앉아서 ‘60+기후행동이 해야 하는 활동’을 주제로 조별 논의를 하고 있었다. 토의에서는 “염색을 하면 물을 많이 쓰게 된다” “염색을 이제 안 해도 되는데 과도하게 하는 것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토론의 열기는 뜨거웠다. ‘이제 이야기를 멈추고, 잠시 쉰 이후에 발표 시간을 갖겠다’는 운영위원의 공지에도 회원들은 끝맺지 못한 논의를 이어갔다.
60+기후행동은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가톨릭회관에서 모두모임을 열었다. 수도권, 충청도, 전라도 등 다양한 지역에서 모인 100명 이상의 회원이 ‘기후행동’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은 “기성세대가 누려온 경제성장의 열매가 사실은 미래세대에게 미래를 빼앗아온 결과임을 인정하고, 우리의 경험과 지혜를 토대로 미래세대에게 미래를 돌려주기 위해 노력한다”며 “물려받은 세상보다 더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했다.
60+기후행동 운영위원회는 지난 1년 동안 50회 넘게 회의를 하며 활동 방안을 논의했다. 회의를 통해 결정된 60+기후행동의 ‘미션’에는 “산업혁명 이후 폭발적 성장을 거듭해온 산업 문명이 우리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그것은 일시적이고 차별적인 것이었음을 확인하고 반성한다” “기후와 관련한 현장을 찾아가 우리 주장을 펼치고, 경험과 지혜를 쌓아온 어른으로서 사회적 불합리와 모순에 적극 개입한다”와 같은 내용이 들어있었다. 박승옥 60+기후행동 운영위원(68)은 “청년들이 기후행동에 나서며 어떤 사안으로 재판을 받을 일이 생기면 함께 구속될 각오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번 모임을 준비하면서 60+기후행동 운영위는 참여자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컵, 텀블러 등을 마련했다. 그 덕에 대규모 행사에서 흔히 보이는 플라스틱 생수병은 찾기 어려웠다. ‘방탄노년단’으로 불리는 운영위원들의 축하공연도 있었다.
60+기후행동 회원들이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회원들은 각자 기후위기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는지 경험을 털어놨다.
전북 김제에서 온 강옥수씨는 “지금도 에어컨 없이 생활하고 있어 손주가 여름에 오기 힘든 상황”이라며 “여태까지는 (에어컨을) 안 놓고 살았는데 올여름은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회원들은 “60+기후행동이 해야 하는 활동은 무엇인지” “회원은 어떻게 모아야 할지” “기후위기와 관련해 어떤 내용에 대한 학습이 필요할지” “슬로건인 ‘인생전환·녹색전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을 놓고 조별로 논의했다.
‘사회적 상속’도 60+기후행동의 주요 의제로 논의했다. 세상을 떠날 때 유산의 10% 정도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용도 등으로 내놓아, 기후활동가들을 지원하자는 구상이다. 유정길 60+기후행동 운영위원은 논의 과정에서 “내가 오롯이 번 돈이 아닌 만큼, 10% 정도는 기후 문제 등 사회를 위해서 내놓을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나지현 60+기후행동 운영위원(61)은 “다음 세대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사회적 상속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논의를 마친 뒤 모임 전체에 내용을 공유했다. ‘어슬렁행동’(큰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대신 현장을 찾아 온종일 걸으며 하는 60+기후행동의 집회 방식)에 더해 ‘가보자 버스’를 해보자는 기획이 나왔다. 에너지 전환 등 기후와 관련된 현장을 찾아 배우자는 것이다. 지역 주민들과 함께 숲을 지키는 활동을 하는 등 지역 밀착형 회원 모집 전략도 나왔다.
발표가 끝나면 종소리와 함께 약 5초간 숙고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모임이 시작된 지 약 3시간이 지났음에도 60여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60+기후행동 회원 이광연씨는 “노인들을 꼰대라고 하고 보기만 해도 피하려 하는데 이곳의 모임은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10대 자문위원인 박수민양(15)은 “10대가 60대를 만날 일이 가족 이외에는 드물고, 가족끼리 기후위기 이야기를 잘 하지는 않는다”며 “노인의 구체화한 언어로 기후위기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고, 책임지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것은 처음 들어본 것 같다”고 말했다.
글·사진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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