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치 너무 커진 플랫폼들..칼 빼든다고 무릎 꿇을까

성유진 기자 2022. 10. 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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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Cover Story] 독점 피해 속출.. 한국도 규제 방식 논쟁

지난 6월 일본 도쿄지방법원은 레스토랑 체인 한류무라가 가카쿠닷컴을 상대로 낸 반독점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에서 한류무라는 가카쿠닷컴이 운영하는 일본 최대 식당 리뷰 플랫폼 ‘다베로그’가 이용자들의 점수를 집계하는 알고리즘을 변경해 20여 매장 등급이 낮아졌고, 이로 인해 월 평균 2500만엔의 매출이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가카쿠닷컴이 지배적인 협상 지위를 남용해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며 3840만엔(약 3억8000만원)의 손해배상금을 한류무라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독점법을 연구하는 히라야마 겐타로 규슈대 교수는 이 판결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디지털 플랫폼 사업자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알고리즘을 더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요구한 것”이라고 아사히신문에 말했다.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플랫폼의 영향력이 막강해지면서 이를 견제하려는 규제와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덩치가 커지면서 ‘갑’ 위치가 된 플랫폼이 중개자 역할에 머무르지 않고 자사 제품과 서비스를 우선 노출하거나 지배적인 지위를 이용해 수수료를 올리는 등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플랫폼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혁신을 막고 오히려 소비자 이익을 해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래픽=김성규

◇거세지는 플랫폼 규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지난달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플랫폼 아마존에 반독점 소송을 제기했다. 아마존이 다른 쇼핑몰에서 더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파는 판매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갑질’을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소장에 따르면 아마존은 해당 제품을 검색 결과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에 배치하거나 ‘바로 구매’ 같은 버튼을 얻을 수 있는 바이박스 경쟁에서 제외시켰다. 캘리포니아 법무부는 “이런 가격 정책은 소비자가 온라인에서 최저가에 물건을 사고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고 했다. 판매자가 다른 쇼핑몰에서 더 싸게 팔 수 있는 경우에도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어 오히려 소비자 이익을 해친다는 것이다. 아마존은 이에 대해 “판매자들은 아마존에서 제품 가격을 스스로 정한다”며 “우리는 다른 매장과 마찬가지로 경쟁력 있는 가격을 책정하지 않는 제품을 소비자에게 강조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반박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영향력이 막강해진 음식 배달 플랫폼은 수수료로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과 함께 수수료 상한제 규제에 맞닥뜨렸다. 미 정치 전문 매체 더힐에 따르면 팬데믹 기간 미국 내 최소 78개 도시·카운티·주에서 음식 배달 플랫폼 수수료 상한제가 도입됐다. 플랫폼이 음식점에 최대 30%까지 부과하는 수수료 때문에 소규모 식당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뉴욕과 시카고 등에선 수수료 상한제를 놓고 정부와 음식 배달 플랫폼 기업 간 소송전도 벌어지고 있다.

유럽에선 지난 7월 대형 온라인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을 제한하기 위한 ‘디지털시장법(DMA)’이 유럽의회를 통과해 내년 발효될 예정이다. 이 법은 중개 서비스, 검색 엔진, 소셜미디어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규모 플랫폼 기업이 자사 서비스를 타사 서비스보다 우위에 두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예컨대 애플이 아이폰에서 애플 앱스토어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 구글이 안드로이드폰에 사전 설치된 앱이나 소프트웨어를 제거하지 못하게 하는 것 등이 포함된다. 플랫폼을 사용하는 업체가 제공했거나 이들의 활동을 통해 얻은 데이터를 이들과 경쟁하는 데 활용해서도 안 된다. 유럽의회는 “현재 쓰이는 전자상거래 관련 규정은 2000년 아마존 같은 플랫폼이 막 시작되고,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에어비앤비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절에 도입된 것”이라며 “법은 온라인 발전을 따라잡을 필요가 있고, 이것이 우리가 새로운 법률을 만드는 이유”라고 밝혔다.

터키에선 지난 7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전자상거래 플랫폼이 과도한 할인과 마케팅을 통해 시장점유율을 확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광고·마케팅 비용 총액을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플랫폼들이 자체 상표(PB) 제품을 만들어 파는 것을 제한했다. 판매자·소비자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플랫폼이 심판(중개자)과 선수(판매자) 역할을 동시에 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본 것이다. 스페인에선 작년 배달 라이더를 보호하는 일명 ‘라이더법’이 통과됐다. 배달 라이더를 프리랜서가 아닌 고용 노동자로 인정하는 내용 외에도 배달 콜을 어떻게 배치하는지, 라이더를 어떤 방식으로 평가하는지 같은 근로 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알고리즘을 라이더들에게 알리도록 의무화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혁신인가, 갑질인가

플랫폼을 둘러싼 잡음의 근본 원인은 플랫폼이 이용자를 끌어모아 성장하는 과정에서 ‘승자 독식’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화령 한국개발연구원(KDI) 플랫폼경제연구팀장은 “플랫폼은 기본적으로 네트워크 효과(특정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해당 서비스의 가치가 높아지는 현상) 때문에 쏠림 현상이 굉장히 강하고, 큰 플랫폼이 계속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했다. 예컨대 사용자가 많을수록 보통 리뷰도 많이 올라오기 때문에 신규 소비자는 더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독과점 플랫폼을 선택하게 된다. 독과점이 오히려 소비자에게 혜택을 주게 되는 셈이다.

실제 플랫폼 시장에는 주요 경쟁 업체가 많지 않다. 미국 온라인 음식 배달 서비스 시장은 234억달러(작년 추정치) 규모의 거대한 시장이지만, 사실상 도어대시와 우버이츠, 그럽허브 세 곳이 시장을 나눠갖고 있다. 이 가운데 2013년 설립된 미국 배달 플랫폼 도어대시 점유율이 올 5월 기준 59%로 절반을 넘는다. 시장조사 업체 인사이더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내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아마존 점유율은 작년 10월 기준 41%로 월마트(6.6%)나 이베이(4.2%) 같은 경쟁사를 압도한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각국이 플랫폼 기업에 선뜻 칼을 대지 못한 것은 ‘독점 기업은 가격을 올려 소비자 이익을 해친다’는 기존 반독점법 논리를 디지털 플랫폼에 적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온라인 플랫폼은 소비자·생산자를 효율적으로 연결하고 가격 비교를 수월하게 만들어 물가를 끌어내리는 측면이 있다. 캘리포니아주가 아마존에 건 반독점 소송에 대해 미네소타대 로스쿨 톰 코터 교수는 “가장 낮은 가격을 제공하겠다는 아마존의 약속이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는가, 아니면 해를 끼치는가가 핵심 쟁점”이라며 “일반적으로 이런 유형의 소송에서 원고(캘리포니아주)가 승소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했다. 아마존의 저가 정책이 입점 업체에는 갑질일 수 있지만, 소비자 이익을 해쳤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플랫폼이 해당 산업을 키우고 소비자 혜택을 늘린 측면을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차량 호출 앱의 등장으로 소비자는 더 이상 대로변에 나가 손을 흔드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졌고, 음식 배달 앱은 다양한 식당을 한 플랫폼에서 비교·주문할 수 있게 하면서 음식 배달 시장을 키웠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이 안정적으로 서비스를 운영하려면 일정 비용을 부과할 수밖에 없고,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에 판매자와 소비자가 몰리는 게 시장 원리”라고 말했다.

플랫폼에 대한 지나친 규제가 플랫폼 참여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도 있다. 리 주오신 위스콘신대 교수 등이 작년 7월 내놓은 연구에 따르면, 독립 식당에 한해 배달 앱 수수료를 제한한 미국 14개 도시에서는 소규모 식당의 배달 음식 판매량이 줄어들었다. 반면 수수료 상한을 적용받지 않은 체인 레스토랑은 주문과 수익이 증가했다. 이 논문은 “배달 플랫폼이 규제를 받지 않는 인근 도시의 식당이나 체인 레스토랑을 홍보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배달 플랫폼이 수수료 수익 감소를 메우려 고객에게 더 높은 배달료를 부과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스페인에선 라이더법 제정 이후 글로벌 배달 플랫폼 딜리버루가 스페인에서 사업을 철수했고, 우버이츠는 법 적용을 피하기 위해 제3자에게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반면 플랫폼이 시장 경쟁에 끼치는 장기적인 해악을 고려해 반독점을 바라보는 기존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도 적지 않다. ‘아마존 저격수’로 유명한 리나 칸 미 연방거래위원장이 대표적이다. 소비자의 단기적 이익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시장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가능한지, 거대 플랫폼이 생산자(판매자) 이익을 침해하는지, 제품 품질과 다양성 같은 장기적 이익이 지켜지는지 등을 함께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2017년 ‘아마존 반독점 패러독스’라는 논문에서 “아마존처럼 다양한 비즈니스를 하는 플랫폼은 경쟁사가 의존하는 필수적인 인프라를 제어할 수 있고, 서비스를 사용하는 업체에서 수집한 정보를 활용해 그들의 입지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또 아마존이 알고리즘을 이용해 이용자와 시간대별로 수시로 다른 가격을 제시하고 맞춤형 쿠폰을 뿌리기 때문에 아마존이 가격을 올렸는지 낮췄는지 측정하는 것도 힘들다고 주장했다. ‘플랫폼의 생각법’ 저자인 이승훈 가천대 교수는 “독과점 위치를 점한 플랫폼 기업이 수수료를 올리거나 자사 상품·서비스를 만드는 식으로 이익 추구에 나설 것이란 우려를 불식시키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온플법이냐, 자율규제냐

국내에서도 플랫폼 영향력 확대에 따른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 택시 호출 시장 점유율 80% 이상을 차지하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카카오 가맹 택시에 택시 호출(콜)을 몰아준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지난 4월 배차 알고리즘 일부를 공개하고, 지난달엔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모빌리티 투명성 위원회’에서 “차별은 없었다”고 발표하기도 했지만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배달의민족과 쿠팡이츠는 올 들어 단건 배달(한 집만 배달) 프로모션을 종료하고 사실상 가격을 올려 식당들의 원성을 샀다. 그동안 이용자를 늘리기 위해 출혈 경쟁을 벌이다 결국 수수료 체계를 개편한 것이다.

분쟁 사례도 급증하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따르면 온라인 플랫폼 분쟁 접수 건수는 2017년 12건에서 지난해 103건까지 늘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66건 접수됐다. 분쟁 발생 분야도 오픈마켓, 포털, 여행중개 등 3개 분야에서 배달, 채용, 숙소 예약, 택시, 중고 거래 등 12개 분야로 확대됐다. 한 과자 업체는 오픈마켓 플랫폼 광고 서비스로 발생한 매출액이 7만원뿐인데 광고 이용 비용으로 100만원이 나왔다며 조정을 신청했다. 다른 캠핑용품 업체는 소비자가 단순 변심을 이유로 요청한 환불을 오픈마켓이 일방적으로 받아줘 피해를 봤다고 했다.

거대 플랫폼이 한 분야에서 축적한 고객·기술을 바탕으로 다른 산업으로 문어발처럼 진출하는 행태에 대한 시선도 곱지 않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보험 비교·추천 서비스를 허용하기로 하자 보험 대리점과 설계사들이 대대적인 시위에 나섰다. 보험사들도 금융 당국에 대놓고 반대하지는 못하지만 속이 타들어 가는 분위기다. 한 보험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 업체들은 소비자의 보험 가입 접근성이 개선된다고 주장하지만 보험사와 소비자 사이에 끼어드는 이런 식의 서비스가 과연 혁신적인지 의문”이라며 “보험사가 플랫폼에 내야 하는 수수료를 사업비에 반영하면 보험 가격이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온라인플랫폼 보험진출 저지와 보험영업인 생존권 사수를 위한 2차 결의대회'에서 참석자들이 손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오종찬 기자

온라인 플랫폼을 기존의 반독점법과 다른 별도의 법으로 규제해야 하는지에 대한 입장은 여야 간에 뚜렷이 갈린다. 민주당과 소상공인 단체는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 같은 법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작년 발의된 이 법은 플랫폼 사업자가 자사 플랫폼에서 거래되는 상품·서비스의 노출 순서와 기준 등을 담은 계약서를 이용 업체에 주도록 의무화하고, 입점 업체에 불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거래 조건을 바꾸는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성욱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플랫폼의 불공정 행위를 줄이고 거래의 안정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온플법 같은 최소한의 법적,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가급적 기존의 법 체계 안에서 자율 규제로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낫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지난 8월 주요 플랫폼 사업자와 유관 단체, 학계, 관계 부처 등이 모인 민간 자율 기구를 출범시켰다. 현 정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외부 전문위원으로 참여한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플랫폼의 어느 부분에 규제가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떤 식으로 규제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나 연구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사전 규제는 시기상조”라며 “입점 업체 갑질 등은 기존 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일단 시간을 둬가며 자율적으로 해결해보고 남는 부분에 대해 법적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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