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삶 꿈꾸며..오늘도 목숨 걸고 학교에 간다[시스루 피플]

김혜리 기자 입력 2022. 10. 6. 21:51 수정 2022. 10. 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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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의 아프간서 '이중고'
하자라족 여학생들
“하자라족 말살을 멈춰라” 자폭 테러 사건으로 수십명이 사망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서부의 카지 교육센터에 다니고 있는 하자라족 여학생인 시마 하킴자다와 사키나 라자이. 색깔 있는 히잡을 썼다는 이유로 등교를 저지당한 카불대학생 슈크리아 사크히자다(왼쪽 사진부터).
탄압 표적 시아파 소수민족…테러서 구사일생 “꼭 공학자 돼 아이들의 꿈이 될 것”

“탈레반이 여학생들의 교육을 막고 있지만 나는 꼭 토목공학 기술자가 되어보이겠다.”

올해 17세인 시마 하킴자다는 지난 3일 경향신문과 화상통화를 하면서 자신은 현재 집에 갇혀 있다고 했다. 대입 시험을 열흘 앞둔 지금 그의 외출 금지는 공부에 열중하라는 부모의 유난 때문이 아니다.

지난달 30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서부 다시트 에 바르치 지역의 카지 교육센터 강당에서는 학생 400여명이 대입 모의고사를 치르던 도중 자폭 테러가 발생했다. 테러리스트는 탈레반의 남녀 분리 정책에 따라 여학생만 모여있던 곳으로 뛰어들었다.

유엔아프가니스탄지원단(UNAMA)에 따르면 이날 공격으로 최소 53명이 사망했으며 110명 이상이 다쳤다. 불행 중 다행으로 하킴자다는 이날 시험에 지각했다. 등원하는 길에 폭발음을 들은 그는 곧장 집으로 다시 달렸고 지금까지 집에만 머물고 있다.

카지 교육센터에 다니던 사키나 라자이(17)도 간발의 차로 목숨을 건졌다. 밤을 새워서 공부했던 그는 테러가 일어났던 날 모의고사를 보러 가지 않기로 했다. 오전 7시30분쯤 잠을 청하려던 라자이는 가족과 친구들의 전화에 잠이 깼다. 전화를 건 친구는 가까이서 굉음이 들렸는데 라자이가 죽은 줄 알았다며 엉엉 울었다. 1년 전 같은 지역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로 하굣길에 눈앞에서 친구들을 잃은 이들은 테러 소식이 들리면 서로에게 전화를 걸어 생사를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아프간 최하층 ‘하자라족 여성’

하킴자다와 라자이는 아프간 내 소수집단인 하자라족 여학생이다. 이번 공격의 배후를 자처하는 집단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하자라족은 이슬람국가(IS)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조직이 벌인 소행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프간 인구의 85~90%는 수니파다. 하자라족은 소수파인 시아파라는 이유로 탈레반이나 IS로부터 오랫동안 핍박을 받아왔다. 특히 시아파를 배교자라 여기는 IS는 이들을 겨냥한 테러를 자주 감행했다.

특히 하자라족을 탄압하던 주요 단체 중 하나인 탈레반이 지난해부터 아프간을 재장악하면서 하자라족이 다니는 학교·병원·사원 등에서 테러 공격이 급격히 늘었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지난해에만 IS의 공격으로 700명이 넘는 하자라족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지옥에서도 계급은 존재한다. 현재 아프간에서 펼쳐지는 지옥의 최하층엔 하자라족 여성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탈레반이 탄압의 대상으로 여기는 ‘여성’과 ‘하자라족’이라는 정체성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킴자다는 열 살배기 동생과 함께 공원에서 놀다가 또래 아이로부터 “하자라족 여자애가 나와 있다”며 손가락질을 받은 적이 있다. 카불대 사회과학대학 학부생인 슈크리아 사크히자다(24)는 검은색이 아닌 히잡을 쓰고 등교했다가 탈레반 무장대원에게 붙잡혀 집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이들의 ‘교육받을 권리’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탈레반 임시정부는 재집권 후 남학생들의 등교는 허용했지만 여중·고생의 등교는 막았다. 그러자 많은 하자라족들은 고정 지출을 줄여서라도 여자 아이들을 사설 교육기관에 보내기 시작했다. 하자라족은 여성도 남성과 평등하게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자라족 여학생들에겐 등원하기 위해 집 밖을 나서는 것조차 “목숨을 건 도박”이다. UNAMA에 따르면 지난해 5~6월에만 하자라족이 타고 있는 버스 등 교통수단에서 사제폭발물(IED)을 사용한 공격이 8차례 발생했다. 탈레반 정권이 다시 들어서면서 여성들은 신체를 노출하면 안 된다는 압박 때문에 자전거도 이용하기 어렵게 됐다. 하자라족 여학생들은 1~2시간씩 걸어 등원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그렇게 도착한 교육기관에서도 이들은 안전하지 않다. 이번 테러 공격이 발생한 카지 교육센터의 학생 대다수는 하자라족인데, 이곳에선 2018년에도 유사한 공격이 발생해 최소 34명이 숨진 바 있다.

■“말살을 멈춰라” 저항 계속

지난달 30일 테러 공격이 발생한 이후 하자라족 여성들은 자유와 권리를 요구하면서 저항 운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하자라족 여성 50여명은 이날 다친 여학생들이 입원한 병원 앞에 모여 “하자라족의 말살을 멈춰라”라고 소리쳤다. 이를 지켜보던 탈레반 무장대원들은 “서양에서 돈을 받고 시위나 하는 창부들”이라고 욕하며 이들을 폭행했다.

하지만 저항은 계속되고 있다. 하자라족은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하자라족의 말살을 멈춰라(StopHazaraGenocide)’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국제사회에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목숨을 건 교육에 대한 열망도 꺾이지 않았다. 하킴자다는 열흘 후 열리는 대입 시험에서 최선을 다해 토목공학과에 진학하겠다며 “공학자를 꿈꾸는 하자라 여자아이들에게 새로운 청사진을 보여줄 것”이라고 약속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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