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 사각' 게임업계..임신부 초과근무·출근 전 공짜노동
엔씨소프트·넷마블 등 적발
대부분 임금·근로시간 위반
‘K콘텐츠’ 열풍의 주역인 게임업계에서 임신 노동자 장시간 노동, 출근 전 강제노동 등 노동법 위반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악명 높은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 직전 고강도 근무체계)를 가능하게 하는 탄력근로제 등 유연근무 관련 제도 역시 사용자가 법을 어기고 입맛대로 악용할 소지가 다분했다.
6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최근 5년간 주요 게임업체 근로감독 결과’를 보면, 노동부는 지난해 11월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에 대해 근로감독을 벌여 총 11건의 노동관계법 위반사항을 적발했다. 엔씨소프트는 8건, 넷마블은 3건이 적발돼 시정 지시를 받았다.
사례를 보면 엔씨소프트에서는 임신 노동자의 모성보호와 관련해 위반사항이 다수 적발됐다. 엔씨소프트는 임신한 직원에게 인가 없이 야간·휴일근로와 시간외근로를 시켜 시정 지시를 받았다. 근로기준법 70조에 따르면 회사는 임신 노동자의 명시적인 청구와 노동부 장관의 인가가 없으면 오후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의 시간 또는 휴일에 일을 시켜선 안 된다. 근로기준법 74조는 임신 노동자에게 시간외근로를 시키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또 산후 1년이 지나지 않은 직원에 대해 연장근로 한도를 위반 했다.
쉬는 시간도 없이 과로를 시킨 점도 파악됐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는 1개월이 넘어가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적용받는 노동자에게 근무일과 근무일 사이 11시간 이상의 연속 휴식 시간을 줘야 하는데, 엔씨소프트는 이를 어겨 시정 지시를 받았다. 반면 직원이 문제를 제기할 통로인 노사협의회는 없었고 고충처리위원도 선임되지 않았다. 넷마블에서는 퇴직자 퇴직금과 임금, 재직 직원 임금 일부를 지급하지 않은 점이 드러나 시정 지시를 받았다.
게임업계의 노동관계법 위반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엔씨소프트와 넷마블 근로감독보다 1년 앞선 2020년 10월 스마일게이트 근로감독에서는 4건의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적발사항은 대부분 임금과 노동시간에 관한 위반이었다. 5년간 7개 업체에서 적발된 위반사항 31건 가운데 3분의 1인 10건이 임금·휴일수당·퇴직금 미지급이었다. 9건은 연장근로 한도 위반·연속 휴식 시간 등 노동시간 관련 위반이었다. 노동시간 관련 위반 9건 중 4건은 임신 또는 산후 1년 미만 여성 노동자와 관련돼 있었다.
정부, 취업규칙 독소에도
업계 ‘유연근무 확장’ 공감
노동자들 보호 소홀 지적
게임업체들은 장시간·고무줄 노동을 시킬 수 있도록 취업규칙을 두고 있었다. 류 의원실이 주요 게임업체 12곳(넥슨, 엔씨소프트, 스마일게이트, 네오위즈, 넷마블, 위메이드, 웹젠, 카카오게임즈, 컴투스홀딩스, 크래프톤, 펄어비스, 엔에이치빅풋)의 취업규칙을 분석한 결과, 선택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재량근로제 등 유연근무제를 채택하고 있었다.
12곳 중 10곳은 2주 단위 탄력근로제를 도입하면서 ‘노동자 범위’와 ‘유효기간’을 명시하지 않았다. 노동부의 행정해석 등을 보면 노동부는 “단순히 2주 이내의 탄력근로제를 도입한다고만 명시해놓았다면 근로기준법 제51조 제1항의 ‘취업규칙 등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적법하게 도입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대상 노동자의 범위와 유효기간 등을 취업규칙에 명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설명한다.
12곳 중 8곳은 ‘출근 전 공짜노동’을 아예 규정으로 명시해 뒀다. 넥슨은 취업규칙에 “사원은 시업(업무 시작) 시각 이전에 출근해 근무준비를 한다’(제18조)고 정했다. 카카오게임즈는 “사원은 시업 시각 전에 출근하여 시업 시각에 정상적인 근무를 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퇴근은 종업 시각 후 서류, 집기, 비품 등을 정리하여 소정 장소에 보관 후 행한다”(제24조)고 규정했다.
정부가 게임업계 노동자들의 노동권 보호에는 소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7년 과로사한 20대 게임 개발자가 한 주에 95시간55분이나 일해 산재를 인정받는 등 과로 문제가 심각한데도 기업의 요구인 ‘유연근무 확장’에만 공감한다는 것이다.
류 의원은 지난 5일 열린 문체부 국정감사에서 박보균 장관을 향해 “장관이 게임업계 노동자를 만나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관계부처와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나도 부정선거라 생각했었다”···현장 보고 신뢰 회복한 사람들
- 국힘 박상수 “나경원 뭐가 무서웠나···시위대 예의 있고 적대적이지도 않았다”
- 늙으면 왜, ‘참견쟁이’가 될까
- 공영방송 장악을 위한 이사장 해임 “모두 이유 없다”…권태선·남영진 해임무효 판결문 살펴
- 내란의 밤, 숨겨진 진실의 퍼즐 맞춰라
- ‘우리 동네 광장’을 지킨 딸들
- 대통령이 사과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사과해요, 나한테
- 독일 크리스마스 마켓에 차량 돌진…70명 사상
- [설명할경향]검찰이 경찰을 압수수색?···국조본·특수단·공조본·특수본이 다 뭔데?
- 경찰, 경기 안산 점집서 ‘비상계엄 모의’ 혐의 노상원 수첩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