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만에 한 풀어"..여순사건 45명 첫 희생자 결정
[앵커]
["그전에는 국가 공식 명칭이 '여순반란사건' 이었습니다… 제주도 4·3 사건을 강제 진압해서 '동포를 죽여라' 하는 것에 대한 항거였기 때문에 반란일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반란을 빼버리고 '여순 사건' 이라고 썼습니다."]
오랫동안 '반란'으로 각인됐던 민족의 슬픈 역사는 조정래 작가의 소설 '태백산맥' 이후 비로소 '사건'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여순 사건은 해방 이후,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했던 시기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군인들이 제주 4.3 사건 진압명령을 거부하면서 시작된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이었습니다.
그 날로부터 무려 74년이 지나, 정부가 처음으로 여순 사건의 사망자 마흔다섯 명을 희생자로 인정했습니다.
이성각 기잡니다.
[리포트]
1948년 10월, 전남 여수에 주둔하던 국군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제주 4.3 진압 명령을 거부하며 발생한 여수·순천 10.19 사건.
그해 11월, 어머니 뱃속에 있던 권종국 씨는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권종국/여순사건 유족 : "(어릴 적에) 다 엄마 아빠가 있는데, 왜 나는 엄마, 아빠가 없는가 그런 생각했죠."]
반군과 진압군이 번갈아 가며 마을을 점령하던 때, 아버지는 반군을 도왔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갔고, 마을 사람 쉰 명과 함께 사살됐습니다.
이후 태어난 권 씨는 부모 없는 설움에 손가락질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권종국/여순사건 유족 : "그때 당시에는 반란군 취급을 해가지고..."]
권 씨는 20여 년 전부터 사건의 진상 규명과 명예회복 운동에 참여했고, 마침내 아버지는 여순사건 희생자로, 자신은 유족으로 각각 인정됐습니다.
[권종국/여순사건 유족 : "(이제 아버지)묘에 가서 한마디로 '좋은 데로 가십시오. 고이 쉬십시오' 해야죠."]
정부는 여순사건 명예회복위원회를 열고 권 씨 부자와 같은 희생자 45명과 유족 214명을 결정했습니다.
사건 발생 74년 만에 정부가 처음으로 희생자를 인정한 것입니다.
[주철희/여순사건위원회 위원 : "처음으로 희생자를 결정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고, 이 의미를 중심으로 해서 앞으로 지속적으로 여순사건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이 이뤄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국에서 접수된 희생자 신고는 3천 2백여 건, 위원회는 내년 초까지 신고를 받는 한편, 해당 시군들과 합동으로 이번 달부터 앞으로 2년 동안 희생자 명예 회복 등 진상 규명 조사 활동에 들어갑니다.
KBS 뉴스 이성각입니다.
촬영기자:김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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