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년 만에..'여순사건' 피해자 45명 첫 공식 인정
1948년 10월27일. 전남 여수군 여수읍 봉산리에 살던 박쇠동(당시 46세)·박양기(당시 19세)씨 부자는 이날 잇따라 총살됐다.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며 구장(마을 이장)을 맡았던 아버지 박쇠동씨는 집에서 옆구리에 총을 맞았다.
국민학교 교사였던 아들 박양기씨는 이날 오후 동료교사 10여명과 함께 학교 뒤편 밭으로 끌려간 뒤 구덩이에서 사살됐다. 부자를 총살한 사람들은 ‘여수·순천 10·19사건’(여순사건) 당시 반란군 토벌에 나선 국군이었다.
박씨 부자처럼 억울하게 희생된 여순사건 피해자들이 74년 만에 처음으로 정부로부터 공식 희생자와 유족으로 인정됐다. 정부는 여순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도 본격 착수한다.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6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위원회에서 여순사건 관련 희생자 45명과 유족 214명을 피해자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여순사건과 관련해 정부가 공식적으로 희생자와 유족을 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여순사건은 1948년 여수에 주둔하고 있는 국군 14연대 일부 군인들이 정부의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일으킨 사건이다. 1955년 지리산 입산 금지가 해제될 때까지 전남과 전북, 경남 일부 지역에서 많은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당했다.
지난 8월 전남도에 설치된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실무위원회’는 ‘여순사건 특별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으로 희생자 163명과 유족 217명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위원회에 심사·결정을 요청했다.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는 이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관련자로 인정됐거나 당시 경찰서 보안기록이나 군법회의 판결문 등 공적인 기록이 확인된 45명을 우선 희생자로 결정했다.
정부는 첫 피해자 결정과 함께 본격적인 진상규명에도 착수한다. 위원회는 이날 ‘진상규명 조사 개시’를 결정하고 합동 조사단을 꾸려 2024년 10월까지 2년간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강현석 기자 kaj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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