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워달라 입양 보낸 반려견이 도살장에..'
사육견 외 소형견들도 다수
냉장고에 30여구 사체 쌓여
일가족이 사육·도살·납품
경찰 “직접적인 증거 없다”
수차례 고발에도 처벌 피해
바셋하운드 라온이, 다온이를 키우던 A씨(45)는 지난 3일 지인 B씨에게 강아지들을 입양보냈다. 가족처럼 키운 반려견이었지만 잦은 지방 출장으로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자 내린 선택이었다. 무엇보다 “마당 넓은 시골집에서 키워주겠다”는 B씨의 제안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라온이와 다온이는 다음날 인천 강화군 불은면에 있는 도살장에서 발견됐다. 잘 도착했는지 사진을 보내달라는 요구에도 B씨가 답하지 않자 불안함을 느낀 A씨가 직접 수소문했다. 동물보호소, 동물구조관리협회 어디에서도 라온이와 다온이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A씨는 한 동물보호단체가 운영하는 유튜브 영상에서 강화도 도살장 영상을 발견했다. 라온이와 다온이가 이곳에 있다고 직감한 A씨는 현장에서 이들을 구출했다. A씨는 “B씨가 도살장과 관계가 있어 의도적으로 (개들을) 데려간 것 같다”며 “잘 좀 키워만 달라는 부탁이 무참히 짓밟혀 너무 충격을 받고 울기만 했다”고 말했다.
동물구조119는 지난 5일 오전 10시쯤 경향신문과 동행해 이곳 사육장에 갇혀 있는 개 33마리를 모두 구조했다. 사육장 입구는 철조망 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고, 내부를 볼 수 없게 검은 천으로 덮여 있었다. 도살장 주인은 이날 아침까지 개들에 대한 소유권을 놓고 동물구조단체와 실랑이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구조된 개 중에는 소위 ‘식용견’으로 불리며 길러진 개들 외에도 포메라니안, 슈나우저, 시바견, 푸들, 몰티즈 등 소형 품종견이 다수 있었다. 라온이와 다온이처럼 반려견으로 입양한 뒤 도살장으로 보내진 개들과 집을 잃은 반려견이 이곳에서 식용으로 도살된 것이다. 전날 동물구조119와 경찰, 강화군청이 현장을 수색해보니 냉장고에 30여구의 개 사체가 쌓여 있었다. 노끈 등 각종 도살 장비도 발견됐다.
불법 도살을 의심해 1년 전부터 이 사육장을 추적해온 동물보호 활동가들은 해당 사육장이 개를 직접 도살해 영양탕(보신탕) 식당에 납품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육장을 운영하는 건 C씨 가족이다. C씨와 아들이 사육장에 붙은 도살장에서 개를 도살해 아내가 운영하는 식당에 납품하는 구조라고 한다. 이날 구조된 개들은 인천 계양구 다남동에 위치한 인천수의사회 동물보호소에 맡겨졌다.
인천 강화경찰서는 동물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C씨를 수사 중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C씨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처벌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고광현 활동가는 6일 “그동안 수차례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했지만 모두 처벌받지 않았다”고 했다. 처벌하려면 도살하는 장면을 수사기관이 포착해야 하는데 도살장이 폐쇄적인 구조라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동물구조119는 도살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1년여간 잠복했지만 직접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
‘동물의 권리를 옹호하는 변호사들 모임’ 소속 한주현 변호사는 “아직까지는 수사를 담당하는 분들이 동물보호법 위반 신고에 대해 (중요하지 않은 문제로 인식해) 반려하거나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최서은·이홍근 기자 ciel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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