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끝내 '성평등' 삭제한 정부조직 개편안, 국회가 저지해야
윤석열 정부가 6일 여성가족부 폐지와 국가보훈처의 보훈부 승격, 재외동포청 신설을 골자로 하는 정부조직 개편안을 공개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발표한 안에 따르면, 여가부는 사라지고 주요 기능은 다른 부처들로 이관된다. 청소년·가족, 양성평등, 권익증진 기능은 보건복지부 산하 ‘인구가족양성평등본부’, 여성고용 기능은 고용노동부로 넘어간다. 기어코 윤석열 정부가 ‘여성’을 지우고 ‘성평등’을 버리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분열과 퇴행으로 귀결될 ‘여가부 폐지’는 이제 국회가 막아내야 한다.
이 장관은 여가부 기능 축소 우려에 대해 “오히려 사회복지·보건체계와 여성가족 업무가 융합돼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라고 했다. 말장난에 불과하다. 이런 식이라면, 경제 관련 부처들은 모두 기획재정부로 통합하고 그 아래 산업통상자원본부나 중소벤처기업본부를 두면 되는 것 아닌가. 여가부가 폐지될 경우 복지부나 노동부로 이관된 여가부 업무는 기존 부처 업무에 비해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 더욱이 정부 정책을 결정하는 최고 심의·의결기구는 국무회의다. 여가부 장관이 국무위원으로 참여해 성평등 정책의 조율·협업을 주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여가부와 그 장관의 존재가 지워지면 성평등 정책은 컨트롤타워 부재로 인해 심각하게 후퇴할 것이다.
윤 대통령의 젠더 인식은 대선 과정에서 논란을 야기했다. 성폭력처벌법에 무고죄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하더니, 페이스북에 “여성가족부 폐지”를 올리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는 발언까지 했다. ‘안티 페미니스트’ 성향의 일부 남성 청년을 겨냥한 갈라치기 전략이었으나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대선 출구조사 결과 20대 여성의 58%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것으로 나왔고, 이 같은 전략투표는 대선 판세를 0.73%포인트 차 초접전으로 몰고 갔다. 윤 대통령은 이를 겪고도 학습한 게 없나.
한국 여성 임금노동자의 시간당 임금은 남성의 69.8%(여가부 통계)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최하위 수준이다. 2011~2020년 살인·강도·방화·성폭력 등 4대 흉악범죄 피해자는 여성이 남성보다 8배가량 많았다(법무연수원 ‘2021 범죄백서’). 이런 현실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소거’하고 구조적 성차별을 ‘삭제’하면, 남성을 포함한 모든 시민은 더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해질까. 지난달 방한한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도 “한국과 전 세계의 성평등”을 강조한 바 있다. 정부·여당은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성평등 정책을 주시하고 있음을 새겨야 한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여가부를 지켜낼 책무가 있다. 소속 정치인들의 성폭력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여성들에게 상처를 안긴 과오를 반성한다면 더더욱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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