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도어스테핑 유감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출퇴근하는 것 말고도 여느 대통령과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출근길에 기자들과 갖는 ‘도어스테핑(doorstepping·약식회견)’이다. 특정 행사나 기념일 외에 대통령의 육성을 듣기 어려웠던 과거와 비교하면 그 소통 의지는 평가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 박수현 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한 방송에서 “윤 대통령이 도어스테핑을 처음 했을 때 ‘우리보다 잘하면 어떡하지’ 그런 부러움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일본 등에서 최고지도자의 도어스테핑은 일상이다. 미국 대통령은 집무실(오벌 오피스)과 브리핑룸이 백악관 웨스트 윙(서관) 1층에 같이 위치한 때문에 하루에도 수차례 기자들과 마주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도어스테핑 중 “(북한은) 전례 없는 ‘화염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는 말로 논란을 일으켰다. 일본에서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이후 ‘부라사가리(ぶら下がり·매달리기)’로 불리는 도어스테핑이 이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이런 점에서 국제 흐름을 반영한 진일보한 조치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이 갈수록 논란을 낳고 있다. 장관 후보자 부실검증을 두고 “전 정권에서 지명된 장관 중에서 그렇게 훌륭한 사람 봤어요”라고 했고, 김건희 여사의 봉하마을 지인 동행을 두고는 “대통령을 처음 해봐서”라고 했다.
그런데 도어스테핑이 이젠 실언을 넘어 퇴행하고 있다. 윤 대통령이 손사래를 치며 “그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겠다” “오늘은 XX에 관한 질문만 받도록 하겠다” “잘 모른다”고 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일방적 소통의 장으로 변질된 것이다.
윤 대통령이 6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을 두고 “무슨 문자가 어떻게 됐는지 잘 모르겠는데, 파악해보겠다”고 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윤 대통령 풍자만화 선정 기관을 압박한 것에는 “대통령이 언급할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모른다고 넘기거나, 답을 피하는 건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직무유기다. 입장을 밝히고, 문제가 있으면 유감을 표명해야 진정한 소통이다. 윤 대통령은 도어스테핑을 시작한 이유를 돌아봐야 한다.
이용욱 논설위원 wood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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