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중고명품 시장 폭발 성장, MZ세대가 주역

김지섭 기자 2022. 10. 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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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LY BIZ] 팬데믹·경기둔화로 중고명품 인기

명품(名品) 업체들의 잇단 가격 인상과 금리 인상 등의 여파로 신품 대신 중고 명품 거래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중고 명품 시장의 급성장을 대하는 업체들의 전략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고객에게 서약서까지 받으며 중고 거래 단속에 나선 업체가 있는가 하면, 중고 거래를 독려하며 직접 시장에 뛰어드는 업체도 있다.

글로벌 중고 명품 플랫폼인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홍콩 지사에서 직원이 중고 명품 가방의 상태와 진품 여부 등을 검사하고 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중고 명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관련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 /블룸버그

◇팬데믹 후 폭발한 중고 명품 시장

중고 명품 시장은 팬데믹을 기점으로 ‘V 자’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올해 전 세계 중고 명품의 매출액은 총 71억5700만달러(약 10조2000억원)로 지난해(49억700만달러)보다 무려 45.9% 성장할 전망이다. 중고 명품 시장 성장률은 2018년에도 30.3%를 기록할 만큼 높은 편이었으나 팬데믹 사태로 소비가 전반적으로 위축됐던 2020년엔 2.1%로 움츠러들었다. 그러다 지난해 21.1%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인 후 성장세에 더 탄력이 붙었다. 지난해와 올해 명품 신품의 매출액 증가율이 각각 16.5%, 8.9%(추정치)인 것과 비교하면 중고품 판매가 얼마나 가파르게 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팬데믹 이후 명품 시장에서 중고품 판매 성장률이 신품을 크게 앞지르면서 전체 명품 판매에서 중고품이 차지하는 비율도 2019년 3.1%에서 올해 3.9%로 늘었다. 시장에서는 중고 명품의 매출이 2025년 사상 처음 100억달러를 돌파해 113억7400만달러(약 16조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명품 시장 점유율도 2025년 4.9%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컨설팅 업체 베인앤드컴퍼니는 “중고 명품 수요 급증은 지난해 이후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소비 흐름 중 하나”라며 “앞으로 5년간 중고 명품 매출의 연평균 증가율은 신품 매출의 2배인 15%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MZ세대 중심으로 확산되는 중고 거래

중고 명품 시장이 급성장세를 보이는 배경에는 20~30대인 MZ세대 중심으로 불고 있는 명품의 대중화 바람이 있다. 과거 20~30대는 결혼, 육아 등에 대비해 부지런히 돈을 모아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 연령대였기에 소득에 비해 부담이 큰 명품 소비를 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금융 위기 이후 저성장이 굳어지자 청년들은 돈을 악착같이 모으기보다 현재의 행복을 위해 소득 대비 지출을 늘리는 모습을 보여왔다. 여기에 결혼·출산을 꺼리는 자유로운 개인주의 문화까지 겹치면서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고가 브랜드 제품을 향유하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명품이 더 이상 중장년층 이상이나 고소득층 등 일부의 전유물이 아닌 대중적 ‘하이엔드 패션’ 문화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18년에 MZ세대는 전 세계 명품 소비자의 36%를 차지했는데 이 비율은 2025년 58%까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서 명품을 걸치고 다니는 사람이 크게 늘면서 연령·소득 수준과 상관없이 누구나 명품을 선망하게 됐고, 이에 따라 명품 보유 부담을 크게 낮춰주는 중고 시장이 떠올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명품 대중화 이후 사람들은 명품을 한둘이 아닌 여러 종류 갖고 싶어 하는 욕구가 생겼다”며 “신품을 여럿 사기는 어려운 데다 구하기 어려운 모델을 찾다 보니 자연스레 중고 시장이 커진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는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경기 둔화에 따른 실질 소득 감소로 중고 명품 선호도가 더 올라갔다. 루이뷔통과 샤넬이 지난해에만 각각 5차례, 4차례나 제품 가격을 올리면서 명품 구매에 따른 기회비용이 크게 오르자 중고 명품이 더 각광받는 측면도 있다. 샤넬은 클래식 플립백 등 대표 핸드백 가격이 2019년 대비 2배나 올랐다. 이 밖에 더리얼리얼·베스티에르 등 중고 명품 전문 플랫폼이 늘면서 거래 편의성이 높아진 점도 중고 명품의 폭발적 성장세를 설명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엇갈린 대응 전략

일부 명품 업체는 중고 시장 성장을 반기며 새로운 기회를 모색 중이다. 구찌의 모기업 케링그룹과 버버리, 스텔라 매카트니는 고객이 보유한 자사 제품을 사들여 재판매하거나 다른 중고 거래 플랫폼에 직접 보내는 협업에 착수했다. 케링은 2020년부터 중고 명품 플랫폼 더리얼리얼과 손잡고 온라인에서 구찌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케링과 버버리, 스텔라 매카트니는 중고 명품 플랫폼에 올라오는 자사 제품의 진위를 가려주는 인증 사업도 벌이고 있다. 자사 제품이 다양한 경로로 시장에 풀리게 해 타깃 고객층을 확대함으로써 수익을 늘리려는 전략이다.

반면 중고 시장 확대를 달가워하지 않는 브랜드들도 있다. 명품 중에서도 가격대가 높은 편에 속하는 ‘에루샤(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가 대표적이다. 이 브랜드들은 자사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리셀(재판매)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는 등 자사 제품의 중고 거래가 활성화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공급량을 조절하고 고객층을 제한해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새기려는 전략이다. 가격 결정의 주도권을 ‘리셀러’들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목적도 있다.

악셀 뒤마 에르메스 CEO(최고경영자)는 “중고 제품은 에르메스 매장을 찾는 고객에게 피해를 준다”며 중고 시장에 불편한 심경을 드러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구찌든 에루샤든 시장에서 누리는 위상과 영향력을 높이려는 목적은 같다”며 “단지 가격대, 이미지, 마케팅 등을 차별화해 서로 다른 고객층을 노리는 것이어서 어떤 전략이 더 낫다고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일부 브랜드가 중고 시장 성장에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확산세를 꺾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비싼 신품 구매 후 중고품 판매로 지출액 일부를 회수하길 원하는 소비자가 많은 데다, 명품 특유의 공급 제한 정책이 여러 명품 수요자를 중고 시장으로 내몰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6월 기준 샤넬 가방의 가치가 전년 대비 24.5%나 상승하는 등 중고 명품은 투자 상품 구실도 하고 있다”며 “중고품에 비우호적인 브랜드들이 있다 해도 성장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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