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훈·임윤찬, 황제들의 운명적 만남 [고승희의 리와인드]

2022. 10. 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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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정명훈·천재 임윤찬
원코리아오케스트라와 협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황제'
확신에 찬 연주·록스타 면모
거장의 손끝에서 만든 '운명'
관객들 일으켜 세워 박수 보내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와 임윤찬의 협연 무대 [롯데콘서트홀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김선욱, 조성진에 이어 이번엔 임윤찬이었다. 마에스트로 정명훈(69)과 그의 ‘최정예 부대’인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는 올해 클래식계 ‘최고의 스타’인 임윤찬(18)과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를 연주했다. 마지막 건반이 눌리자 1920명의 관객은 함성과 함께 기립박수를 보냈다. 연주를 끝내고 돌아선 지휘자 정명훈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임윤찬이 마에스트로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자 그는 어린 손주를 안으며 등을 토닥여줬다. 만족감과 흡족함이 가득한 정명훈의 얼굴을 보는 것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그는 단원들과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고,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시대를 초월한 ‘황제’들의 ‘운명적 만남’이었다.

지난 5일 저녁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와 임윤찬의 협연 무대가 열렸다. 임윤찬의 밴 클라이번 콩쿠르 이전 연주가 결정된 이번 무대는 그의 우승 이후 엄청난 기대를 모은 공연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열리는 임윤찬의 모든 공연은 좌석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일부 클래식 팬들 사이에선 ‘클래식계의 포켓몬빵’으로 불릴 정도다. ‘오픈런’은 기본, 이름만 붙이면 ‘매진 대란’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조 ‘클래식 스타’인 마에스트로 정명훈의 시너지가 더해지며 평일 저녁의 롯데콘서트홀은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이날 공연장을 찾았다.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5번 ‘황제’는 정명훈이 유망한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선보이는 곡이다. 특히 이날의 레퍼토리는 한국인 최초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과 함께 했던 원코리아오케스트라의 제1회 정기연주회와 같았다. 2017년 8월 공연이었다.

원코리아오케스트라는 남북한 교류를 목적으로 국내에서 활동 중인 전, 현직 오케스트라 단원과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모인 프로젝트 악단이다. 정명훈이 각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오케스트라로, 그가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이날 무대는 5번의 연속이었다. 5년 전의 시간을 재연하듯 현재 클래식계에서 ‘신드롬’을 몰고 온 임윤찬의 ‘황제’로 시작됐다.

지휘자 정명훈이 이끄는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을 연주하고 있다. [롯데콘서트홀 제공]

임윤찬의 ‘황제’는 젊고 생생했다. 오케스트라의 팡파르로 문을 연 1악장에서 그는 경쾌하면서, 가볍지만은 않은 화려함으로 출발했다. 한 음 한 음 유려하게 이어지는 1악장의 타건은 애써 튀려고 하지 않으면서도 선명하게 이어지는 음색들이 호쾌했다. 1악장과는 대비되는 2악장으로 넘어오면 고요한 호수를 다스리는 듯한 정명훈의 오케스트라와 함께 과하지 않은 피아노가 아름답게 얹어졌다. 임윤찬에겐 하나도 버리는 음표가 없었다. 3악장에 접어들면 독창적인 해석이 눈에 띄었다. 만 열여덟 살의 ‘천재 피아니스트’는 확신에 찬 연주로 자기만의 ‘황제’를 만들어갔다. 다양한 음색을 오가며 건반 위를 정확한 터치로 ‘콕콕’ 누를 땐 그만의 음악에 집중하라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3악장 만큼은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아닌 록스타 임윤찬이었다.

짜릿하고 호쾌한 마무리로 ‘황제’가 끝나자 객석은 떠나갈 듯 환호를 보냈다. 임윤찬은 커튼콜 이후 총 세 곡을 두 번의 앙코르로 연주했다. 스페인 작곡가 페데리코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과 스크랴빈의 소곡과 시곡이었다. 정교한 테크닉과 시린 음색이 여운을 남기는 연주였다.

정명훈과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의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 역시 압도적인 무대였다. 그 흔한 ‘운명’은 일명 ‘정마에’와 ‘작정한 듯한’ 원 코리아 오케스트라의 완벽한 조화를 만날 수 있는 곡이었다. 거장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음색은 형언할 수 있는 감동이 찾아왔다. 역동적인 몸짓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동작에 맞춰 오케스트라 역시 부족하지 않은 소리를 냈다. 마디에서 마디로 이어지는 사이, 단원과 단원 사이 미묘하게 떠오르는 빈 공간은 거장의 지휘가 꽉 메워줬다. 폭발할 듯한 웅장함은 아니었지만, 오케스트라의 자연스러운 블렌딩은 깊이 와닿는 무대였다.

‘운명’까지 마치자, 객석은 50년을 뛰어넘는 두 황제와의 만남을 체감했을지도 모른다. 정명훈의 연주는 매번 새롭다. 만나는 악단과 협연자마다 다르고, 그 때마다 거장의 제스처도 달라진다. 이날도 명장면이 연출됐다. 몇 번의 커튼콜 이후 정명훈은 단원들에게 노고를 치하하며 박수를 보내더니, 관객들을 자리에서 일으켜 세웠다. 롯데콘서트홀의 1열부터 시작해 3층 객석까지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번엔 관객을 향한 박수를 보냈다. 공연을 찾아오고, 온 맘을 다해 감정을 나누며, 아낌없이 박수를 건넨 관객들을 위한 예우였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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