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밖 홈리스 사람들, 이젠 당사자 목소리 낼 때죠"
“저에게 중요한 인생 가치 중 하나가 재미입니다. 그런데 여기 수업이 흥미롭고 재밌어요. 학생들이 다채로워 제 에너지가 채워지는 느낌이죠. 우울할 새가 없어요. 학생들이 끊임없이 웃고 이야기하면서 저한테 긍정적인 자극을 주죠.”
2008년부터 15년째 ‘아랫마을 홈리스야학’ 교사로 활동 중인 황성철(44)씨에게 “왜 야학을 떠나지 않느냐”고 묻자 나온 말이다.
홈리스야학은 ‘노숙인복지와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에서 홈리스 당사자 중심의 운동을 내세우며 2010년에 단체 이름을 바꾼 ‘홈리스행동’의 조직 사업 중 하나다. 2010년 서울 서대문에 공간을 마련해 매일 수업을 하는 야학으로 첫발을 뗐지만, 2007년부터 고정된 공간 없이 주말마다 홈리스들에게 컴퓨터 등을 가르쳤던 ‘주말배움터’까지 잡으면 야학의 역사는 15년이다.
서대문에서 2년 운영하다 2012년 용산 원효로 1가로 옮긴 야학은 지난달 17일 세 번째 야학 공간에서 2학기 개학식을 했다. 월세 부담이 100만원 더 늘었다는 새 공간은 이전 야학보다 서울역에 더 가까운 용산 청파로에 자리 잡았다. ‘반빈곤운동 공간 아랫마을’로 불리는 이 곳은 반빈곤운동 단체 5곳(홈리스행동, 빈곤사회연대,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금융피해자연대 해오름, 용산참사진상규명위원회)이 함께 쓰고 있다.
홈리스행동 활동가로 일하며 야학을 담당하는 황씨와 올해로 4년 차 야학 교사 주장욱(27)씨를 지난 30일 야학에서 만났다.
이번 학기 야학 등록생은 모두 24명으로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이며 일부는 공공근로를 하기도 한단다. “쪽방이나 고시원 거주자가 많아요. 거리에서 지내는 분도 1명 있죠.”(황) 개설 강좌 9개 중 가장 인기 있는 수업은 ‘합창’ ‘영어’ ‘컴퓨터와 스마트폰 기초’란다. “합창 교실이 인기 폭발이죠. 학생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해요. 또 학생들 대부분 스마트폰 초기 이용자이지만 지적 장애 등으로 한글 해독이 어려워 스마트폰 사용이 쉽지 않아요. 수업에서 스마트폰에 나오는 그림 설명도 하고 간단한 조작법도 알려주죠.”(황·주)
황 활동가는 이번에 ‘권리와 토론’, 주 교사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기초’ 수업을 맡았다. ‘권리와 토론’ 수업은 홈리스야학의 교육 목표와도 맞닿아 있단다. “학생들이 살면서 주거권을 제대로 누렸는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침해를 받았는지를 함께 이야기하죠. 한글을 모르는 사람도 있어 그림과 몸짓 등으로 ‘권리 표현’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황 활동가는 덧붙였다. “수업에서 복지는 ‘우리가 쟁취한 국민의 기본 권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우리는 받는 사람이니 감사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에 맞서서요.”
홈리스야학의 교육 목표에 대해 주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명시적으로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홈리스 상태에 이르는 삶의 경로에서, 또 홈리스 상태에 머물며 박탈당해온 권리들에 대해 배우고 그것을 실현하는 장의 역할이죠.” 황 활동가의 답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친구 권유로 2008년 1월부터 노숙인인권공동실천단 활동을 하다 그해 3월에 ‘노숙인 주말배움터’에 합류한 황 활동가는 2011년에 홈리스행동 상임활동도 시작했다. “부산에서 자동차 부품 회사에 다니다 허리를 다쳐 디스크 수술을 받고 회복할 무렵에 친구가 ‘네가 좋아할 만한 일이 있다’며 실천단과 홈리스행동을 소개해줬어요.”
그 역시 노숙인을 처음 만났을 때는 “게으른 사람들”이라는 편견이 있었단다. “처음엔 단순 봉사 차원에서 ‘착한 일 한다’는 생각으로 활동했어요. 그러다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제 좁은 식견이 깨졌죠. 열심히 살다 자기 잘못도 아닌 한 번의 실수로 삶이 무너진 분들이 많더군요. 홈리스가 사회 구조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죠.”
15년 전 ‘주말배움터’에서 출발
지난달 새 공간 옮겨 2학기 개강
‘합창’ ‘컴퓨터와 스마트폰’ 수업 인기
주거권 등 권리 침해 토론 수업도
황, 15년째 야학 지켜며 상근 활동
주, 부친 권유로 고교생 때 첫 인연
주 교사는 2011년 고2 때 홈리스행동 후원회원인 아버지 권유로 야학에서 한글을 가르친 게 홈리스 야학과의 첫 인연이었단다. “2019년 대학을 다닐 때 갑자기 8년 전 활동이 생각나더군요. 지금도 야학이 잘 꾸려지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러다 다시 수업을 하게 되었죠.” 지난 8월 대학을 졸업한 그는 지금 “인생 목표를 놓고 고민 중”이라고 했다. 야학 교사는 모두 29명이며 두 사람은 야학 교사를 오래 한 순서로 각각 두 번째와 다섯 번째란다.
홈리스야학 수업이 다른 야학과 구별되는 점을 궁금해하자 황 활동가는 “함께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중요한 것 같다”고 답했다. “여기는 수업만 듣고 해산하는 곳이 아닙니다. 종일 같이 지내고 집회도 같이 나가죠. 지난 기후정의 집회(9월24일)에는 학생과 교사 10명이 함께 나갔어요. 학생들이 여기를 자신의 공간이라고 생각하고 야학 동료나 교사를 동지라고 생각해요. 우리 야학은 또 졸업이 없어요. 10년 넘게 다니는 학생들도 있죠.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하잖아요.(웃음)”(황)
주 교사는 야학 활동이 주는 가장 큰 즐거움을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학생들과 관계가 서먹하지만 시간이 지나 벽이 허물어져 학생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겪고 또 느꼈던 것을 이야기해줘 제가 모르던 것을 배웠을 때 그리고 학생들이 주저 없이 저한테 궁금한 것을 물었을 때이죠.” 가장 잊을 수 없는 학생을 묻자 황 활동가는 처음 야학에 등록할 때 무호적 상태에 언어 장애로 소통도 어려움을 겪던 한 학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야학에서 처음 사람들과 관계 맺는 법을 배우기 시작한 분이죠. 청소와 설거지도요. 지금은 임대주택에 입주해 지역사회에서 일상을 꾸리고 계시죠.”
야학 교사이자 반빈곤 활동가인 둘에게 마지막으로 한국의 반빈곤정책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기초생활 보장 급여 인상 결정 때 수급 당사자 목소리는 빠져 있어요. 당사자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다 보니 대부분 물가상승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결정됩니다.”(주) “복지 제도는 지침이 딱 정해져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만난 사람들을 보면 지침 밖에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10년도 연락 안 한 부양의무자 때문에 의료 급여를 받지 못하는 피해를 보고 있는 분처럼요. 또 현저히 적은 노숙인 의료 시설 때문에 치료 공백도 심각해요. 서울역 근처 병원을 두고 노숙인들이 적잖은 교통비를 부담하며 멀리 병원을 가야 하거든요.”(황) 야학 문의 (02)2634-4331.
강성만 선임기자 sungm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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