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포이 신전의 무녀는 마약을 했을까? [김선지의 뜻밖의 미술사]
- '나는 금지된 것을 열망한다!'
유명 작곡가인 돈스파이크가 마약 투약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렇듯, 치명적 부작용과 법적인 형벌에도 불구하고 불법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삶이 어떻게 망가지고 사회에서 매장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끊임없이 들려온다. 오늘날 네덜란드나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대마초를 피울 수 있지만, 대부분 국가에서 마약류는 불법이다. 특히 한국이나 중국에서는 엄격히 금지돼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마약 남용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인간은 언제부터 마약을 사용했을까? 사람들은 왜 마약을 할까?
고대 그리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델포이의 아폴로 신전 여사제인 피티아(Pythia)는 사원 지하 땅의 갈라진 틈새에서 나오는 달콤한 냄새의 연기를 흡입한 후 환각 상태에서 예언을 했다고 한다. 당시 델포이는 영적, 문화적, 경제적으로 고대 그리스의 중심이었다. 각지에서 몰려온 왕과 귀족, 서민들이 무녀에게 사랑과 직업, 출산과 자손 등 개인사에서부터 전쟁, 국가의 번영과 몰락, 공공 정책에 이르는 모든 것을 상담했고 그녀의 예언을 들었다. 피티아는 한낱 점쟁이가 아니라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고대 그리스의 권위 있는 공식 직책이었다.
'델포이의 여사제'는 영국 화가 존 콜리어(John Maler Collier, 1850~1934)의 작품이다. 그는 사실주의적 묘사, 선명하고 강렬한 색채가 특징인 라파엘 전파 양식으로 작업을 한 동시에, 엄격한 구성과 명확한 윤곽, 이상미를 추구하는 신고전주의적 조형 요소도 가미했다. 콜리어는 플루타르코스가 묘사한 델포이 신전 무녀의 예언 의식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화가는 그늘이 드리운 무녀의 얼굴에서 신비로운 황홀경의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무녀는 신전의 어두운 지하 성소 아디톤에 들어와 삼각대(tripod) 위에 앉아 있다. 왼손은 월계수 가지를 들고, 오른손은 물그릇을 받치고 있다. 지면에서 솟아오르는 가스를 마신 피티아는 곧 월계수 가지를 흔들며 무아지경 속에서 신이 내린 신탁을 전할 것이다. 로마 시인 루카누스는 피티아가 점치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했다. '무녀는 입술에서 광적인 중얼거림을 쏟아내고, 신음하고, 깊고 무겁게 숨을 내쉬다가 이윽고 큰소리로 울부짖는다.' 화가의 상상력은 접신한 고대 여사제의 자태를 매우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묘사하고 있다.
무녀를 사이키델릭(psychedelic)한 상태에 빠트린 연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고대 그리스에서 점을 칠 때 마약을 사용했을까? 고고학자와 과학자로 구성된 연구팀은 역사적, 지리학적 조사를 통해 그 연기가 에틸렌이나 메탄, 혹은 벤젠 등의 성분이 있는 가스이며, 피티아에게 섬망이나 환각을 일으켰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델포이 신전에서의 예언 활동이 환각제와 관계가 있음을 명시한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은 진실이다.
사실, 마약으로 인한 이른바 '신성한' 광기와 최면은 고대의 많은 문화권과 종교 집단에서 나타난다. 서구에서는 대략 BC 3,000년에서 BC 4,000년경의 청동기 시대부터 양귀비, 대마초, 사리풀, 흰독말풀같이 환각을 유발하는 식물을 종교의식 및 의약용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대의 문헌과 고고학적 유물, 제의에 사용된 공예품들에서 그 증거를 엿볼 수 있다. 양귀비 열매 모양의 캡슐 세 개가 달린 머리장식을 착용한 크레타의 여신상, 밀과 보리, 양귀비 열매를 들고 있는 키프로스의 여신상, 아편 성분이 발견된 작은 항아리, 아편을 흡입할 때 쓴 상아 파이프 등이 그것이다.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에게 제물을 바치는 엘레우시스 밀교 의식(Eleusinian Mysteries)에서도 환각 물질이 들어 있는 음료 '키케온(kykeon)'을 마셨다고 한다.
로마 시대에도 마약을 판매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었다. 주요 도시에 800개의 합법적인 아편 상점이 있었다. 로마인은 아마 의료용 및 수면제로 아편을 사용한 그리스인에게서 그 습관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 역시 진통제 또는 성적 쾌락을 위해 약물을 사용했다. 한편, 중세 가톨릭교회는 마약을 금지했다. 신비주의적 밀교들이 환각제를 통해 강한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마약이 유통될 경우 이단 종교의 세력이 더욱 확산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의 선물로까지 여기며 마약에 관용적이었던 종전까지의 가치관이 뒤엎어지고, 새로운 규범이 등장한 것이다. 19세기엔 화학의 발달로 강력하고 새로운 약물들이 개발되었고, 마약 중독은 점차 심각한 사회 문제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각종 범죄에 연루된 탐욕스럽고 부도덕한 마약 사업은 사회의 독버섯이 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약물에 의존해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탈출하려고 한다.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거나 정신적으로 방황할 때도 약물에 의존한다. 사회적 금기에 대한 호기심, 재미를 찾는 본능 때문에 마약을 찾기도 한다. 금지된 것들은 사람들을 유혹한다. 특히, 자유롭고 예술적 감성이 발달한 사람들은 사회가 그어놓은 경계선 밖을 기웃거린다. 약물은 파괴적인 부작용과 함께 쾌락과 영감을 주기도 하는 양날의 칼과 같은 이중성이 있다. 숨은 능력을 순간적으로 극대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마도 델포이의 무녀들은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점괘가 신통하다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유독한 가스로 인해 몸은 점점 망가져 갔을 것이다. 신의 지혜와 능력을 얻는 대신 그 대가를 치르지 않았겠는가? 우리 역시 그렇다.
김선지 작가·'그림 속 천문학'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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