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의 자리, 라오스 댐 붕괴사건의 경우

한겨레 2022. 10. 6. 18: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읽기]

2018년 7월 라오스 아타푸주 세피안-세남노이댐 붕괴에 따른 홍수로 인근 마을이 흙탕물에 잠겨 있다. 아타푸/EPA 연합뉴스

[세상읽기] 황필규 |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

“수십명의 친척과 이웃이 죽거나 실종됐다. 그 생각만 하면 너무 괴롭다. 책임있는 그 누구도 사과하거나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계속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다. 참사 뒤 이런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처음이다.”

4년이 걸렸다. 라오스에서 댐이 붕괴하고 현지에 가서 그 피해자들을 만나기까지. 코로나19로 지역이 사실상 봉쇄되어 있었고 지방정부의 허가를 받지 않으면 현장 접근 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너무 오래 걸렸다.

2018년 라오스의 세피안-세남노이댐이 붕괴해 여러 마을을 덮쳤고 70여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최소 수천명이 집을 잃었다. 이 댐 건설 프로젝트는 한국 사기업인 에스케이(SK)건설(현 에스케이에코플랜트)과 공기업인 한국서부발전이 지분을 투자해 시공과 운영관리를 맡았고, 라오스 정부 출자분은 한국 정부가 대외경제협력기금을 투입해 진행됐다.

지난 7월 참사 4주기를 맞아 유엔 전문가들이 사업 주체들과 라오스 당국의 원상회복 노력이 불충분했음을 지적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장기적인 해법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많은 생존자가 최소한의 삶을 영위하기 위한 기본적인 서비스조차 접근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 주거 문제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으며, 보상 역시 지연 혹은 감축되거나 지급되지 않고 있다고 우려했다.

우여곡절 끝에 피해 주민들이 머무는 현장을 방문할 수 있었다. 피해 주민들의 임시 주거와 영구 주거 지역, 새로 배분받았다는 토지 등을 둘러보고 피해 주민과도 만나 얘기를 나눴다. 관련 회사 관계자, 여러 유엔기구 관계자, 법률 전문가들, 국제인권단체들의 의견을 구하고 추가적인 사실관계를 파악했다.

영구 주거는 어느 정도 거의 완공됐다. 피해에 대한 기본적이고 직접적인 배·보상도 일단 이뤄졌다. 기존 농경지가 수몰됐기에 새로운 토지도 배분됐다. 개발 프로젝트인 소위 ‘마스터플랜’에 따라 관련 기업들은 학교, 마을회관, 도로, 전기와 수도 등 시설을 마련해줬다. 이제는 라오스 정부와 약속한 금액을 모두 집행했기에 기업은 역할을 다했다는 입장이다.

참사 수습 과정에서 한국 기업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한국 정부는 라오스 정부에 추가 지원을 약속하기도 하고, 부실 공사로 인한 인재라는 라오스 정부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를 늦추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에스케이 쪽은 자신의 잘못이 전혀 없었다며, 한국서부발전과 한국 정부가 자금을 대여해준 라오스 정부 쪽 회사에 참사 수습 비용 분담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 같았으면 시공사 대표부터 관련 회사들 관계자 모두가 수사를 받고 처벌됐을 가능성이 많지만 이에스지(ESG, 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의 선두주자라는 에스케이 쪽은 이렇게도 당당하다.

피해 주민들은 아직도 왜 가족을 잃었는지, 그들의 삶이 왜 이 지경이 됐는지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 피해 주민들이 가지고 있던 곡식·나무 등에 대한 배·보상은 입증하기 어렵다며 이제서야 개별 심사를 하겠다고 한다. 새로운 집이 생기기는 했지만, 강가도 아니고 농사지을 여건도 안 된다. 주어진 토지도 그동안 해오던 벼농사가 불가능한 토지고, 상당수는 토지를 황폐하게 만드는 대규모 작물 재배 산업에 투입되고 있다. 일부는 기존 토지소유자와의 분쟁 때문에 접근할 수조차 없단다. 기존 삶의 방식이 부정되고 삶과 생계의 지속 가능성, 예측 가능성이 보장되지 못하는 방식으로 삶이 재편됐지만, 기업은 피해 구제의 완료를, 정부는 개발의 완성을 얘기한다.

“지방정부, 기업 등 관여하고 있는 곳은 많은데 문제가 있을 때 어디에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다. 마을회관을 지어줬지만 내부 시설 미비로 사용할 수가 없고, 학교는 교문과 울타리 뼈대는 있는데 실제 교문과 울타리는 없다. 학교를 바라볼 때마다 너무 슬프다.” 무책임과 책임회피, 억압과 부패의 상징처럼 보였던 학교 교문과 울타리 뼈대를 한동안 바라봤다.

라오스 댐 참사 피해자들이 당장에는 여러 정치적·상황적 이유로 자유롭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그들과 연대하기 위해 나서는 이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 변화의 씨앗은 싹틀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시간의 문제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