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기자생활] 서울내기여서 미안해

선담은 2022. 10. 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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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기자생활]

윤석열 정부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오른쪽)와 자치분권위원회(왼쪽)를 통합한 ‘지방시대위원회’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담은 | 정치팀 기자

서울에서 태어나 인생의 4분의 3을 ‘특별시’에서 살았다. 경기도에서 매일 아침 서울로 향하는 출근 지하철에 몸을 싣는 지금껏, 수도권을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다. 조부모, 외조부모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 전북 무주와 경기 이천에서 먹고살 길을 찾아 상경한 이주민이었다. 그 덕에 나는 특별한 노력 없이, 내 부모와 마찬가지로 ‘서울사람’이 됐다. 비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교통 인프라나 대형 쇼핑몰 같은 것들이 내겐 처음부터 공기처럼 당연했다. 애초에 결핍이 없었으니 만족이랄 것도 없었다. 대학에 들어갈 땐 집안의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서라도 자취비가 들지 않는 ‘인(in)서울’을 해야 했다. 모두가 아등바등 경쟁했고, 서울에선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심드렁하게 써놓긴 했지만, 내 고향이 서울이라는 건 살면서 득이면 득이었지, 손해는 아니었다.

하지만 어디에나 예외는 있는 법. 국회에선 “고향이 어디예요?”라는 질문이 모든 만남에서 통과해야 할 관문처럼 여겨진다. <2020년 우주의 원더키디>를 시청하며 커온 아이가 30대 기자가 된 시대에도 영호남 기반 거대 양당 체제가 공고한 정치권에서 지연은 관계 맺음의 ‘치트키’다. 예를 들자면, 경상도에 지지 기반을 둔 국민의힘 국회의원(또는 보좌진)과 기자 사이에 처음 오가는 대화에 “저희 아버지도 의원님 나오신 ㄱ고등학교(지역 명문고) 동문이십니다”라든가 “ㄴ 기자는 우리 ‘고향 동생’이니까 잘 챙겨줘” 같은 말이 빠지지 않는다. 반면, 수도권 출신으로 지방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내 입에서 “제 고향은 서울”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대화는 더는 이어지지 않는다. 정부는 지방소멸 위기를 걱정한다는데 여의도에선 그 말이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더욱이 지연·학연 등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는 게 당연하다고 알고 생활해온 내게 “느그 아버지 뭐 하시노”와 “우리가 남이가”가 뒤섞인 듯한 국회의 풍경은 좀 신기하기도, 때론 청산돼야 할 ‘적폐’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당혹감을 고백했을 때 부산 출신의 한 50대 보좌관은 익숙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 웃으며 “서울 사람들은 자기들이 여기(서울) 주인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저 내가 나고 자란 서울에서 서울 사람이 소외되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에서 수십년간 서울내기들에게 치여가며 생활해왔을 그의 대답을 오래 곱씹었다. 평생 수도권을 떠나본 적 없는 내 정체성이 어떤 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건 아닐까?

일하면서 만난 지방 청년들과 대화하며 머리로 배운 것들은 많다. ‘부산에 내려간다’는 지방차별적 언어니까 대신 ‘부산에 간다’는 표현을 써야 한다 같은 것들 말이다. 그러나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반대하는 국회 앞 1인 시위를 보며, 내 마음이 이전을 환영하는 부산시민들보다 반대하는 산은 노조와 여의도 상인들 쪽에 더 기울어져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물론,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명분을 부정하면서까지 서울 사람을 편드는 기사를 쓰는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주말마다 지역구를 찾는 비수도권 의원들은 페이스북에 ‘오늘 무슨 지역축제에 참여했다’, ‘지역 태풍피해 복구에 매진했다’ 같은 제목의 글과 사진들을 올린다. 서울에 있는 기자들이 관심 갖지 않는 지방의 삶을 돌보는 건 그래도 이들뿐인가,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수도권 의원들(121석)보다 더 많은 의석(132석)을 차지한 이들의 고향과 서울의 격차는 왜 날로 벌어지는지 갸우뚱해지기도 한다. ‘나를 키워준 고향에 보답하겠다’는 정치엘리트들의 이 다짐엔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 있을까. 혹시 나는 보여주고 싶은 것만 올리는 정치인의 에스엔에스(SNS)에 속은 것일까. 어쩌면 이 역시 지방소멸 앞에서 마음이 쿡쿡 찔리는 서울내기 기자의 알량한 음모론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s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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