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노란봉투법' 너머에 있는 것

한겨레 2022. 10. 6.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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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지금 문제 된 손배·가압류는 소유권 절대의 원칙의 구체적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사회권 사상은 이 소유권 절대주의에 제한을 걸면서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억압에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당직선거 출마자들이 6일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열린 노란봉투법 연내 입법을 촉구하는 결의대회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노란봉투법은 파업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안이다. 정의당과 손잡은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정기국회 7대 입법과제 중 하나로 노란봉투법을 꼽고 있다. 연합뉴스

박권일 | 사회비평가·<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오랜만에 의미 있는 쟁점으로 전선이 그어졌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안’, 일명 ‘노란봉투법’이다. 노동자 파업을 빌미 삼아 기업이 손해배상·가압류 소송을 남발할 수 없게끔 하자는 취지다. 노동조합, 시민단체, 민주당, 정의당은 한목소리로 ‘노란봉투법’ 제정을 요구했다. 반면 권성동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불법파업 조장하는 황건적 보호법”이라 원색적으로 비난했고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벌 단체도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손.배.가.압.류. 다섯 음절을 들으면 기억이 홍수처럼 밀려든다. 기자 시절 사실상 첫 취재가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씨 분신자살 사건이었다. 배씨는 노조 파업에 동참했다는 이유로 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회사가 제기한 손배·가압류로 고통을 겪었다. 분신한 다음날이 월급날이었는데 통장에 들어온 돈은 2만5천원이었다.

그게 2003년이니 19년 전이다. 이후 한진중공업 김주익씨, 현대중공업 박일수씨 등 노동자가 노조 탄압에 시달리다 목숨을 끊는 일이 숱하게 일어났다. 그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갔던 나의 취재수첩에는 늘 향 냄새가 배어 있었다. 파업했다고 날아오는 손해배상 청구서, 일터 동료들의 차가운 시선, ‘갑질’에 항의조차 할 수 없는 불안한 일자리는 한 인간의 영혼과 세포를 속속들이 파괴한다. 손배·가압류, 하청, 파견 같은 비정규·불안정 노동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사회악인지 그때 처음 목도했다. 저 제도들은 이 나라가 가장 취약한 사람을 가장 혹독하게 착취하는 체제임을 웅변하는 증거다. 한마디로, 한국의 화려한 번영은 약자의 시체로 쌓아올린 트로피였다. 기자 시절 노동 현장에서 겪은 경험은 내가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됐고 또 ‘한국의 능력주의’를 문제화하는 바탕이 됐다.

기자로 경험을 쌓아가는 동안 ‘진보 정권’이란 기대를 받던 노무현 정부는 갈수록 노동자를 적대하며 재벌에 밀착하고 있었다. 참여정부 초기 삼성 보고서가 대통령 측근에 의해 그대로 청와대에 올라가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나중에 사실로 밝혀졌다.(<한겨레21>, ‘참여정부와 삼성의 끈적끈적한 5년’) 당시 나는 이런 모습을 비판하는 기사와 칼럼을 쓰면서도, 순진하게도 ‘내일은 더 나아지겠지’라며 막연히 착각하고 있었다. 고백하건대 2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이 문제가 그대로일 거라고는, 심지어 더 나빠질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 했다.

많은 이들이 이번에 ‘노란봉투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이다. 없는 것보다 있는 게 낫고 상징적 의미도 작지 않다. 파업과 재산상 손해의 인과관계를 기업이 명확히 증명하게 해야 하는 등 구체적 쟁점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도 꼭 필요하다. 다만 법을 ‘만능열쇠’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법은 절대 선도 진리도 아니다. 오랫동안 “악법도 법”이라는 말을 했다고 잘못 알려진 소크라테스는 종종 참주들의 명령에 불복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 법에 따라 죽었지만 그 죽음은 ‘철학하지 않는 조건으로 석방받느니 차라리 죽겠다’는 결기의 실천이었다. 법을 만들고 지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무엇을 위해’ 법을 만들고 지키는가가 그보다 훨씬 중요하다.

‘노란봉투법’이 일부 품고 있지만 전부 담고 있지는 못한 사상이 있다. 그것은 ‘인간의 존엄’과 ‘평등의 지향’이다. 바로 사회법이 기반하고 있는 정신이다. ‘소유권 절대의 원칙’ ‘계약 자유의 원칙’ ‘자기과실책임의 원칙’이라는 개인법 3대 원칙이 불평등을 더욱 악화시킨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것이 바로 사회법이다. 지금 문제 된 손배·가압류는 소유권 절대의 원칙의 구체적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사회권 사상은 이 소유권 절대주의에 제한을 걸면서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억압에 저항할 권리를 가진다고 선언한다. 노동법(노조법)이 그 제도화된 형태인데 한국에서는 법이 목적을 전혀 실현하지 못한다. 거의 모든 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은 이를 교정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 법만으로는 사회권은커녕 헌법상 권리인 파업권을 보장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노란봉투법 너머로 계속 나아가야 하는 이유다. 파업은 돈과 권력의 ‘갑질’에 대한 최후의 저항이다. 이는 곧 ‘소유냐 삶이냐’의 갈등에서 마침내 삶을 택하는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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