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틱] 통화보다 문자

한겨레 2022. 10. 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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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있는 작가가 어느 여성 환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2011년의 한 조사는 미국인의 3분의 1이 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2018년 문자선호도는 51%로 통화를 앞질렀다.

그 뒤 연령대별로 또는 특정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조사들에서 통화에 대한 문자의 선호도는 80~90%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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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틱]

토마스 만(1875~1955), 1937년, 사진 칼 밴 벡턴(Carl Van Vechten). 위키미디어

김영준 | 전 열린책들 편집이사

요양원에 있는 작가가 어느 여성 환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그녀에게 남편이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작가는 그 남편에게 편지를 쓴다. 당신이 얼마나 우둔하고 못생겼는지 아느냐, 그 섬세하고 아름다운 여성의 배우자 노릇을 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내용이다. 남편의 주소는 모르지만 편지를 부치는 데 아무 문제가 없다. 마침 남편이 아내의 병간호차 요양원에 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발신지와 수신지가 동일한 이 편지는, 잠시 마을우체국을 경유했다가 목적지인 요양원으로 다시 돌아온다. 편지를 받아든 남편은 성큼성큼 작가의 방 안으로 걸어 들어온다. “이보시오, 당신 말이야 도대체… 일단 이렇게 직접 말로 할 수도 있는데 굳이 편지를 쓰는 건 어리석은 일 아닌가?”

소설에서 현명한 편지를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토마스 만의 <트리스탄>(1903)에 나오는 편지처럼 어리석은 건 드물다. 어리석다는 말로 끝낼 편지는 아닌데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말할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클뢰터얀(남편의 이름이다)씨는 편지의 내용도 문제지만 말로 해도 되는 걸 “굳이 편지로 쓴 게”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후자가 더 결정적인 하자로 보인다. 겁쟁이인 작가가 자신의 음험함을 실현하는 일은 후자에 기대지 않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세기 동안의 통신 발전은 대면과 음성과 떳떳한 태도를 선호하는 클뢰터얀씨의 이상이 실현되는 과정이었다. 대중화된 순서로 보면, 먼저 유선전화가 보급되었다(이미 이때 편지는 설 자리가 없어졌다). 부재중이라고 연락을 피할 수 없게 무선호출기가 나왔다. 호출 뒤에 무한히 기다릴 수는 없으므로 이동전화가 보급됐다. 음성만으론 부족해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도 있게 됐다. 이제 얼굴뿐 아니라 전신을 옆에 불러내는 홀로그램 통화가 상용화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쓰고 보면 기술이 어떤 이유로든 연락을 회피하는 사람들을 완전히 막다른 골목에 몰아넣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기술이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모두가 이동전화를 갖게 되자, 통화를 적게 하게 된 것이다. 화상통화(실제로 얼마나 사용하고 계신지?)는 고사하고 음성통화를 말이다. 2011년의 한 조사는 미국인의 3분의 1이 통화보다 문자를 선호한다고 밝혔다. 2018년 문자선호도는 51%로 통화를 앞질렀다. 그 뒤 연령대별로 또는 특정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진 조사들에서 통화에 대한 문자의 선호도는 80~90%에 달했다. 이렇다 보니 통화 전에 “잠깐 전화드려도 될까요” 같은 문자를 주고받는 게 당연한 절차가 됐다. 나도 그렇게 한다. 굳이 전화까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말이다.

문자가 통화보다 선호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게 자유를 주기 때문이다. 문자에 언제 답할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답이 늦으면 상대방은 우리가 언짢은지, 말문이 막힌 건지, 단순히 문자를 못 봤는지, 바쁜 일로 답할 시간이 없는지 알 수가 없다. 즉 당장 어쩌지 못한다. 걸려오는 연락에 늘 무방비 상태인 우리에게 이런 비동시성과 불확실성이 그나마 숨 쉴 공간을 주는 것이다. 이런 자유에 모두가 득을 보고 있기 때문에 ‘통화 대신 문자’는 일종의 예절이 됐다.

며칠 전 휴대폰을 비행기 모드로 놓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폰에 저장된 책을 보고 음악을 들었다. 평소보다 집중이 잘돼서 놀랐다. 마치 문이 늘 열려 있는 방에서 살다가 문을 처음 닫아본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다 생각했다. 누가 알겠는가. 10년 뒤엔 홀로그램 통화보다 더한 게 나올지 모르지만, 그럴수록 다들 비행기 모드가 기본이 될지. 문자조차 아침저녁 한두번만 확인하고 마칠지. 지금 우리가 이메일 확인을 그렇게 하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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