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벨문학상 후보를 英 도박사이트서 찾을까

김유태 2022. 10. 6.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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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원은 후보 공개 안해
도박사이트 배당률 순위가
노벨상 후보로 와전된 것
적중률 높아 무시 어려워
트란스트뢰메르·알렉시예비치
파무크·모옌 등 수상 맞춰
매년 10월 첫째 주 목요일이 되면, 문학 애호가와 출판 관계자의 시선은 한곳에 쏠린다. 이날 저녁 8시(한국시간)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는 스웨덴 한림원 홈페이지, 유튜브, 트위터다. 2022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는 프랑스 소설가 미셸 우엘베크, 캐나다 시인 앤 카슨, 프랑스 소설가 아니 에르노, 시리아 시인 아도니스 등이 거론됐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노벨문학상을 운영하는 한림원은 후보 명단을 절대 공개하지 않는다. 영국 부커상처럼 예심(longlist)을 모아 6인을 대상으로 본심(shortlist)을 치르는 방식이 아니라 후보 명단 없이 오직 '수상 작가 1인'을 당일 호명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벨문학상 후보'는 성립되기 어려운 용어다. 그런데 왜 너도 나도 후보란 말을 거르지 않고 쓸까.

노벨문학상 후보는 정확히는 영국의 유명 도박 사이트들이 예측한 수상 작가 명단을 말한다. 이르면 9월 말, 늦어도 10월 초가 되면 출판사와 언론 관계자들은 재빠르게 나이서오즈(Nicerodds)란 이름의 영국 도박 사이트부터 뒤적인다. 나이서오즈는 이 시기에 한시적으로 '노벨문학상 배당률' 코너를 운영한다. 수상자 예측 도박이 불법인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에서는 미식축구, 야구, 경마, 아이스하키 등 유럽 스포츠 결과를 예측해 돈을 거는 도박처럼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에도 일정 금액을 베팅해 일확천금을 노릴 수 있다고 한다.

나이서오즈는 벳슨(Betsson), 유니벳(Unibet) 등 다른 도박 사이트에서 집계한 배당률을 순위별로 집계하는 일종의 도박 멀티숍 개념이다. 과거에는 래드브룩스란 사이트가 명성이 더 높았지만 몇 년 전부터 래드브룩스는 노벨문학상 코너를 운영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나이서오즈는 노벨문학상과 함께 '노벨평화상 배당률'도 운영하고 있다. 올해 노벨평화상 배당률 1~3위에는 벨라루스 야권 지도자 스뱌틀라나 치하노우스카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 우크라이나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가 올라와 있다.

어쨌든 노벨문학상 후보는 실체 없는 허상에 가깝다. 게다가 숭고한 미학을 추구하는 문학세계의 주인공을 천박해 보이는 도박성 자금으로 예측한다는 사실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런데 한 겹 더 들어가보면 그리 편견을 갖고 바라볼 일도 아님을 알게 된다. 래드브룩스와 나이서오즈의 노벨문학상 후보 적중률이 놀라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노벨문학상과 관련해 영국 도박 사이트의 명성이 높아진 건 200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수상자는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였는데, 도박사이트들은 일제히 오르한 파무크를 1위로 점쳤다. 몇 년간 잠잠했던 사이트들의 '족집게 실력'은 배당률 2위였던 2011년 스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2012년 중국 소설가 모옌이 수상하면서 재증명됐다.

유명세가 정점을 찍은 건 2015년이다. 래드브룩스가 배당률 1위로 예측했던 우크라이나 르포르타주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호명됐다.

주기적으로 탄복했던 영국 사이트의 '영험함(?)'도 그러나 예전만은 못한 것 같다. 작년 수상자 탄자니아 소설가 압둘라자크 구르나는 나이서오즈 명단에 없었고, 2020년 수상자인 미국 시인 루이즈 글릭은 최종 배당률이 15위여서 순위권 밖이었다. 2018년 올가 토카르추크가 나이서오즈 상위 명단에 올랐다는 사실이 그나마 다행스럽다면 다행스러운 일이겠다. 며칠 전까지 나이서오즈 명단에 스페인 소설가 하비에르 마리아스의 이름이 올라와 있었는데, 그가 지난달 별세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신빙성이 더 떨어진다. 잘 알려져 있듯이 노벨문학상은 생존 작가에게만 주어진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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