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용어의 조건] ② "노년층은 외래어에, 청년층은 한자어에 취약"

고재원 기자 ,이영애 기자 2022. 10. 6.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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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환자를 돌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며칠 전 문 닫은 음식점 앞에서 노인 몇 분이 '공지도 없이 영업을 안 한다'며 불같이 화를 내고 있는 장면을 봤어요. 문 앞에는 버젓이 'CLOSED'라고 적혀있었습니다. 만약 '휴업중'이라고 적혀있었다면 이런 일이 생겼을까요?"

이광근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는 지난달 서울 중구 모처에서 진행된 국어문화원연합회와 동아사이언스가 추진하는 '쉬운 우리말 쓰기' 자문위원 좌담회에서 노년층이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가 많다며 얼마 전 겪었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웃고 지나갈 해프닝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문제가 감염병 등 생명과 직결된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감염병을 사례로 들면 노인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모르고 죽을 수도 있는 문제"라며 "지금의 사회는 노년층과 다른 층의 정보 격차가 어느 때보다 심각하다"고 진단했다. 

'2022 쉬운우리말쓰기' 자문위원 이광근 서울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고재원 기자 jawon1212@donga.com

특히 노년층은 외국어 유래 용어에 취약하다. 세대간 이해도 격차가 크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글문화연대가 2020년 외국어 유래 용어 3500개에 대해 일반 국민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일반 국민의 이해도를 100점 만점으로 환산하면 전체 평균은 61.8점으로 나타났다. 60대 이하가 66.9점인 반면 70세 이상은 28.4점으로 나타났다. 일상에서 외국어 유래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은 평균 36.1% 였으며 연령대가 높을수록 외국어 유래 용어 사용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어에 대한 세대 간 이해도 차이는 세대간 정보 격차를 만들어낸다. 평소 일상생활에 쓰이는 용어라면 불편함을 겪는 것에 그치겠지만 감염병 사태 등 재난재해 상황에서는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로 이어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은 변이에 변이를 겪으며 아직도 위협적이고 원숭이두창과 같은 또 다른 감염병이 등장했다. 과학자들은 미래에 추가적인 감염병 등장은 필연적일 것이라 분석하고 있다. 용어에 따른 세대 간 정보 격차를 적어도 감염병 분야에서는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22 쉬운우리말쓰기' 자문위원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 고재원기자 jawon1212@donga.com

권재일 서울대 언어학과 명예교수는 "노년층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방향이 뭔지 고민해야 한다"며 "갑자기 튀어나온 감염병 관련 의과학용어를 빨리 쉬운 용어로 제시해 국민들이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젊은 층도 마냥 이런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흘'을 '4일'로 알고 있거나 '금일'을 '금요일'로 이해하는 등 젊은 층의 문해력에 대한 지적이 제기된다. 이들 연령층은 특히 한자어에 취약하다. 가령 이번 코로나19 때 자주 사용되던 '지표 환자'나 '의사 환자' 등은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없다. 

우리말에서 한자어가 차지하는 비중은 높다. 표준국어대사전의 표제어에 제시된 명사에 한정해 따지면 전체 25만2755개 용어 중 한자어는 20만 5977개로 약 81%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세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용어는 없다며 언어를 순화하는 작업에도 방향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반적으로 한자어에 익숙한 노년층과 영어에 익숙한 젊은이들 사이에 용어 이해에 대한 괴리가 크다.

윤경식 경희대 의대 생화학분자생물학교실 교수(경희의과학연구원장)는 "용어를 바꿀 때 한자를 쓰지 않는 세대가 등장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며 "앞으로 용어를 더 많이 사용할 사람은 젊은 세대이기 때문에 젊은층의 생각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욱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는 "용어는 한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라며 "시대별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코로나19) 사태가 확산하면서 우리 사회엔 방역과 백신 접종 등과 관련한 의과학 용어들이 홍수처럼 쏟아졌습니다. 정부나 의과학계는 어느 때보다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며 정체 불명의 감염병 실체와 대처법 찾기에 나섰습니다. 이 과정에서 의과학 분야 전문 용어가 수도 없이 대중에게 노출됐고 새로운 개념의 방역 용어도 등장했습니다. 동아사이언스는 국어문화원연합회와 함께 3년째 의과학용어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방안을 찾는 기획을 진행해왔습니다. 올해는 세대간 격차를 넘고 소외계층도 이해할 수 있는 의과학용어 활성화 방안을 모색합니다.

[고재원 기자 ,이영애 기자 jawon1212@donga.com,ya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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