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발과 대응' 악순환에 갇힌 한반도..보이지 않는 '군사 대치' 출구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전략자산을 동원한 한·미 군사대응이 반복되며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심화되고 있다. 전쟁 위기까지 거론된 2017년 상황과 유사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북한의 7차 핵실험 실시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한·미가 ‘강 대 강’ 긴장 수위를 조절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반도 정세는 지난 2주 동안 급격히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함이 지난달 23일 부산에 입항하자 이틀뒤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지난달 26~30일 한·미와 한·미·일 연합해상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은 연달아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북한이 지난 4일 일본 상공을 통과한 중거리 탄도미사일까지 발사하자 미 항공모함은 이례적으로 뱃머리를 돌려 다음날 동해로 되돌아왔다. 북한은 6일 다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쐈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도발과 억제의 악순환”(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와 북한의 군사적 강 대 강 대치가 고조되는 현 국면은 전쟁 위기까지 거론됐던 2017년과 유사하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해 북한은 중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을 6번 시험 발사했고, 이에 미 전략폭격기 편대가 한밤에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 인근 해상까지 비행하며 무력시위를 벌였다. 최근 미 항공모함의 한반도 전개와 일본 상공을 거쳐간 북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는 5년 만이다.
현재 국면을 한·미 확장억제력 강화 움직임에 대한 북한의 맞대응 측면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이날 기자와 통화에서 “한·미가 확장억제력을 2017년 수준으로 복구하는 데에 북한이 위협을 느끼고 대응하는 구도”라고 말했다.
최근 미사일 발사 국면에서 처음 내놓은 북한의 공식 입장에서 이러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공보문에서 “미국과 일부 추종국가들이 조선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한·미연합훈련들에 대한 우리 군대의 응당한 대응행동조치”라며 미사일 발사를 정당화했다.
반면 핵무기 고도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세운 북한이 한·미 확장억제력 강화를 명분으로 긴장 국면을 주도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현재는 북한의 공세 국면”이라며 “핵무기를 고도화·다중화·대량화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고 (미국과) 핵 담판을 짓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달 핵무력 법제화를 발표하며 핵 선제공격 가능성까지 시사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잇따른 미사일 도발이 7차 핵실험 실시 수순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전날 “7차 핵실험으로의 가능성을 높여주기 위한 단계별 시나리오를 밟아가는 게 아닌가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중국 20차 당대회가 개최되는 이달 16일 이후부터 미국 중간선거가 열리는 다음달 7일 사이에 핵실험 실시 가능성이 높다고 국회에 보고했다.
핵실험이 국제 정세에 미칠 막대하고 복잡한 파급효과 등을 감안할 때 최근 미사일 발사를 핵실험 전조로 연결시키는 건 무리라는 분석도 있다. 홍 실장은 “핵실험은 한·미에 대응해 미사일을 쏘는 것과는 다른 명분과 타이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현재의 긴장 국면은 당분간 해소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우리는 미국이 조선반도수역에 항공모함타격집단을 다시 끌어들여 조선반도와 주변지역의 정세안정에 엄중한 위협을 조성하고 있는 데 대하여 주시하고있다”며 추가 도발을 시사했다. 양무진 교수는 “계속해서 맞대응 미사일을 발사하겠다는 예고성 경고”라고 평가했다.
한·미도 강경 대응을 시사하며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이날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주재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북한의 도발은 더욱 강력한 대응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통화에서 “북한이 도발하는데 가만히 있을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5년전 처럼 미 전략폭격기의 한반도 전개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한·미가 도발과 대응의 반복으로 조성된 긴장 완화를 위해 숨고르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홍 실장은 “억제는 안보를 지키기 위한 수단인데, 지나치게 수단을 강조하다보니 안보에 위협스러운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정된 훈련 규모를 축소하진 못하더라도 훈련 공개 수준을 최소화하거나 규모를 분산시키는 방식으로 정세를 관리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통화에서 “미국은 북한을 적대시하지 않는다며 지속적으로 대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며 “북한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 등을 감안하면 현재 국면을 오래 끌고가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연 기자 lightyea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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