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풍자만화 '윤석열차'는 외국 작품 베낀 표절이다?
저작권 침해 소지에 대해선 전문가들 "가능성 낮아"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표현' 측면선 유사성 낮고, '폭주 기관차' 아이디어는 보편화
(서울=연합뉴스) 정성호 기자 이아미 인턴기자 = 윤석열 대통령을 풍자한 만화 '윤석열차'를 두고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은 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라 표절 의혹 때문에 논란이 크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유상범 의원도 2019년 영국 일간지 '더 선'에 실린 만평 '영국 총리 열차'를 제시하며 "한눈에 봐도 표절 아닌가. 본질적인 것은 학생이 표절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민주당은 '윤석열차'를 만화 공모전 수상작으로 선정해 전시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을 향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엄중 경고'를 하자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며 맞서고 있다.
문체부는 같은 날 보도설명자료를 내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을 선정하여 전시한 것은 행사 취지에 어긋난다"며 공모전 후원자로 문체부 명의를 쓰도록 허용한 것을 취소하는 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열차의 의인화 자체가 오리지널리티(독창성)를 주장할 만큼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다"라며 표절이 아니라는 주장과 "딱 봐도 영국 만평과 비슷하다"라며 명백한 표절이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대립하는 모양새다.
'윤석열차'는 정말 표절 작품에 해당할까?
국어사전을 보면 표절은 '시나 글, 노래 따위를 지을 때 남의 작품의 일부를 몰래 따다 쓰는 일'로 풀이돼 있다.
타인의 작품이나 아이디어를 가져다 자신의 창작물인 양 포장해 내놓는 행위가 모두 표절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표절은 법률적 용어는 아니다. 그보다는 타인의 저작물을 몰래 베꼈다는 도덕적 비난, 사회적 낙인의 성격이 짙은 어휘다.
그러다 보니 실제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일은 쉽지 않다. 외국 가수나 밴드 사이에서 벌어진 표절 소송이 몇 년씩 진행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나마 비교적 구체적인 표절의 기준이 있는 학술논문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음악이나 미술, 소설, 게임 같은 장르에서는 어디부터 표절로 볼 것인지에 대한 기준도 뚜렷하지 않다.
표절 의혹이 끝내 명쾌하게 매듭지어지지 못한 채 의혹으로만 남는 사례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윤석열차'가 표절인지, 아닌지 역시 명쾌하게 가르기는 어렵다.
다만 법적으로 따져보면 표절은 저작권 침해의 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저작권을 인정받는 저작물을 저작권자의 허락 없이 가져다 썼다면 법 위반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저작권 침해는 아니지만 표절에 해당하는 경우도 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표절에 대해 "타인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에서는 저작권 침해와 유사하지만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저작권법상 저작물로 보호받지 못하는 아이디어를 표절한다거나, 보호 기간이 만료된 저작물을 표절하면 저작권 침해는 아니지만 표절에는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윤석열차'는 저작권법 위반 소지가 있을까.
저작권법 제37조(출처의 명시)에 따르면 저작물을 이용하는 자는 출처를 명시해야 한다. 이를 어길 경우 제136조 벌칙 조항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대상은 사상, 감정, 콘셉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런 아이디어를 창작적으로 '표현'한 것만이다.
대법원 판례에서도 '저작권 보호 대상은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 양식이고,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독창성, 신규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저작권 보호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아이디어-표현 2분법' 원칙을 판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해당 그림이 영국 일간지 만평의 표현을 그대로 베꼈을 경우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볼 수 있으나, 폭주 기관차라는 아이디어를 활용한 것이라면 위반이 아니다.
그렇다면 '윤석열차'가 표현을 베꼈다고 볼 수 있을까.
'더 선'의 만평과 '윤석열차'를 비교해보면 열차의 주행 방향이나 배경 묘사, 등장인물의 위치, 구도, 화풍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익명을 요청한 지식재산권 전문 변호사는 "그림 전체를 놓고 보면 (표현상) 비슷한 부분도 있고 아닌 부분도 있어 표절이라 보기 애매하고, 저작권 침해가 인정되지 않는 '패러디'로 볼 여지도 있다"고 밝혔다.
또 '의인화된 폭주 기관차'가 '더 선'을 포함해 많은 서구 매체에서 풍자 만화의 소재로 숱하게 쓰여왔다는 점도 이번 논란의 작품이 아이디어의 활용에 해당한다는 쪽에 무게를 실어준다.
원작자를 분명히 가리기 어려운 '사람 얼굴을 단 폭주 기관차'의 이미지가 과거부터 일종의 공유재처럼 여러 창작물에서 활용돼 온 것이다. 공공의 아이디어에 기초해 작가 고유의 창작성이 더해진 사례로 볼 수 있다.
김영철 미술법 전문 변호사는 "국가의 최정상들이 국정을 무리하게 운영할 때 이런 그림으로 풍자한다. 그게 일반화돼 있으면 표절이라고 보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 사안은 표현이 같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고, 저작권 침해로 보기 어렵다"면서 "서구권에 이미 폭주 기관차 콘셉트의 수많은 이미지가 일반화돼 있다면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는 원작자가 나타나기도 어렵고, 이때 제3자가 표절 의혹을 주장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사안은 표절 여부를 가리는 것보다 표현의 자유가 쟁점으로 보인다"는 의견을 내놨다.
meteor3021@yna.co.kr, sisyph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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