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이 뭐라고, 가방에 바퀴를 달기까지 5000년이 걸렸을까[플랫]

플랫팀 기자 2022. 10. 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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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구할 여자들
카트리네 마르살 지음·김하현 옮김|부키|392쪽|1만80000원
지금까지 존재한 전기자동차는 모두 엉터리입니다.
- 일론 머스크

2006년 7월, 일론 머스크는 미국 캘리포니아 샌타클래라의 한 행사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몰려든 취재진과 유명인을 향해 빨간색 2인승 전기차를 가리키며 이것이야말로 ‘진짜 전기차’라고 말했다. 머스크의 말은 맞았다. 테슬라가 전기차를 내놓은 이후 기존 자동차 업계의 판도가 바뀌었다. 휘발유차는 배기가스를 내뿜는 ‘과거의 차’가 되었고, 전기를 동력으로 조용히 굴러가는 전기차는 ‘미래의 상징’이 되었다.

1948년 한 남성이 자신의 전기차를 검사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전기차 충전소에서 자신의 차를 충전하는 여성. 출처 Schenectady Museum

이전에도 전기차는 있었다. 100년도 전에 말이다. 20세기 초 유럽에 있는 자동차 중 3분의 1이 전기를 이용했다. 휘발유차는 시동을 걸기 힘들었다. 엔진 앞에 서서 크랭크를 붙들고 와이어를 몇 번이나 위로 당긴 뒤, 점화 장치를 켜고 또 크랭크를 힘 있게 돌려야 마침내 시동이 걸렸다. 반면 전기차는 운전석에서 시동을 걸 수 있었다. 조용하고 관리도 쉬웠으며, 최초로 시속 100㎞를 넘은 차도 전기차였다. 그런데 왜 전기차는 100년 동안 시장에서 도태됐을까? 배터리 충전, 짧은 주행거리 등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전기차가 ‘엉터리’로 취급받은 ‘진짜’ 이유가 있었다.

강인한 팔의 근육으로 크랭크를 돌리고, 기름이 튀는 휘발유차는 ‘남자다운’ 기계였다. 반면 전기차는 ‘여성스럽다’고 여겨졌다. 1903년의 광고 문구를 보면 “전기차는 소음과 냄새가 전혀 안 나고 깨끗하고 우아하며, 늘 준비된 자동차를 원하는 사람들을 사로잡을 것입니다”라고 쓰여 있다. 옆엔 모자를 쓰고 활짝 웃는 여성이 있다. 한 칼럼니스트는 “전기차를 현대의 유모차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라고 쓰기도 했다.

구매력은 남성들이 갖고 있었고, 이들은 ‘여성적’인 전기차를 원하지 않았다. 시장의 판도는 휘발유차로 기울었다.

1900년대 초반에 이미 전기차를 빌리거나 주행거리에 따라 요금을 내고 사용할 수 있었다. 1899년 윌리엄 C 휘트니는 미국에 전국 규모의 전기차 네트워크를 깔고자 했다. 전동열차가 도시와 도시를 연결하고, 도시 내에서는 전차와 전기차가 전기식 교통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꿈꿨다. 사업은 실패했다. 값비싼 배터리들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고장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를 누군가 더 보완하고 투자했다면 현재의 교통 시스템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바뀔 수 있었다. 온실가스 배출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전기차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기술 발전을 지체시킨 대표적인 예다.

경제학과 가부장제의 관계를 논한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로 화제를 모은 스웨덴 저널리스트 카트리네 마르살이 신작 <지구를 구할 여자들>을 내놨다. 젠더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기술 발전에 끼친 영향을 분석했다. 저자는 풍부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분석하며, 유머러스하면도 명쾌한 문장으로 주장을 펼친다.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본 과학기술사’라 할 만하다.

가부장제와 경제학의 관계를 논한 <잠깜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 이어 과학기술과 젠더의 관계를 다룬 책 <지구를 구할 여자들>을 펴낸 스웨덴 저널리스트 카트리네 마르살. ⓒAnna Lena Ahlstrom

젠더는 어떤 기술을 좋은 것으로 여길지, 어떤 기계를 개발할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어이없는 사례로 책은 시작한다. 바퀴 달린 여행가방을 인류가 받아들이는 데 5000년이나 걸렸다는 이야기다. 가방에 바퀴를 달고 끈다는 생각은 오래전 등장했지만 정식으로 상품화된 것은 1970년대였다. 최첨단 우주과학 기술을 동원해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다녀온 뒤에야 만들어졌다. 닐 암스트롱도 무거운 짐가방을 손잡이로 잡아 들고 옮겼다.

US 러기지 부사장 버나드 새도우는 휴가를 보내고 돌아오면서 25㎏에 가까운 짐가방을 손에 들고 진땀을 흘리다 세관에서 바퀴 달린 팰릿을 이용해 무거운 기계를 옮기는 공항 직원을 봤다. 이에 아이디어를 얻은 그는 1972년 바퀴 달린 여행가방으로 특허를 냈다. 하지만 백화점 바이어들은 이 아이디어를 거절했다. 진정한 남성은 짐을 자기 힘으로 들어야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떠나는 여성은 보통 부유했으며, 짐을 들어줄 남성이 있었다.

바퀴달린 가방이 나오기 전의 여행용 가방, 진정한 남성은 자기 힘으로 가방을 들었고 여행을 떠나는 여성은 보통 부유했으며 짐을 들어줄 남성이 있었다.

이번에도 성별 고정관념이 발목을 잡았다. “여행가방은 우리가 젠더에 대한 관점을 바꾸었을 때, 남자가 짐을 들어야 하고 여자의 기동성이 제한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을 때 바닥 위를 구르기 시작했다. 젠더는 왜 가방에 바퀴를 달기까지 5000년이 걸렸느냐는 수수께끼의 해답이다.”

책은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기술 발전에 영향을 끼친 사례로 시작해,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던 기술직을 남성이 차지하면서 여성이 배제된 방식, 여성 발명가나 사업가들이 투자를 받기 힘든 금융체계까지 광범위하게 논한다.

미 항공우주국의 ‘인간 컴퓨터’였던 여성 계산원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히든 피겨스>의 한 장면

영화 <히든 피겨스>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복잡한 계산을 도맡아 ‘인간 컴퓨터’ 역할을 했지만 잊혀져버린 흑인 여성 계산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최초의 컴퓨터’는 사람, 저임금으로 쓸 수 있는 유색인종 여성이었다. 1946년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컴퓨터에 관한 최초의 공개 강의가 열렸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아날로그 컴퓨터와 디지털 컴퓨터를 개발한 조지 스티비츠 박사는 컴퓨터의 유용함을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컴퓨터 한 대의 작업량은 4에서 10여성년(girl-year)에 맞먹었습니다.”

여성년이라고? 제임스 와트가 처음 증기기관을 발명했을 때 증기기관의 힘을 사람들에게 설득시키기 위해 말이 짐을 끄는 힘 ‘마력(馬力)’에 빗댔다. 와트가 ‘마력’을 사용한 것처럼 새로 등장한 컴퓨터의 성능을 측정하기 위한 단위로 ‘여성년’이 사용됐다. 1000시간의 계산 작업이 필요하다는 뜻의 단위인 ‘킬로여성(kilogirl)’도 있었다.

1860년대부터 1900년대까지 컴퓨터는 여성에게 적합하다고 여겨진 극소수의 과학 관련 직업 중 하나였다. ‘인간 컴퓨터’는 처음엔 대부분 젊은 남성이었다. 하지만 19세기 말 고용주들은 남성 대신 여성을 고용하면 돈을 절반만 줘도 된다는 걸 알았고, 컴퓨터는 여성의 일이 됐다. 학계도 마찬가지였다. 하버드대학교 천문대는 망원경으로 얻은 천문학 자료를 처리하기 시작하면서 여성으로만 팀을 꾸렸다. 영국 군사정보부에서 세계 최초로 프래그래밍 가능한 전자 컴퓨터를 개발했을 때, 이를 작동한 프로그래머 또한 여성이었다.

1958년 한 여성이 홀리스 범용 전자컴퓨터를 시험해 보고 있다. 게티이미지

하지만 컴퓨터 산업이 유망한 것이 되고 많은 부를 창출하면서 그 자리는 남성들로 채워지게 됐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이 분야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남성이 증가하면서 높은 지위의 고임금 분야로 변신했다.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직종이 저임금인 것은 여성이 저임금 분야를 선호하거나, 특정 분야의 일에 적합하지 못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인간 컴퓨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다.

기술 발전에 젠더 고정관념이 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의 해악은 생각보다 더 크다. 소수의 집단에 의해 기술 발전이 결정될 때, 기술의 혜택 또한 소수에게 집중된다.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이 기술과 발명에 참여할 때,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기술이 개발될 수 있다.

소아마비로 장애가 있는 아이나 비팔크가 직접 발명한 현대식 보행기. 사진출처 Svenskt Uppfinnare Museum

소아마비를 앓았던 스웨덴의 아이나 비팔크가 현대식 보행기를 개발한 것이 그 예다. 비팔크는 1960년대 말 바퀴와 네 개의 손잡이, 브레이크, 위에 앉을 수 있는 선반이 있고 접을 수 있는 현대식 보행기를 개발했다. “이 발명품이 15년간 양쪽 겨드랑이에 목발을 끼고 힘겹게 시내를 돌아다닌 여성에게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자신을 위하지 않는 세상에 사는 사람은 그 세상을 개선할 방법을 더 쉽게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세계 최초의 e메일 프로토콜은 청력 문제가 있었던 미국인 빈트 서프가 개발했다. 금세기 최고의 혁신 중 하나인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넘기는 터치패드 기술은 오른손 신경이 손상돼 마우스를 사용할 수 없었던 웨인 웨스터먼이 개발했다.

비팔크는 큰돈을 벌었을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그에겐 발명품을 사업화할 돈이 없었다. 특허를 내는 대신 약 750파운드에 해당하는 금액과 판매량에 대한 2%의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아이디어를 팔았다. 비팔크는 “젊은 남자들 사이에서, 장애가 있는 여자인 내 말을 누가 들어주겠어요?”라고 말했다.

비팔크는 현실을 잘 알았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다. 여성이 소유한 사업체의 80%가 필요한 신용대출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기술력과 장래성이 있지만 자금력이 부족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의 경우는 더 심하다. 영국에서 벤처캐피털 자금의 1% 미만이 여성들끼리 창업한 스타트업으로 흘러든다. 유럽연합 국가에서도 창업자가 전부 남성인 테크 기업이 자금의 93%를 가져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도시에 사는 백인 중산층을 위해 만들어진 서비스와 회사로 가득 차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다.”

저자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일자리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시대, 돌봄·공감·관계 등 여성이 능하다고 여겨진 분야야말로 기계가 대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여성이 대다수라는 이유로 저평가되어 왔고, 실제로 저임금을 받는 분야다. 남성과 여성, 경제적 가치에 대한 사고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 요구된다.

저자는 기술의 역사에서 여성이 배제되어 왔다는 점을 지적하며 “우리가 한쪽 손이 묶인 채 세상을 발명해 왔다는 뜻이다. 그 밧줄을 끊었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지구를 구할 여자들’은 이런 전망 속에 나온 것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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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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