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건희 멘토 논란' 천공, 자산 9조 대기업 장금상선이 경제적 지원해
(시사저널=공성윤 기자)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멘토로 알려져왔던 '천공스승'(본명 이천공)의 금전적 원천이 국내 해운 대기업인 장금상선의 창업주 정태순 회장으로 확인됐다. 천공이 대규모 강의와 출판∙방송 등의 사업을 이어온 배경에는 정 회장의 지원이 있었던 것이다. 천공과 장금상선 측은 시사저널에 "선의로 도와준 것"이란 공통된 취지의 입장을 전했다. 한편 대통령실은 천공이 김 여사의 멘토가 아니라고 부인했다.
천공은 각종 단체의 도움을 받아 활동 반경을 넓혀가고 있다. 해당 단체 중 정법시대문화재단은 유일한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시사저널이 재단의 회계 공시자료를 분석한 결과, 설립자가 정태순 장금상선 회장이었다. 정 회장은 2017년 개인 재산 3억원을 출연해 해당 재단을 세웠다. 이후 장금상선이 법인 명의로 2019년과 지난해에 각각 1억원을 재단에 기부했다.
기부금 의존하는 정법재단, 출처 40%가 장금상선
정법시대문화재단은 전적으로 외부 기부금에 운영을 의존하고 있다. 회계자료를 공시하기 시작한 2018년부터 매년 수익금 총액에서 기부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97%를 넘었다. 특히 기부금을 내는 영리법인 중 장금상선이 절대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2019년에는 장금상선이 영리법인으로는 유일하게 기부금(1억원)을 내 기부금 총액(2억5400만원)의 40%를 충당했다.
작년에는 총 기부금 3억700만원 중 영리법인 비중이 역시 40%(1억2000만원)였다. 이는 장금상선(1억원)과 천공의 또 다른 지원 단체인 ㈜정법시대(2000만원) 등 2곳이 채운 것이다. 영리법인 기부금이 가장 많은 해는 회계 공시 첫해인 2018년으로, 액수는 약 4억원이었다. 하지만 어디가 얼마를 냈는지는 공개돼 있지 않았다. 또 영리법인 외에 실명을 밝히지 않은 '무기명자'가 2020년과 작년에 각각 3100만원, 4500만원을 기부했다.
기부금은 어디에 쓰였을까. 정법시대문화재단이 정관을 통해 밝힌 목적사업은 '인성교육'과 '문화콘텐츠 보급'이다. 이와 관련해 재단은 2018년 '서울영화제' '해외문화탐방' 등의 사업을 진행했다. 해당 사업에 수천만원의 돈이 들어가다 보니 그해 사업수행비는 모든 연도 통틀어 가장 많은 3억7300만원을 기록했다. 재단 일반관리비(1억500만원)의 3배 이상이다. 그러다 2019년부터 일반관리비가 매년 1억2000여만원 수준으로 올랐다. 반면 사업수행비는 연 3700만~5600만원으로 대폭 줄었다. 목적사업보다 재단 유지에 필요한 인건비, 임차료, 공과금 등에 더 많은 돈을 썼다는 뜻이다.
같은 시기에 재단은 사업의 중점을 천공의 강의로 옮겨갔다. 시사저널이 재단 기부금 지출 내역과 홈페이지에 공개된 사업 내용을 분석해 보니, 매년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 사업 중에 '청춘포럼'이 있었다. 이는 천공이 서울, 울산 등지에서 20·30대를 대상으로 문답을 주고받는 행사다. 오는 10월16일 경기도 광교에서 예정된 청춘포럼도 마찬가지다.
그 외에 '대한민국 미래포럼' '문화재해석 랜선 페스티벌' 등 사업의 이름은 다양하지만 모두 천공의 강의로 이뤄져 있었다. 재단의 전 관계자는 "초기에는 영화제를 기획해 정법(천공이 창시했다는 법도)의 가치를 담은 시나리오를 영화화하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법시대문화재단 이사장은 신경애씨다. 그는 천공이 제자로 인정한 유일한 사람이다. 신씨는 2017년 3월 서울역 별실에서 열린 재단 창립 발기인 총회에서 정 회장과 함께 모습을 보였다. 당시 신씨는 천공의 초기 지원 단체였던 ㈜정법시대의 대표 자격으로 초대 이사장에 선출됐다.
신씨는 현재 재단 외에 ㈜케이에이글로벌, ㈜월드홍익선원 등 천공을 지원하는 영리법인 2곳의 대표를 겸하고 있다. ㈜케이에이글로벌은 '정법시대'에서 이름을 바꾼 회사로 천공과 관련된 책을 출판하고 있다. ㈜월드홍익선원은 정법을 익히는 체력 단련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신씨는 최근 윤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것으로 밝혀져 갑론을박을 일으켰다. 일요신문은 "취임식 참석자 명단에 신씨와 케이에이글로벌 감사 등 2명이 포함됐다"고 9월29일 보도했다. 신씨는 6월13일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취임식 참석 후기를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은 무속인과의 관계를 도저히 끊을 수 없는 것이냐"(김현정 대변인)고 비판했다.
천공은 출판 업계의 한 측근을 통해 정 회장에 관한 입장을 시사저널에 전해 왔다. 그에 따르면, 천공은 "재단 회계자료에 나온 (정 회장의 지원) 내용은 모두 사실"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의로 재단을 도와줬을 뿐 특별한 관계나 별다른 목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장금상선 "사회발전·약자지원 의도로 후원…정치적 의도 없다"
장금상선 측도 천공에 대한 정 회장의 지원 사실을 인정했다. 회사 고위 관계자는 10월5일 시사저널과 만나 "정 회장이 천공의 책을 읽고 그의 사상에 일부 공감해 사회 발전과 약자 지원이란 순수한 의도에서 재단을 후원한 것"이라며 "원래 회장이 동양철학에 관심이 많아 관련 단체 여러 곳에 기부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단 지원은 대통령과의 연관성이 언급되기 훨씬 이전에 이뤄진 것으로 정치적 의도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또 회삿돈이 재단 기부금으로 쓰인 점에 대해서는 "전부 기부금 영수증을 받았다"며 "회계상 100% 투명하게 처리했다"고 강조했다. 신씨와의 관계에 대해선 "천공을 아는 것일 뿐 개인적인 인연은 없다"고 했다. 장금상선 고위 관계자는 "재단이 정 회장의 기부금을 어떻게 썼는지는 구체적으로 모른다"며 "앞으로 기부를 이어갈지도 알 수 없는 부분"이라고 했다.
정 회장이 창립한 장금상선은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하다. 그러나 해운 업계에선 공룡 기업이다. 장금상선의 모태인 장금유한공사는 1989년 한국 동남아해운과 중국 시노트란스가 50대 50의 지분을 투자해 설립한 합작회사다. 이후 1999년 당시 동남아해운 사장이던 정 회장이 양측 지분을 모두 인수해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장금상선은 2020년 자산총액 6조4000억원을 기록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한 대기업집단에 처음 포함됐다. 이후 2년 만인 올해 초 9조3000억원으로 훌쩍 뛰어 대기업집단 자산총액 50위를 차지했다. 그사이 계열사는 17개에서 30개로 늘어났다. 작년 당기순이익은 1조6700억원으로 예년 대비 약 7300% 증가율을 보였다. 압도적 1위다. 프랑스 해운조사업체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장금상선의 컨테이너선 적재량은 세계 20위 규모다. 정 회장은 2019년 한국해운협회장에 취임한 뒤 올해 연임에 성공하며 대외 행보의 폭을 넓히고 있다.
시사저널의 기사 보도 후 장금상선은 10월7일 추가 입장을 전해왔다. 회사 측은 "앞으로 더 이상 천공이나 정법시대문화재단에 대한 기부는 중단하겠다"며 "기존에 해왔던 것처럼 향후 약 200억원 이상을 해운협회나 재단을 통해 사회적 약자를 돕고 건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기부를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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