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수리남, 기아나, 그리고 드레퓌스

조성관 작가 2022. 10. 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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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남 포스터 / 사진출처=네이버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넷플릭스 시리즈 '수리남'은 남미 수리남에서 암약한 마약상 스토리다. 수리남이 마약과 부패의 소굴로 그려지다 보니 수리남 정부가 넷플릭스에 공식적으로 문제 삼기도 했다.

이 영화가 나오기 전까지 남미대륙 북동쪽, 브라질 위에 수리남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세계지리에 해박한 사람이 아니라면 알기 쉽지 않은 나라다.

인구 63만명의 수리남은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공화국. 수도는 프리마리보. 영화에 보면 공용어인 네덜란드어가 수시로 튀어나온다. 네덜란드 프로축구에 수리남 출신들이 여러 명 활동하는 배경이다.

나는 수리남보다는 수리남 양옆에 붙어 있는 두 나라를 오래전부터 눈여겨봤다. 영국령 가이아나(Guyana)와 프랑스령 기아나(Guiana). 3형제처럼 쪼르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세 나라 가이아나·수리남·기아나. 이들 3국은 16세기부터 시작된 대항해시대와 제국주의 시대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오래전, 나는 가이아나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캐나다 토론토에 연수특파원으로 있던 1990년대 중반이었다. 토론토의 연례 축제 중의 하나가 캐러밴(Caravan)이다. 토론토에는 140여개 민족 커뮤니티가 있다. 그중 일부 민족이 출신지 대표 도시 이름으로 캐러밴을 꾸민다. 역사와 문화를 알리며 특산품과 전통음식을 판매하는 축제다.

나는 조지타운(Georgetown)이라는 도시명만 보고 들어갔다가 그 도시가 가이아나의 수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조지타운 캐러밴에 전시된 특산품 중에는 살 만한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빈손으로 나오기 뭐해 산 것이 조악한 고무 장식품이었다.

기아나를 알게 된 것은 드레퓌스 사건과 영화 '빠삐용'으로 인해서다. 1894년 프랑스 파리에서 유대계 육군 포병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1859~1935) 대위가 독일군에 기밀을 넘긴 반역 혐의로 체포된다.

1894년의 알프레드 드레퓌스 /사진출처=위키피디아

신문에 드레퓌스의 간첩 혐의를 주장하는 믿기 어려운 증거들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군부와 권력층을 중심으로 반(反)유대주의자들은 드레퓌스가 반역죄를 저질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유대인들과 일부 지식인들만이 드레퓌스가 누명을 썼다고 생각했다. 드레퓌스는 군사법정에서 결백을 주장했지만 눈 내리는 날 마당 쓸기였다. 속전속결로 진행된 군사법정은 그에게 종신형을 선고했고, 그는 기아나로 유배된다. 그곳에서 그는 한번 들어가면 살아서 나오지 못한다는 악마의 섬에 갇힌다.

당대의 프랑스 작가가 펜을 들지 않았다면 드레퓌스는 그곳에서 고독하게 죽어갔으리라. 그는 에밀 졸라(1840~1902)다. 명예와 부를 양손에 쥔 졸라는 모든 걸 걸고 진실의 편에 서기로 한다.

1898년 로로르 신문 1면에 장문의 원고가 실렸다. '나는 고발한다'. 누가·언제·어떻게·왜 드레퓌스에게 간첩 혐의를 씌웠는지를 낱낱이 고발하는 글! 언론의 왜곡·날조로 인해 드레퓌스가 간첩죄를 지었다고 믿어온 프랑스 국민 대부분은 뒤통수를 얻어맞았다. 권력과 언론에 속았구나!

드레퓌스 사건에 대한 재심 여론이 거세졌고, 결국 드레퓌스는 무죄 판결을 받고 프랑스로 돌아와 사면된다. 다시 군에 복귀한 드레퓌스는 1차세계대전에 참전했고, 중령까지 진급해 1918년 퇴역한다.

파리 몽 파르나스 공원묘지에는 시인 보들레르, 사진가 만 레이, 작가 보부아르·사르트르, 가수 갱스부르, 작곡가 생상스 등이 영면한다. 이곳에서 문인이나 예술가는 아니지만 식자층의 발길이 잦은 곳이 드레퓌스 묘다. 음각된 비문을 손끝으로 읽어 내려가면서 나의 눈길이 오래도록 머문 곳은 자식인 1남1녀였다. 그가 악마의 섬에서 나오지 못했다면 아버지 이름을 주홍글씨로 여기며 평생을 살아갔을 남매.

알프레드 드레퓌스 가족묘에서 필자 / 사진출처=조성관 작가
1905년의 드레퓌스 가족 사진 /사진출처=위키피디아

'파리가 사랑한 천재들'(문인편)의 등장인물 에밀 졸라를 연구하면서 내가 "유레카"를 외친 순간이 있다. 시인 구상이 1984년에 쓴 시 '드레퓌스의 벤치에서–도형수 짱의 고백'를 발견했을 때다. 그 소름 돋는 지적 희열은 지금까지 생생하다. 영화 '빠삐용'을 그렇게 여러 번 봤으면서도 재미만을 탐한 채 '드레퓌스'를 발견하지 못했는데. 역시 '시인'은 '범재'와는 보는 차원이 다르구나.

스티브 매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한 '빠삐용'은 실존 인물 앙리 샤리에르의 체험 수기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파리의 삼류 건달 샤리에르는 살인죄를 뒤집어쓴다. 종신형 선고를 받고 기아나 악마의 섬에 유배된다. 영화에는 두 차례로 나오지만 실제는 13번이나 탈출 시도를 감행한다. 그리고 마침내 자유를 찾는다.

라미 말렉이 주연한 영화 '빠삐용'에서는 드레퓌스가 언급되지 않는다. 1973년 영화 '빠삐용'에서 아주 짧게 드레퓌스를 상기시킨 이유를 생각해본다.

샤리에르가 악마의 섬을 탈출해 처음 도착한 곳이 프랑스령 기아나. 그는 다시 영국령 가이아나로 갔다가 베네수엘라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현지 여인과 결혼해 아이를 낳고 25년을 산다. 베네수엘라에서 그는 자신의 체험을 소설로 썼다. 이것이 파리에서 출간되어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됐고, 1973년 영화로 만들어졌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죠스'가 나온 게 1975년. 이 영화의 주인공은 세 사람. 상어 사냥꾼 퀸트(로버트 쇼 분), 경찰서장 브로디(로이 샤이더 분), 해양생물학자(리처드 드레퓌스 분). 이들 중 내가 특히 주목한 배우는 리처드 드레퓌스(1947~). 스무 살에 영화계에 데뷔해 30대에 이미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세 번이나 거머쥔 명배우.

리처드 드레퓌스는 뉴욕 태생의 유대계다. 그의 부모는 폴란드와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왔다. 이민 2세인 리처드는 어렸을 때부터 드레퓌스 사건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다. 리처드는 인터뷰에서 "우리 집안 사람이라 알프레드 드레퓌스를 늘 생각하며 성장했다"고 말했다.

졸라는 1908년 몽마르트르 묘지에서 국가영웅 묘지 팡테옹으로 이장된다. 그곳에서 졸라는 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와 같은 방에서 나란히 누워 있다.

드레퓌스는 1935년 72세로 생애를 마쳤다. 2년 뒤 아들 피에르는 아버지와 1899~1906년에 주고받은 편지와 기억을 바탕으로 회고록 '기억과 편지교환'을 출간했다.

1902년의 에밀 졸라 / 사진출처=위키피디아

드레퓌스 사건의 진실은 무엇인가. 왜 군부와 권력은 드레퓌스에게 반역죄를 뒤집어씌웠나. 기원은 1870년 보불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군부는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에 꾀에 속아 성급하게 선전포고를 했다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한다.

나폴레옹 3세는 프로이센에 항복했고, 프로이센은 그 대가로 알자스-로렌 지방을 차지한다.(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은 바로 프로이센 지배를 받게 되는 시골 학교 이야기다.)

패전의 수모를 당한 군부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희생양을 찾던 중 유대인 장교 드레퓌스 대위가 걸려들었다. 그들은 프랑스 사회에 만연한 반유대주의(antisemitism)에 기름을 부어 사건을 날조했다. 전쟁 패배의 원인이 마치 유대인에게 있는 것처럼. 모두가 침묵의 카르텔에 숨죽이고 있을 때 졸라가 양심의 횃불을 들었다.

2021년 졸라의 별장이 있던 메당(Médan)에 에밀 졸라 박물관이 개관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개관식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드레퓌스가 겪은 모욕과 불의를 보상할 수 없다."

올해는 '프랑스의 양심' 에밀 졸라가 사망한 지 120년이 되는 해다. 지난 9월29일이 작가의 기일(忌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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