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소수서원과 정치인 자질

기자 2022. 10. 6.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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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 토론회로 널리 알려진 중견 언론인 단체 관훈클럽은 지난주 문화유적 답사 차 경북 영주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다녀왔다.

국내 최고(最古) 목조 건물인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펼쳐진 천년 고찰의 풍광은 압도적이었지만, 조선 최초의 사액(賜額)서원인 소수서원의 매력도 만만치 않았다.

서원은 제향(祭享)과 강학(講學)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강학 영역의 건물은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의미하는 하학상달(下學上達) 원칙에 따라 배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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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 논설위원

대선 후보 토론회로 널리 알려진 중견 언론인 단체 관훈클럽은 지난주 문화유적 답사 차 경북 영주 부석사와 소수서원을 다녀왔다. 국내 최고(最古) 목조 건물인 무량수전을 중심으로 펼쳐진 천년 고찰의 풍광은 압도적이었지만, 조선 최초의 사액(賜額)서원인 소수서원의 매력도 만만치 않았다. 서원을 휘감은 죽계천이 빠져나가는 지점 양편에 세워진 경렴정과 취한대, 정문 앞 500년 수령의 은행나무와 소나무 숲, 그 위에 떠있는 흰 구름은 ‘백운동 서원’이라는 첫 작명의 이유를 짐작하게 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들의 최근 행태 때문인지 소수서원의 현판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조선은 고려 말 정치 불안, 불교의 부패, 몽골 침략 등으로 위기가 고조되자 신흥 무인세력과 신진 사림이 유교를 기반으로 건국한 나라다. 그러나 초기 개혁 정신이 쇠퇴하고 외척이 정국을 주도하자 사림은 훈구세력을 흡수하면서 다시 세력을 키워나갔고, 그 전초기지가 서원이었다. 명종이 퇴계 이황의 요청을 받아들여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의 ‘소수’란 현판을 내린 것도 이 때문이다.

서원은 제향(祭享)과 강학(講學)의 공간으로 나뉘는데, 강학 영역의 건물은 학문의 차례와 단계를 의미하는 하학상달(下學上達) 원칙에 따라 배치된다. 대학 강의실 격인 강학당 뒤편 오른쪽부터 지락재(至樂齋), 학구재(學求齋), 일신재(日新齋), 직방재(直方齋)가 차례로 서 있다. 1804년 원장이던 성언근은 저서 ‘일신재기’에서 “학자의 공부는 독서를 우선하기 때문에 지락재가 맨 아래에 있고, 성현같이 되기를 구하는 학문을 하기 때문에 학구재가 그 왼쪽에 있다. 날마다 덕을 새롭게 하기 때문에 일신재가 그 왼쪽에 있다. 덕을 새롭게 하고 경(敬)으로 내면을, 의(義)로 외면을 바르게 하기 때문에 직방재가 그 왼쪽에 있다.…‘직방’에 이르면 천하에 교화를 밝힐 수 있기 때문에 그 앞에 명륜당(明倫堂)으로 불리는 강학당이 있다”고 설명했다.

서원은 조선 말 당쟁의 진원지로 지목돼 철폐되지만, 조선이 500년 왕조를 유지하는 정신적 바탕이 된 것도 사실이다. 특히,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에 실패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 지도자 재교육에 최선의 장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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