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과 정권의 격돌..이란에 타오른 인권

김현아 기자 2022. 10. 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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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lobal Focus - ‘히잡 의문사’ 이란… 13년 만의 최대 시위

‘히잡’에 붙은 불이 19일째 타오르고 있다.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22)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붙잡혔다 의문사하며 발발한 시위가 5일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넓게 번지는 형국이다. 목숨을 건 이란 여성들의 항거에 여성 인권을 ‘주변 문제’로 여기던 이란 남성들도 동참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누나, 또는 여동생이 ‘사람’이 아닌 ‘사유재산’으로 취급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외침이다. 당국의 무력 진압이 계속되며 ‘제2의 톈안먼(天安門) 사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와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체제에 ‘대격변’이 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의문사에 번지는 여권 시위

히잡 제대로 착용않은 혐의로

마흐사 아미니 의문사 19일째

단순한 히잡의 문제가 아니라

43년간 자의식 해체의 목소리

의문사 규명 시위나선 여성들

잇단 실종 · 의문사 사태 키워

146개국 중 젠더 격차 143위

여권 등한시하던 남성도 동참

‘146개국 중 143번째.’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머리에 천이 둘린 이란 여성들이 겪고 있는 젠더 격차 현주소다. 단순히 히잡을 착용한 것이 아니라, 무려 43년 동안 남성들과 종교 권력으로부터 켜켜이 자의식 해체를 당해왔다고 이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찰에 체포됐다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22)로부터 촉발된 시위지만, 사실은 자신의 이야기라는 고백이다. 하지만 5일에도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여성이 목숨을 잃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의문사 시위’ 속 계속되는 의문사=영국에 본부를 두고 이란어로 뉴스를 제작하는 ‘BBC 페르시안’ 등에 따르면, 최근 17세 여성 니카 샤카라미가 수도 테헤란의 한 거리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샤카라미는 지난달 20일 테헤란에서 아미니 사망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시위에 참석한 뒤 행방불명된 상태였다. ‘보안군에게 쫓기고 있다’고 친구에게 남긴 메시지가 마지막이었다. 인권단체들은 샤카라미가 경찰에 체포된 후 구금 도중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족들은 “신원 확인을 위해 구치소 내 영안실로 찾아갔지만, 얼굴을 단 몇 초 동안 보는 것만 허용됐다. 몸은 볼 수 없었다”고 호소했다.

SNS ‘틱톡’에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등 밝은 모습으로 인기를 얻었던 하디스 나자피(22)도 보안군의 총격에 스러졌다. 스카이뉴스에 따르면 나자피는 여성 인권 운동가는 아니었지만, 원하는 방식으로 살 권리, 원하는 옷을 입을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시위에 동참했다고 한다. 금발로 염색한 머리를 질끈 동여맨 뒤 시위대 속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끝으로, 더 이상 나자피가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페르시아어 언론매체 라디오 자마네에 따르면 나자피는 카라지에서 시위하던 중 얼굴과 가슴, 목에 최소 20번의 총상을 입고 사망했다. 나자피의 유족들은 BBC 페르시안에 “당국은 이틀 동안 시신을 돌려주지 않았고, 아버지에게 ‘심장마비로 사망했다고 말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146개국 중 143번째, 이란 여성 인권 어디로 가나=지난 7월 세계경제포럼(WEF)이 발간한 2022 ‘세계 젠더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의 젠더 격차는 조사 대상 146개국 중 143위로 최하위였다. WEF는 여성의 사회적 참여와 경제활동 기회, 교육, 건강과 생존, 정치 참여 정도 등을 기반으로 젠더 격차 지수를 조사한다. 특히 경제활동 기회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것 같다고 이란 반정부단체 국민저항위원회(NCRI)는 분석했다.

이란 여성의 인권은 1979년 이슬람 혁명으로 이란 내 신정체제가 들어선 이후 억압받기 시작했다. 만 9세 이상이면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 1981년부터 대외 활동을 제한하는 명목 아래 축구장 출입도 금지했지만, 41년 만인 지난달 관람을 허했다. 일부다처제, 조혼 문화도 합법이다. 영국에 본사를 둔 이란인터내셔널에 따르면 지난해 3∼6월 10∼14세 소녀 9750명이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한 부부에게 400달러(약 57만 원)의 현금 보조금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조혼이 증가하는 추세라는 분석이다. 매체는 경제 불황으로 아이를 양육하기 어려운 부모들 역시 딸을 빨리 시집보내려 한다고 덧붙였다.

■ 하메네이 퇴진 반정부 시위

아미니 사망규명 촉구 시위서

사망자 154명으로 늘어나자

‘풍속단속’ 도덕경찰 폐지에서

하메네이 퇴진 연대까지 번져

여성 인권문제 도화선 됐지만

축적된 사회적 불만이 불지펴

외신들 “시위가 진압되더라도

하메네이 승계에 문제 생길 것”

5일(현지시간) 노르웨이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IHR)에 따르면, 마흐사 아미니 사망 진상 규명 촉구 시위 사망자는 전날(4일) 기준 154명까지 대폭 늘었다. 이 중 최소 9명이 어린이를 포함한 미성년자로 추정된다. 테헤란대 등 주요 대학가를 중심으로도 정부 규탄 시위가 확산하며 진압 양태도 과격화하고 있다. 시민들은 트위터 등 SNS를 통해 “제2의 톈안먼 사태”라며 국제사회가 연대해달라고 호소했다.

◇13년 만 최대 규모 시위, 이란 정권에 돌을 던지다=지난달 17일부터 계속되고 있는 이번 이란 내 시위는 2009년 ‘녹색 운동’ 시위 이후 최대 규모다. 두 시위는 녹색 운동 시위가 부정 선거 의혹에서 불거진 민주화 시위고, 보안군과 시위대가 대규모로 무력 충돌했다는 점에서 유사해 보인다. 하지만 이란의 풍속을 단속하는 ‘도덕 경찰’ 폐지 주장에서 시작된 움직임이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퇴진을 겨냥한 국내외 연대로 번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는 “이란 정부가 13년 만에 가장 심각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평했다.

이 같은 관측은 이번 시위가 단순히 여성의 사회 참여 제한을 비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 인권 문제가 도화선이었다면, 그간 축적된 경제 불황·관료 부패 등 사회적 불만이 불을 키웠다는 평가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성직자 집권 체제가 시작되며 무분별하게 자행된 사생활 침해 역시 주요 이유로 꼽힌다. 온라인 학술 매체 ‘더 컨버세이션’은 “이란은 자국민이 외국의 콘텐츠를 접하지 못하도록 가정 내 위성방송이나 비디오카세트녹화기(VCR)를 단속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란 정부가 현재 시위 상황이 국내외로 전파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인터넷·SNS 접속을 차단하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매체는 “집권 중인 성직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는 이란 사람을 찾는 것이 어려울 지경”이라고 설명했다.

빈부, 학력, 지역에 상관없이 이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오는 이유다. 하메네이는 상황이 격화하자 지난 3일 처음으로 시위에 대해 입을 열며 “최근 반(反)정부 시위는 미국·이스라엘의 계획”이라고 ‘외부의 적’으로 화살을 돌렸다. 과거 시위 때마다 등장하던 프레임이다. 하지만 현세대는 SNS 등으로 정보를 실시간 공유 받고 있어, 설득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하메네이 체제, 흔들릴 수 있을까=포린어페어스는 “이란 정권이 정당성 위기에 몰렸다”고 진단했다. 시위대의 분노가 하메네이 일가를 향해 집중 쏟아지며 하메네이의 ‘33년 집권’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분석이다. 특히 83세인 그의 건강이 급격히 악화했다는 보도가 나오며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평가도 나오는 상황이었다.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정권의 뿌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위가 장기화하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외신들은 “시위가 진압된다고 해도 하메네이 이후 승계 과정에 대한 의문이 계속해서 제기될 것”이라고 전했다. 시위 종료 이후 비슷한 시위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특히 ‘포스트 하메네이’로 거론되는 인물들이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 하메네이의 둘째 아들 모즈타바 등 강경 인물이라는 점이 이 같은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라이시 대통령은 지난해 최저 투표율 속 당선된 이후 이렇다 할 정책적 성과를 내지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모즈타바 역시 30여 년간 하메네이의 ‘문고리 권력’으로 살았을 뿐, ‘하메네이 시즌2’일 뿐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현아 기자 kim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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