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법의 지배와 법의 한계

서영식 충남대 리더스피릿 연구소장 2022. 10. 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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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식 충남대 리더스피릿연구소장

이 세상에 법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이에 20세기를 대표하는 법철학자 드워킨(R. Dworkin, 1931-2013)은 법이란 우리가 생존을 위해 반드시 지녀야 하는 "칼이자 방패"이며, 인간은 예외 없이 "법의 제국의 신하"라고 갈파한 바 있다. 그렇지만 법의 중요성에 대한 강조가 마치 법만 있으면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식으로 행동해도 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왜 그런가? 약 2500년 전 그리스 아테네에서 활동했던 철학자들을 소환해서 음미해 보자.

역사 속의 독재자들이 주장했던 바와 달리, 소크라테스는 결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일부 법률가들의 해석처럼, 절차에 따라 제정된 법은 개인적인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반드시 준수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아니다. 이러한 해석은 한 명의 위대한 철학자를 단순히 형식적 법치주의의 신봉자로 평가하는 부적절한 처사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정황상 탈옥이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독배를 마시고 최후를 맞이한 소크라테스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소크라테스의 철학 활동을 살펴보면, 그는 당시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던 불문법(도덕, 관습, 신탁 등)이 현실에서 무비판적으로 수용될 만큼 타당한가, 또한 이것의 정당성과 가치는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면서 일생을 보낸 인물이다. 따라서 법에 대한 그의 태도는 단순히 법은 존재하기 때문에 무조건 정당한 것이라거나, 그것이 현실적으로 문제가 있더라도 일단 지켜야 한다는 식의 주장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택한 이유가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형식적 타당성을 갖춘 재판과 판결을 거부할 수는 없지만, 그 판결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수긍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죽음을 통해서 알리고자 했던 것은 아닌지 물을 수 있다. 즉 그는 법과 제도가 아무리 잘 갖추어져 있더라도 그것이 제대로 운용되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으며 심지어 세상을 옥죄는 도구가 될 수도 있음을, 평생 조국의 계몽을 위해 살았던 자신의 뜻하지 않은 '죽임당함'을 통해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사후 한 세대 정도 지난 시점에 아테네에서 철학 활동을 전개한 아리스토텔레스는, 현실은 다변적이기에 규격화된 법 규정으로 모든 사태를 포괄할 수는 없다는 점을 통찰하였고, 따라서 우리가 법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을 경우 형식적 법치주의에 함몰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나아가 그는 법조문의 기계적인 적용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법률만능주의(legalism)의 폐해를 극복할 방안으로 '근원적 공정성'(epieikeia) 개념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현실의 법조문에 지나치게 속박되어서는 아니 되며, 오히려 법의 근본 의도에 따라서 즉 입법자가 미리 인지했다면 당연히 포함했을 것에 따라 법의 부족한 점을 바로잡고 보충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질적 정의는 법의 한계를 인지함으로써 법적 정의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 속에서만 어렵게 실현될 수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최악의 직업은 여의도를 중심으로 한 정치인 그룹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심각한 부류는 후안무치를 정치적 용기나 과단성으로 포장한 채, 한 줌의 법률 지식을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두르며 날뛰는 일부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다. 자신의 정치적 행위는 형식적 법치주의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인 법률만능주의를 맴돌면서, 정적이나 일반 시민의 일거수일투족은 개인의 권리 보호, 복지 구현, 공동체 보존 등 실질적 법치주의의 관점에서 준엄하게 꾸짖는 행태를 보란 듯이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법이 통치자들의 주인이고, 통치자들은 법의 종인 곳에서만 구원이 생긴다"는 플라톤(소크라테스의 제자이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의 단언을 되새기면서, 특히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에게 법의 역할과 한계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의 계기가 반드시 주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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