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인 칼럼] 고래는 우영우에게만 구세주일까?

정종선 금강유역환경청장 2022. 10. 6.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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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선 금강유역환경청장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얼마 전 막을 내렸다. 자폐를 가진 변호사가 대형로펌에 취직해 적응해 가는 과정을 그린 드라마다. 딱딱한 법정 이야기를 가슴 따뜻해지는 방식으로 풀어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극중에는 고래가 자주 등장한다. 고래는 우영우 변호사에게 법 이외의 유일한 관심사다. 전 세계 고래의 생태에 대해 줄줄 꿰고 있으며, 고래에 관한 대화를 가장 좋아한다. 데이트도 수족관 속 고래를 풀어주자는 시위로 대신할 정도다.

고래는 우 변호사에게 구세주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소송이 잘 안 풀리거나 일상의 어려움에 봉착해 있을 때 우영우의 상상 속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지만 고래가 갑자기 우변호사의 머리 위로 시원스레 물줄기를 뿜어대며 등장한다.

이 순간 우 변호사에게는 신박한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이 아이디어로 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는 것이 이 드라마의 플롯이다. 고래가 인간의 남획과 환경오염으로 생존에 위협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지구 환경에 큰 이로움을 주는 존재란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고래는 엄청난 양의 탄소를 흡수한다. 나무 한그루가 평생 흡수하는 탄소의 양이 평균 21㎏ 수준이다. 이에 비해 고래는 일생동안 33t의 탄소를 호흡을 통해 흡수하고 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수천 그루 나무로 이뤄진 숲과 같은 것이다.

고래의 배설물은 파이토플랑크톤의 성장을 돕는 비료가 된다. 이 식물성 플랑크톤은 광합성을 통해 아마존 열대우림의 4배에 해당하는 탄소를 흡수하고 있다. 지구상의 절반이 넘는 산소도 공급한다.

고래는 죽어서도 탄소를 몸 속에 품은 채 그대로 해저로 가라 앉는다. 탄소를 포집·활용·저장하는 자연적인 CCUS(Carbon Capture, Utilization and Storage) 역할로 지구온난화를 늦추는 역할을 하고 있다.

기후변화가 심각하다. 올 여름 북극은 낮 기온이 20도까지 올라가면서 모기가 극성이었다고 한다. 빙하가 녹은 자리에는 퇴적물이 쌓이면서 거대한 갯벌이 생기고 있다. 얼음지대가 갯벌로 변하자, 북극곰은 설 자리를 잃은 채 개체수가 점점 줄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폭우로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다. 학자들은 올 여름 장기간 내린 폭우로 부쩍 높아진 북극의 온도를 원인으로 꼽는다. 북극과 중위도 지역간의 온도 차가 줄어들면서 제트기류의 힘이 약해졌고, 이로 인해 제트기류에 의해 이동하는 저기압이 한반도에 계속 머물렀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나약한 신체 조건을 가진 인류가 먹이사슬에 정점에 설 수 있었던 이유로 '협력'을 꼽았다. 대규모 협력을 통해 호모 사피엔스는 지구의 최강자가 될 수 있었다. 이제는 인류가 이룩해 놓은 문명의 발전이 지구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고래의 예를 보더라도, 인류는 지난 100년간의 불법 포획으로 고래가 품어야 할 1억t 이상 탄소를 지구대기로 방출시켰다. 바다를 살려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런데 매년 800만t 이상의 플라스틱을 바다에 버려 고래를 비롯한 해양생태계에 위협을 주고 있다. 고래와 바다거북의 뱃속은 플라스틱으로 가득하다.

이제 우리 인류는 과거와는 다른 패러다임의 협력을 해야 할 것이다. 과거의 협력이 생물종의 최강자로 우뚝 서기 위한 것이었다면, 앞으로는 모든 생물종과 공생하기 위한 협력이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바다의 수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후위기는 곧 바다의 위기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쓰레기로 뒤덮은 바다는 해양의 생명들에게 재앙이다. 수온이 높아지고 우리가 버린 쓰레기로 가득한 바다에서는 더 이상 해양생물들이 살아갈 수 없게 될 것이다. 해양 생태계가 망가지면 결국 먹이사슬의 파괴로 우리 인류도 공멸하게 될 것이다. 인간과 자연은 서로 연결돼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영우 변호사처럼 모두의 머리 위에 고래가 자주 나타났으면 한다. 지구 환경을 위한 신박한 생각이 자주 떠오르도록 말이다. 고래가 가져온 모두의 생각이 협력으로 실천돼 지구를 살리고, 바다 곳곳에서 헤엄치며 노는 고래가 아주 많아졌으면 좋겠다. 고래는 우영우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구세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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