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을 치유하는 '힐링게임'이 뜬다

최은상 기자 2022. 10. 6. 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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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펜데믹 이후 우울한 분위기를 달래는 수단으로도 인기 얻어

"이제는 게임하면서 지친 심신을 치유한다"

'힐링 게임' 요즘 들어 정말 많이 듣는 장르다. 원래 이런 장르가 있었나 싶은 물음이 있지만, 이미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 시작이 마케팅 수단으로 썼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제는 엄연한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으니 말이다.

힐링 게임은 2010년대 초까지만 해도 굉장히 마이너한 장르였다. 지금와서 생각해도 딱히 생각나는 게임은 없다. 하지만 이후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더니 이제는 하나의 대세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지난 2016년 나온 농업 시뮬레이션 힐링 게임 '스타듀 밸리'는 지난 5월, 6년 만에 누적 판매량 2000만 장을 넘기며 인디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게다가 출시한지 6년이나 된 콘솔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최다 플레이 게임' 부문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다. 10월 5일 기준으로 최대 동시 접속자 2만5000명 이상을 달성하며 전체 게임 중 31위를 기록 중이다.

이후 2020년 '모여봐요, 동물의 숲(2020, 이하 모동숲)'이 발매 6주 만에 누적 판매량 1341만 장을 돌파하며 정점을 찍었다. 메타크리틱 등 다수 매체들은 모동숲의 성공에 대해 "코로나19로 인해 실외 여가활동이 크게 제한되면서 힐링용 게임으로 글로벌적인 인기를 누린 것"으로 평가했다. 

2019년 상반기부터 2020년 상반기까지 미국 모바일 게임 장르 매출 증가 추이 - 자료 출처 : 센서 타워

힐링 게임의 성장은 2020년 코로나19 펜데믹 이후 산업 전반에서 나타났다. 모바일 앱 시장 조사 및 데이터 분석 기업 센서타워의 자료를 보면 힐링 게임의 현주소를 잘 알 수 있다.

2019~2020년 미국 모바일 게임 시장 매출 추이 그래프를 보면 힐링게임이 주로 속한 시뮬레이션과 라이프스타일 장르의 매출 성장이 두드러진다. 시뮬레이션 장르는 펜데믹 이후 가장 빠르게 성장, 1년 동안 63.2% 증가한 8억5100만 달러를 기록했다. 4위 라이프스타일 장르도 전년 대비 36.7% 증가했다.

센서타워는 힐링 게임의 주류 장르인 시뮬레이션과 라이프스타일이 모바일 게임 시장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비즈니스에 큰 영향을 미쳤던 코로나 사태 이후 크게 증가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가치가 있다고 설명했다. 

■ 그래서 힐링 게임이 대체 뭔데?

힐링 게임과 의료용 기능성 게임 특징 비교 - 자료 출처 : 힐링 게임의 개념과 주요 특징에 관한 연구 보고서

건국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보고서 '힐링 게임의 개념과 주요 특징에 관한 연구'는 힐링 게임과 쉽게 혼용되었던 의료용 기능성 게임(또는 치료적 기능성 게임)과의 비교 분석을 통해 힐링 게임의 개념을 보다 명확히 정의내렸다. 기능성 게임과 차별화되는 힐링 게임의 주요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첫 번째, 힐링 게임은 치유감의 형성과 전달을 정체성으로 내세우는 상업적 게임이라는 점이다. 유저의 건강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위안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적극적인 마케팅 요소로 내세운다는 말이다. 

핵심은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도피처 제공이다. 이를 위해 힐링 게임은 패배와 좌절의 경험을 최대한 배제하는 등 긍정적인 게임 경험을 보장하고 유저의 다양한 정서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도록 기획된다.

두 번째는 추상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힐링 게임의 이야기에 진정한 정답은 없으며 유저의 정서적 반응과 게임 경험을 통해 도출된 모든 감상이 '정답'이 될 수 있다"고 표현했다.

마지막으로는 대부분의 힐링 게임이 '여유로운 플레이'를 지향한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힐링 게임은 조작이 쉽고 간단하다. 임무 달성 실패에 따른 불이익도 거의 없다. 유저가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게임 공간을 탐험하고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 심리학자가 바라본 힐링 게임은?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 - 이미지 출처 : 한빛비즈 유튜브

이장주 이락디지털문화연구소장(심리학박사)은 유저가 힐링 게임을 즐기는 이유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첫째는 '자기통제력적' 측면이다. 자기통제력이란 눈앞의 작은 목표보다 좀 더 지속적이고 더 나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현재의 충동이나 욕망을 조절하고 즉시의 만족감이나 즐거움을 지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소장은 "무료한 삶을 보내는 것보단 화분 등을 관리하는 분들이 더욱 건강하고 더 많은 활력을 얻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며 "무기력한 삶보단 애써 힘을 쓰고, 보다 노력하는 '스타듀 밸리'나 '동물의 숲'과 같은 힐링 시뮬레이션 게임이 자기통제력 투영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둘째는 '비의식적 경험'의 투영이다. 유저는 게임에 몰입하며 다양한 무의식적 욕구를 충족한다. 게임에서는 현실에서 해보지 못한 경험을 체험한다. 즉, 욕망을 해소하는 하나의 창구로서 즐기게 된다는 뜻이다.  

이 소장은 "비의식적 경험의 측면에서 힐링 게임을 바라봤을 때 현실 속 건물주와 임차인의 관계로 바라볼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한 번쯤 건물주가 되어 세를 받으며 여유로운 삶을 보내는 것을 꿈꿔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방치형 힐링 게임에서는 자신이 무언가 열심히 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진행되고 반응한다.

이 소장은 "바쁘게 살아가며 활력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건물주의 삶을 꿈꾸는 이들도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심리학적 측면에서 힐링 게임은 일종의 욕망의 투영이며 이에 부합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인기가 급부상하게 됐다고 생각된다"고 덧붙였다.   

 

■ 위치빔 '언패킹'

 

국내에선 최근 V-Tuber 그룹 '홀로라이브'의 방송을 통해 소개되며 인지도가 높아졌다. 언패킹은 굉장히 심플하면서도 몰입감이 높은 게임이다. 게임 방식은 그저 방에 짐을 풀고 정리하는 게임이다. 

얼핏 보고 있으면 "대체 이걸 왜 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구조가 단순하지만, 10월 5일 기준 1만3605개의 유저 평가 중 92%가 긍정적 평가를 내리며 최고의 힐링 게임 중 하나로 꼽힌다.

언패킹은 1997년부터 2018년까지 21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품 속 주인공이 머물렀던 장소의 짐을 풀고 정리하며 주인공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는 작품이다. 플레이타임은 5~6시간 정도로 짧은 시간이지만, 게임을 끝마치면 복잡한 생각으로 가득한 머릿속이 한결 개운하게 정리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게임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여유'가 아닌가 싶다. 한 스팀 큐레이터는 "하루하루가 정신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언패킹은 바쁜 시간 속 머리를 비우고, 숨을 돌릴 틈을 제공하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 네오위즈 '고양이와 스프'

 

네오위즈의 자회사 하이디어가 개발한 고양이와 스프는 힐링 모바일 방치형 게임이다. 누적 다운로드 2300만을 기록하며 인기 IP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최근 대원미디어와 함께 피규어, 패션 악세서리 등 관련 상품 개발을 추진하며 글로벌 시장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네오위즈의 지난 1분기 매출액은 766억 원을 기록해 전 분기 대비 11% 증가했으며 영업이익은 112억 원으로 전 분기 대비 176% 상승했다. 실적 상승에 대해 네오위즈는 고양이와 스프의 글로벌 성과 확대에 힘입은 결과로 영업이익률도 15% 수준을 회복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고양이와 스프는 방치형답게 정말 심플한 구조다. 다양한 고양이들이 쥬스, 스프 등 여러 음식을 만든다거나, 휴식을 취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을 통해 힐링하는 평화로운 분위기의 게임이다. 방치형 게임이지만 유저가 직접 플레이하면 간단한 광고 시청 등으로 더 큰 소득을 얻어 빠른 게임 진행이 가능한 특징이 있기도 하다. 

네오위즈 이승엽 PM은 "고양이와 스프는 평소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거나 키우고 있는 유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라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업데이트를 통해 고양이와 스프가 더 많은 이용자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다짐했다. 

■ 블루트웰브스튜디오 '스트레이' 

 

지난 7월 19일에 출시된 스트레이는 7월 미국/캐나다 지역 플레이스테이션(PS) 플랫폼 다운로드 랭킹 1위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하며 힐링 게임으로서의 작품성을 인정받은 것뿐만 아니라 상업적으로도 대성공을 거뒀다. 

스트레이는 사이버펑크 고양이 액션 어드밴처 게임으로 사고로 인해 가족들과 떨어진 고양이가 인간 사회를 대체한 사이버 도시에서 탈출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고양이의 관점에서 본 스토리, 고양이의 모션을 그대로 재현한 애니메이션 그리고 고양이의 특징을 섬세하게 반영한 각종 상호작용 등 철저하게 고양이를 위주로 진행되는 것이 포인트다.    

인디게임 개발사임에도 불구하고 여타 트리플A급 게임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훌륭한 그래픽 비주얼로도 호평을 받았다. 게다가 구성원 대부분이 '집사'로 이루어진 개발사인 만큼 고양이의 생태와 특징을 잘 반영했다는 평이다.  

음울한 사이버펑크 세계관과 버려진 고양이라는 다소 무거우면서도 동화적인 두 세계가 성공적으로 결합하여 스트레이만의 독특한 톤을 만들었다. 플레이 타임은 대략 6~7시간 정도의 짧은 시간이지만, 매 순간이 매우 유기적이고 촘촘하여 지루함을 느낄 틈이 없는 수작이다. 

 

■ 넷마블 '머지 쿵야 아일랜드'

 

머지 쿵야 아일랜드는 넷마블 인기 IP '쿵야'와 머지(merge)를 결합한 힐링 퍼즐 게임이다. 머지란 퍼즐 게임의 하위 장르로 사물 3개를 합치거나 연결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형식을 뜻한다. 머지 게임은 특히 글로벌 게임 시장에서 각광받고 있다. '머지 타운', '트리플 트라운', '머지 맨션' 등 글로벌 인기 퍼즐 게임 다수가 머지를 기반으로 출시됐다. 

출시 초기부터 앱스토어 인기 1위를 달리는 등 유저 사이에서 호평을 받았고, 지난 9월 2022 하반기 이달의 우수게임' 일반게임(프론티어) 부문을 수상 받기도 했다. 머지 쿵야 아일랜드의 장르는 퍼즐 게임이지만 쿵야을 성장시키는 RPG적 요소와 건물을 짓고 밭을 일구는 등의 타이쿤 요소가 결합되여 높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쿵야 시리즈에서 등장하는 친숙한 캐릭터를 모으고 키우는 재미와 더불어 나만의 쿵야 아일랜드를 꾸미는 재미가 있다. 게다가 1천 종 이상의 장식이 있는 만큼 꾸미기 요소를 좋아하는 유저라면 한번 쯤은 꼭 해볼만한 수작이다. 

권민관 넷마블엔투 대표는 "넷마블 대표 IP '쿵야' 캐릭터에 애정을 가진 개발진들이 모여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며 "그동안 노력한 결과를 인정받아 기쁘고 앞으로도 국내 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IP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 모노미파크 '슬라임 랜처2'

 

슬라임 랜처2는 인디게임 개발사 모노미파크에서 지난 2017년 출시하여 글로벌 15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한 슬라임 랜처의 후속작이다. 지난 9월 23일 앞서 해보기를 시작한 본 게임은 스팀 '전 세계 최고 판매 제품' 부문에서 최대 3위까지 오르는 호성적을 거뒀다. 또한 10월 5일 기준 8858개의 유저 평가 중 95%가 긍정적 평가를 하기도 했다. 

지구에서 1000만 광년 떨어진 외계행성을 개척하는 스토리다. 유저는 소나 돼지 같은 일반적인 가축이 아닌 행성의 토착 생물인 슬라임을 키우는 농장주가 된다. 슬라임에게 필요한 시설을 지으며 농장을 성장시켜 나가는 단순한 구조의 게임이다.

물체를 흡수하고 발사하는 '진공팩'이라는 장비를 사용하여 행성의 자원과 슬라임을 채집한다. 슬라임에게 먹이를 주면 보석을 얻을 수 있는데, 이를 팔아 농장의 각종 시설을 증설 및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우주판 스타튜밸리로 이해하면 쉽다. 

아울러 드넓은 행성 곳곳을 탐험하며 아기자기하고 몽환적인 맵을 감상하는 재미도 확실하다. 오픈월드로 제작된 행성은 구역별로 독특한 생태계와 풍경을 선보인다. 농장을 키워가는 재미뿐만 아니라 감상하는 재미도 돋보이는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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