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에 잠긴 함양, '힐링'에 갇힌 여심(旅心)[투어테인먼트]

강석봉 기자 2022. 10. 6. 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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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창의 고향, 개평한옥마을
조선 서원 건축의 효시, 남계서원
화림동 정자의 정수, 거연정·농월정·동호정
최치원 전설로 유명한 상림공원
역발산기개세의 묘약, 산양삼
함양 화림동계곡 동호정에서 가야금병창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가야금 연주자는 진막순 함양군 국악협회 지부장.



걸으면 산이 막아서고, 바라보면 구름이 아련하다. 산들바람도 힘겹게 고개를 넘고 계곡물도 산맥을 비집고 쥐어짜듯 흐른다. 경남 함양이다. 남쪽으론 지리산, 북쪽으론 덕유산이 위풍도 당당하다. 오죽했으면 그 옛적 위정자들이 눈 밖에 난 사람들을 이곳으로 보냈겠는가. 딱 봐도 유배지다. 하지만 쓰임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마련. 요즘 건강식이 과거 배 채우기도 버거운 구황작물이듯, 유배지인 이곳 역시 이제 힐링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힐링에 제대로 갇히는, 함양에 구속될 당신!

■개평한옥마을=이곳은 100여 년은 족히 넘긴 한옥 60여 채가 코스모스 흔들림도 들릴 정도로 조용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선비의 책 읽는 소리가 담을 타고 넘어올 듯한 착각마저 꼬리를 문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일두 정여창의 제2의 고향이다.

개평한옥마을에는 거주민들이 전통 한옥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일두 정여창의 생가인 ‘정여창 고택’ 또는 ‘일두 고택’이라 부르는 정여창 생가가 개평한옥마을에 있다. 이 고택은 그의 사후 반백 년이 지난 후 후손들에 의해 중건됐다. 성리학의 5현 중 한 명으로 고즈넉한 고향 풍경에 그의 품성이 오버랩되지만, 그의 삶은 기대와 달리 고단함의 연속이었다. 무오사화로 유배가서 유명을 달리했고 갑자사화에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인물은 위대했지만 시대는 위험했다.

수많은 고택이 있는 이 마을은 풍수지리상 배 형상을 띄고 있다 하여, 그런 이유로 집집에 우물을 따로 파지 않았다. 배에 구멍을 내는 형국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삐딱선’을 타는 사람이 꼭 있는데, 일본강점기 초등학교의 일본인 교장이 그러했다. 그는 자기 집에 그 짓을 하고야 만다. 동네 사람들은 그 우물이 생긴 후 마을의 운세가 기울었다고 한다.

개평한옥마을 전경



고택이 즐비해 사극 촬영 장소로도 손꼽힌다. ‘일두고택’은 TV드라마 ‘토지’에서 최참판댁으로 쓰였다. 이 뿐이 아니다. 드라마 ‘미스터션샤인’의 여주 고애신의 집도 여기였다. 이러니 이곳을 찾으면 ‘러브할 밖에’…. 드라마도 있으니 역사는 차고 넘친다. 사랑채에는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하는 ‘충효절의’와 김정희의 글씨라고 하는 ‘백세청풍’이라는 붓글씨가 동공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는 크기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그 저작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마을에는 풍천노씨와 하동정씨가 어울렁더울렁 살고 있다. 게다가 530년 전통의 가양주인 지리산 솔송주를 빚는 곳도 이곳에 있다. 하동정씨 문중에 대대로 내려온 술을 제품화했다.

■ 남계서원=정여창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을 위하여 1552년(명종7)에 지었다. 정여창이 1504년 죽임을 당했으나, 그 이후 그의 학문적 깊이가 재평가를 받은 덕이다. 전국에 그를 모신 서원이 9곳에 이른다. 그 중 첫 손에 꼽히는 것이 남계서원이다.

사액서원으로 지정된 일두 정여창을 기리는 남계서원 입구



1566년(명종 21)에 나라에서 ‘남계(灆溪)’라는 사액을 내렸다. 소수서원에 이어 두 번째지만, 소수서원이 사찰과 백운동서원의 자리에 리뉴얼해 서원을 낸 것과 달리, 이곳은 학습공간과 제향 공간을 잘 구별해 지어, 이후 서원 건축물의 구조적 모델로 자리 잡았다.

서원은 교육기관과 제향의 기능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



남계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다. 2009년에는 사적 제499호로 지정됐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화림동 계곡&정자=화림동계곡에는 여덟 개의 못과 여덟 개의 정자가 있다. 이를 ‘팔담팔정(八潭八亭)’이라 부른다. 유배지였던 만큼 꽉 막힌 오지지만 쫓겨온 선비들 덕에 학문에 대한 열의 또한 숨길 수 없었다.

화림동 계곡 초입에 있는 거연정.



책상물림 선비라도 풍류 한 자락 즐길 줄 모를 리 없기에, ‘떼놓은 당상’처럼 정자 풍류는 당시 트렌드였다. 이들은 화림동 계곡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세월을 낚았다. 이곳엔 거연정, 농월정, 동호정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거연정을 잇는 다리와 금천.



선비들은 이제 간 곳 없지만 정자를 퍼즐로 이으며 탐방객들이 화림동 계곡을 트레킹한다. 선비문화탐방로가 그것이다. 아름다운 숲과 계곡에는 물소리와 새소리가 동행하고, 가을 단풍이 반긴다. 선비탐방로는 총 10㎞가 조금 넘는다.

출발은 계곡 상류인 봉전마을 거연정이다. 농월정까지의 6㎞가 1구간, 농월정에서 오리숲까지의 4.1㎞가 2구간이다. 길은 거의 평지에 가깝다. 느릿느릿 여유를 즐기며 걸어갈 수 있다. 걷다가 정자에 올라 계곡물을 바라봐도 좋고 너럭바위에 걸터앉아 구름을 헤아려도 좋다.

농월정은 달을 희롱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거연정은 울퉁불퉁한 바위를 깎지 않고 휘어진 통나무 다리를 바위에 맞추었다. 정자 옆으로 커다란 팽나무와 물푸레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그 아래엔 금천이 흐른다. 물빛이 비취색이니 금천이란 이름이 어울린다. 거연정 옆 150m 거리에 일두 정여창을 기려 세운 군자정이 있다.

걷고 걸어 계곡 징검다리를 건너면 동호정이 있다. 정자에 오르는 계단이며 정자를 떠받친 교각이 자연 그대로다. 통나무를 도끼질 몇 번으로 쳐서 만든 듯한 투박한 계단이 인상적이다. 동호정 앞에 거대한 너럭바위는 해를 가릴 정도로 넓다 하여 차일암이라 불린다.

동호정의 계단이며 다리는 자연 그대로의 멋을 살렸다.



동호정에서 30분 정도 걸으면 농월정이다. 2003년에 화재로 소실된 뒤 다시 복원됐다. 농월정 앞으로 넉넉한 바위와 산그늘 드리운 푸른 물결이 기운차다. 바위마다 선비들의 치기 어린 시구와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을 둘러보는 것도 잔재미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환혼’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상림공원=함양은 경상 우도의 유학을 대표하는 곳이다. 사대부와 관련된 문화재가 많은 것도 그 이유다. 최치원이 이곳 천령군의 태수로 와서 조성했다는 상림도 그중 하나다.

상림공원 내 연못에는 수련이 가득하다.



상림에는 뱀, 개미, 지네 등의 미물이 살지 않는다고 한다. 효성이 지극했던 최치원은 어느 날 저녁 어머니로부터 그곳에서 뱀을 만났다는 얘기를 듣고는 “모든 미물은 상림에 들지 마라”고 외친 후 그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단다. 샅샅이 뒤지지 않아서 그 실체는 모르겠다. 이곳은 산책으로 체격이다. 연못의 수련과 들녘의 꽃밭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상림공원에는 가을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상림에는 함화루, 사운정, 초선정, 화수정 등 정자와 최치원 신도비, 만세기념비, 척화비, 역대군수, 현감선정비군 등의 비석, 이은리 석불, 다볕당 등 볼거리도 널려있다. 상림은 통일신라 말 조성된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림으로 많은 수종의 나무가 빽빽하여 탐방객의 여행길에 피톤치드를 흩뿌린다.

■ ‘함양온데이’ 체험=함양을 즐기는 지역 생활관광 프로그램은 ‘함양온데이(on day)’다. 남계한옥스테이 등에서 머물 수 있고, 함양 서하면 숲속에서 산양삼도 캘 수 있다. 체험료는 3만 원인데, 온데이 참가자는 1만5000원만 내면 된다.

‘함양온데이’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산양삼캐기 체험을 할 수 있다.



‘함양에서 살아보기’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11월까지 3박 4일 한옥 숙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함양온데이’는 ‘함양으로 오다’와 영어 ‘On(켜다, 지속하다)’의 합성어란다. 체험코스로 꽃잎을 말려 작품을 완성하는 압화도 해볼 만 하다.

마른 꽃잎을 이용한 압화 체험



강석봉 기자 ksb@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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