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두진의 안에서 보는 건축] 어떤 럭셔리/건축가

2022. 10. 6. 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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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란 어떤 것일까.

물론 이런 것들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휴일 아침, 책 한 권과 간단한 마실 것 정도를 들고 종묘를 찾아간다.

이런 것은 또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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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건축가

럭셔리란 어떤 것일까. 좋은 집, 멋진 자동차, 세련된 옷, 근사한 저녁 식사, 고급 와인, 프라이빗 사교 클럽, 해외여행, 리조트 회원권 등이 떠오른다. 물론 이런 것들을 일상적으로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한정적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 일부를 특정 순간에 향유할 수 있는 길은 열려 있다. 적금을 깨서 마음속에 품었던 명품을 산다거나 한동안 라면을 먹을지언정 소중한 사람과의 기념일에는 풀코스 디너를 즐긴다거나 좁고 답답한 집에 살다가도 여행을 가서는 바다를 내려다보며 거품 목욕을 하는 등의 일탈은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그런데 이런 럭셔리는 알고 보면 주로 사적 영역에서 벌어진다. 그래서 돈이 필요하며 역설적으로 돈만 있으면 대부분 가능하다. 일부 명품 브랜드는 고객을 가려 가며 판매한다는 이야기가 있기는 하지만 문자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세상은 적어도 이런 면에서는 열려 있기 때문이다.

소비의 순간에는 누구나 금액에 합당한 평등을 누린다. 그러다 보니 또 다른 구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어느 때부턴가 교양과 문화가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잡았다. 이렇게 사적 럭셔리의 세계는 갈수록 복잡하고 어려워졌다.

다른 종류의 럭셔리도 있다. 휴일 아침, 책 한 권과 간단한 마실 것 정도를 들고 종묘를 찾아간다. 입장료가 있지만 그리 큰 부담은 아니다. 일단 그 안에 들어서면 도시의 혼잡함은 물론 시간의 흐름마저 잠시 잊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펼쳐진다.

적당한 그늘을 골라 책을 펴고 앉으면 몇 시간이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때 다른 곳에 있기 때문에 적막함과 호젓함이라는 최고의 호사도 즐길 수 있다. 물론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는 장소는 종묘 말고도 전국에 무수히 많다.

이런 것은 또 어떤가. 국공립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정기적으로 야간 개장을 한다. 그런데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이런 장소를 찾아가 보면 놀라울 정도로 사람이 없다. 야간에 개장을 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행정적 노력과 구성원의 수고가 없이는 불가능한, 매우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붐비는 낮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나 혼자밖에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나 유물과 작품들이 다 내 것 같은 착각에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운이 좋으면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을 수도 있다. 이전 시대 같으면 왕족이나 귀족이 아니면 누리기 어려웠을 호사 중의 호사다.

알고 보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은 남들과 다른 생각과 행동이다. 그래서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혜택을 보는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생각을 가진 시민을 위한 고급 럭셔리를 공공 영역에서 제공하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이다. 이를 즐기기 위한 별도의 조건은 없다. 약간의 시간과 비용, 그리고 이런 장소를 찾고 즐길 줄 아는 생각 정도다. 그럴 기회는 생각보다 많다. 다만 이를 찾아서 누리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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