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의 시선] 어떤 억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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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보라는 듯한 도발적인 문구에 끌려 입장한 독일 베를린의 바(BAR)에선 드래그퀸(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자 공연자) 공연이 한창이었다.
잠시 뒤 무대를 이어받은 이는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성.
"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전 히잡을 안 썼어요." 그는 이란 여성은 가족, 국가 어디에서도 자유를 찾을 수 없다고, 억압에서 벗어나려 자발적으로 거리 시위에 나선 것이고, 10세까지 시위에 나올 정도로 모두가 절박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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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인종·젠더 차별주의자? 동성애 혐오자? 그런 사람이라면, 들어오지 마!"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해보라는 듯한 도발적인 문구에 끌려 입장한 독일 베를린의 바(BAR)에선 드래그퀸(여성성을 연기하는 남자 공연자) 공연이 한창이었다. 잠시 뒤 무대를 이어받은 이는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성. 유독 검은 머리의 여성이 펼칠 공연을 기다리는 관객들에게 그가 건넨 첫 마디. "저, 이란 여자예요."
잠깐의 침묵. 이란 출신 싱어송라이터는 말을 이어갔다. "모두 알죠?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해된 마흐사 아미니요." 이란 반정부 시위를 촉발한 22세 여성 이야기였다. "네,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전 히잡을 안 썼어요." 그는 이란 여성은 가족, 국가 어디에서도 자유를 찾을 수 없다고, 억압에서 벗어나려 자발적으로 거리 시위에 나선 것이고, 10세까지 시위에 나올 정도로 모두가 절박하다고 했다. "이란의 목소리가 되어 주세요!" 시위 슬로건을 외치며 그는 검고 긴 머리카락을 서걱서걱 잘라냈다.
다시 침묵. 그가 손에 쥔 머리카락 뭉치를 보며 관객들은 이란의 비극을 떠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주말 밤 찾은 바에서 마주하리라 예상했던 장면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그런 복잡하고 무거운 마음을 안다는 듯 그는 말했다. "저는 히잡을 안 쓴 이란 여자로서, 제 나름의 저항을 할 겁니다." 히잡이라는 극단적 상징으로 묘사되는 억압의 공간에서 자신은 벗어났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연대를 하리라는 다짐이었다.
어쩌면 이란의 비극을 추모하는 것으로 끝났을 무대를 다른 차원으로 확장한 건 다음 말이었다. "이란만의 문제는 아니에요. 이건 모든 억압의 상징이니까요. 이란을 통해 자유를 위한 목소리가 모이고 있는 거예요." 히잡 안 쓴 이란 여성의 외침은 어떤 억압이 더 크지 않고, 어떤 억압이 더 작을 수 없다는 당연한 말이었다. '동성애가 판치면 대한민국은 망한다'는 혐오의 언어에 정체성을 굴레에 가두는 이들, 혈연이나 이성 간 혼인으로 구성된 가족만 '건강한 가족'으로 인정하겠다는 정부에서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살아야 하는 이들도 언젠가 억압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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