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플라자] 우리 안의 ‘낯선 나라’ 돌아보기

임명묵 대학원생·'K를 생각한다' 저자 2022. 10.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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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농촌서 지내면서 어른들이 들려준 1970년대 한국 풍경 생각나
‘낯선 나라’ 같은 과거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이며 세대 간 소통했으면

이번 여름 태국의 한 시골 마을을 방문할 일이 있었다. 수도 방콕에서 북동쪽으로 350㎞가량 떨어져 있는 이곳은 방콕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나무로 만든 마루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찌는 더위를 식혀주는 것은 힘겹게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 하나가 전부였다. 화장실 변기에는 물을 내리는 레버가 없어서 당황스러웠는데, 돌가루가 가라앉아 있는 물통에서 바가지로 물을 퍼서 물을 내렸다. 밥을 먹는데 갑자기 소들이 마당으로 들어와 느긋하게 풀을 뜯기 시작했다. 소 바로 옆에서 나란히 같이 식사하는 경험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이 마을에 잠시 머물면서 나는 왜 수많은 태국인이 불법적으로라도 한국에서 일을 하고자 열망하는지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그 뒤 방콕으로 돌아와서, 도시를 연결하는 지하철과 우뚝 솟은 고층 빌딩을 보자니 이 도시가 마치 별세계처럼 느껴졌다. 한 나라에 전혀 다른 두 시대가 공존하고만 있는 것 같달까.

그러는 가운데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내게 들려주곤 했던 이야기, 주로 1970년대 한국의 시골 풍경이 생각났다. 산에서 나무를 하거나 소가 먹을 꼴을 베어 와야 했던 일, 도로는 포장이 안 되어 있고 집에는 수세식 화장실이 보급되지 않았으며 한방에서 온 가족이 다닥다닥 붙어 잠을 청했던 과거 이야기를 나는 예전부터 듣고 자랐다. 사실 막상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전혀 실감할 수도 없었고, 어른들이 겪었던 과거의 삶에 큰 관심이 생기지도 않았다. 근래에야 한국의 발전상을 공부하며 한국이 겪은 변화가 얼마나 거대한 것이었는지 막연하게나마 알아가고 있을 따름이다.

그림=이철원

태국의 시골에 잠깐 머물렀지만 그 경험을 통해 나는 나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가 어떤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랐을지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너무나 생경하게 다가온 태국의 시골보다도 더 열악했던 나라에서 태어났고, 고된 삶을 살아오면서 이 나라를 번영하는 산업 대국으로 일구어냈다. 그들 덕택에 후세대는 기초적인 물질적 조건을 쉽게 충족할 수 있는 사회에서 태어나 풍요의 시대에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20대인 우리 세대 사이에서는 계층 격차의 확대와 상대적 빈곤이 새로운 화두로 떠올랐지만, 그것이 절대적 빈곤보다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물론 바뀐 세상에서 이런 식의 과거 회고담이 계속되는 것은 많은 피로감을 유발하는 일이다. 그들의 회고담이 ‘라떼는(나 때는) 말이야’라고 희화화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우리 세대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과거의 방법이 현재에 통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가 더 어려웠다고 해서 현재의 어려움이 경감되는 것은 아니라는 대응을 자주 한다.

하지만 때로는 우리 젊은 세대가 옛이야기를 너무 빠르게 잊고 있다는 아쉬움도 든다. ‘과거는 낯선 나라’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50년 전의 한국은 태국의 시골보다도 더 낯선 시공간이었다. 옛 세대와 지금의 세대라는 낯선 나라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는 당연히 충돌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낯선 나라는 우리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지금 자신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돌아볼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의 원천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옛 세대는 과거라는 낯선 나라에서 출발하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2022년이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반면에, 새로운 세대는 그런 낯선 나라를 겪어보지도 못했다. 물론 다시 그런 과거를 겪어야만 지혜를 알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들끼리 대화하고 소통하려면 낯선 나라인 과거 이야기에도 더 귀를 기울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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