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폐허였던 도시

김선오 시인·시집 ‘나이트사커’ 2022. 10. 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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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한상엽

대학 시절 프랑스의 한 항구 도시에서 교환학생으로 일 년 정도 지냈다. 노르망디 지방에 위치한 ‘르아브르’란 도시였는데 파리에서 만난 프랑스인들에게 “나 르아브르 살아”라고 말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너 정말 운이 없구나”라고 말하는 그런 곳이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의한 함포 사격을 당해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고, 이후 급히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모듈식 건물들이 르아브르의 대부분을 이루게 되었다고 했다. 거리는 대체로 지저분했고 조경은 일관성이 없었다. 전쟁 이전까지는 근처의 다른 도시들처럼 고건물이 즐비한 고즈넉한 분위기였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지만 잘 상상이 가지는 않았다.

귀국 전 남프랑스로 떠났던 여행에서 느꼈던 박탈감은 아직도 선명하다. 풍요로운 일조량, 새파란 바다, 아름다운 건물과 밝은 표정의 사람들을 마주하며 조금 한탄했다. 그렇게 싫어했던 도시의 기이한 모습은 귀국 후에도 한동안 꿈속에 등장했다. 글을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쓰는 소설과 시의 배경에 자꾸만 그곳의 풍경들이 무의식적으로 개입되곤 했다.

문제는 그것들이 쓰고 보니 꽤 괜찮아 보였다는 것이었다. 폐허가 되었다가 급하게 다시 지어진 도시라니, 살 때는 지옥 같았지만 글로 다듬고 나서는 상당히 문학적으로 보였다. 이러한 행위에는 일면 징그러운 구석이 있다. 르아브르의 모습이 등장하는 몇 편의 글을 쓰고 난 뒤 나는 어느 순간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고작 일 년 살다 온 도시를 이렇게 대상화해도 되는 것일까. 도시가 겪어온 일들을 자의적으로 편집하여 그것을 ‘문학적’이라는 과잉된 수사의 대상으로 삼아도 되는 것일까.

나는 폐허가 되었던 도시의 개인들에 대해, 급히 지어진 건물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단지 그곳의 거리와 해변을 걸어보았고, 도시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어디선가 얻어들었을 뿐이었다. ‘풍경’이라는 단어 역시 사실은 외부인, 즉 타자의 호들갑이었다. 단어에 얼마간의 과장과 낭만성이 깃들어 있었다는 뜻이다.

내가 쓴 글에는 새로운 무언가를 만난 이방인으로서의 경외감과 잘 모르는 곳을 글로 쓰는 자의 멋쩍음이 혼재하고 있었다. 무언가에 대해 쓰는 행위는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기 위해 타자 되기를 자처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완전히 타인은 아님을 선언하는 일이기도 했다. 나의 글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든, 이제 이러한 고민과 함께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김선오 시인·시집 '나이트사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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