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RA는 FTA 틀 벗어나 한국 기업에 명백히 불리..한·미, 긴밀 소통 중요"[창간기획]

김유진 기자 2022. 10. 5.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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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본 '한국의 복합위기'
캐슬린 스티븐스 전 주한 미국대사가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KEI)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한·미관계 및 북핵 문제 등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첫 여성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캐슬린 스티븐스 코리아 소사이어티 이사장 및 한미경제연구소(KEI) 소장은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면서 한국산 전기차 차별 논란이 제기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대해 “미국에 과감하게 투자한 한국 기업들에 분명히 불리하게 작용한다”며 “미국 정부와 의회는 이 문제가 한국에서 얼마나 예민하게 받아들여지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미관계에서 현재는 “자유무역협정(FTA) 원칙에 기반한 경제 관계가 재배열되는 조정기”라며 긴밀한 소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선제 핵 공격을 명시한 핵무력 법령을 채택한 데 대해선 “지역 전체를 매우 위험하게 만든다”며 “추가 핵실험 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시에 북한을 대화로 불러내기 위해서는 “비핵화 목표를 점진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통’ 베테랑 외교관 출신인 스티븐스 소장은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대만 유사시 한국의 역할과 관련이 깊은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 깊이 관여했고, 한·미 FTA 협상 체결 과정에도 해박하다. 경향신문은 그를 만나 한국이 안보·경제 차원에서 직면한 복합 위기에 대한 견해를 물었다. 스티븐스 소장과의 인터뷰는 북한이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의 방한 직후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워싱턴 KEI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스티븐스 소장과의 일문일답.

북한 핵무력 법제화, 지역 전체 위험 불러…핵실험 땐 대가 치러야
달라진 북핵 능력 고려해 대화 재개를 위한 ‘창의적 접근법’ 필요
전기차 차별 논란, 한국서 얼마나 예민한지 미 정부·의회가 알아야
IRA는 이례적 상황서 나온 ‘과속방지턱’…공동 해법 조율할 시기

- 북한이 또 미사일을 발사했다.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2006년 북한 1차 핵실험 당시 기억이 생생하다. 주말이었는데 전화를 받았다. 미국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당시 핵실험으로 북핵 문제가 중대한 고비에 이르렀다. 이번에 7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유엔과 미국, 한국 등 국제사회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한 북한을 결코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NPT 체제 수호를 재확인했다. 북한은 핵실험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국제사회는 규탄이나 제재 등으로 대응할 것이고, 중국 역시 핵실험을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현 국제 정세상 러시아와 중국이 상임이사국으로 있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미국 등 다른 나라들이 원하는 행동을 할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 핵무력 법제화를 선언한 북한의 전략적 셈법을 평가한다면.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의 핵무력 법제화 선언은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이 취한 여러 조치의 연장선이자, 코로나19 팬데믹과 미·러, 미·중 대결 고조로 인한 새로운 지정학적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자위적 차원 나아가 공격 측면에서까지 핵·미사일 역량 강화를 추구하고 있다. 북한을 세계의 관심에서 붙들어두기 위해 비타협적인 입장을 제시하고 있다. 김정은의 논리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북한의 이런 입장은 정부 식으로 말하자면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이고, 지역 전체를 위험하고 불안하게 만든다. 외교의 길을 모색하기 매우 어렵게 만들고 있다.”

- 한·미가 북한과의 대화 재개를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있을까.

“바이든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를 원한다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대화 제안을 좀 더 구체적이고 매력적으로 만들면서, 보건·백신·식량 등 인도적 분야 지원을 통해 물꼬를 틀 수 있다. 북한이 구걸하는 것처럼 보이기 싫어한다는 점을 유의한다면 인도적 지원은 북한과의 관여를 시작하는 길이 될 것이다. 다만 현재까지 북한은 한·미의 인도적 지원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중국이나 러시아에 손을 내밀 것으로 생각한다.”

지난해 1월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8차 북한 노동당 대회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핵무기 탑재 가능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실은 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 북한이 어떤 조건에서 협상에 복귀할 것으로 보나.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다소 조심스럽지만 워싱턴에서는 (북한이) 비핵화 선언을 해야 어떤 것도 시작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고, 이를 군축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상정한다. 그런데 지금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비핵화냐 군축이냐 하는 프레임이 필요할까. 때때로 외교에서는 대화 재개를 위해 문제를 약간 새롭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비핵화 용어는 1990년대 남북 간 합의에서 처음 쓰인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우리의 최종 목표는 비핵화이며, NPT를 존중하고 남북 간 합의에 바탕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화를 통해 위험을 줄이는 절차를 시작하기 위해 어떻게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 대화 절차가 시작될 수 있는 정확한 타이밍과 형식과 단어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은 2006년이 아니다. NPT 체제의 틀 안에서 현재 상태를 인정하고 목표를 점진적으로 달성하기 위한 로드맵을 찾아야 한다.”

- 비핵화가 요원해질수록 한국 내에서 핵무장론이 대두할 것이란 전망도 있다.

“한국 국민으로선 그간의 북핵 문제가 진행된 과정과 한국의 경제·군사적 역량에 비춰 한국의 국방적인 필요가 무엇인지 따져볼 때가 됐을 것이다. (핵무장 찬반) 논쟁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한국이 자체적인 핵무기 역량을 추구하는 것은 끔찍한 실수가 될 것이다. NPT 회원국인 한국의 핵무장 추진은 한·미 동맹은 물론 동북아 지역에 명백히 부정적인 파장을 낳을 것이다. 한·미 간 확장억제 강화 협의나 역대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자체적인 국방력 강화 등 한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더 나은 수단이 있기 때문이다.”

-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북한 문제는 바이든 정부의 우선순위에서 밀린 것으로 보인다.

“물론 지금은 유럽의 상황이 최우선 순위일 것이다. 하지만 북한 문제에 대한 관심이 크고 작고는 문제가 아니다. 모든 역대 미국 대통령들이 북한에 관심을 쏟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데 북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도 결과적으로 잘되지 않은 적도 있다. 핵심은 미국 정부는 한·미 동맹과 한반도 상황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고 이에 주목할 역량이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북한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에 기반해 추진해왔고, 어떤 면에서 미국은 북한보다 한국에 더 많이 주목하고 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 윤석열 정부가 ‘담대한 구상’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수용하지 않고 있다.

“솔직히 담대한 구상의 구체적 내용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했다. 역대 한국 정부마다 북한에 어떤 종류의 미래를 제시하려고 노력했고, 북한의 경제·에너지 분야 발전을 위해 한국이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서 제시했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은 경제적 기회가 정권 안정과 생존에 미칠 영향에 대해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기엔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역대 한국 정부의 대북 접근에 공통점이 더 많다. 한반도 화해라는 끝나지 않은 과업에서 진전을 만들어내려는 의지가 한국 정치 시스템 안에 내재된 게 아닐까 한다. 북한 문제에선 ‘전략적 인내’와는 다른 종류의 참을성, 장기적 관점이 필요하다.”

- 한·미관계 최대 쟁점으로 부상한 IRA를 어떻게 평가하나.

“우선 이 법이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서 통과됐다는 점을 말해둔다. 변호사나 로비스트들조차도 세부 내용을 잘 몰랐던 것으로 안다. 매우 포괄적인 내용의 법안을 검토한 사람들은 이 법이 배터리·태양광·전기차 분야의 경쟁력 있는 한국 기업들에 새 기회를 제공하고, 양국 경제협력 관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법은 한국과의 FTA 협상 당시의 (자유무역) 틀에서 다소 벗어난 산업정책의 일환이다. 특히 미국 내 전기차 생산을 위해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한국 기업에 분명히 불리하게 작용하는 조항도 담고 있다. 이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미 정부와 의회도 한국의 불만 그리고 이 법이 한·미 FTA상 무역 관계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전기차, 청정에너지는 양국과 세계의 미래에 매우 중요한 문제다. IRA가 일종의 과속방지턱일 뿐 공동으로 해법을 모색하기를 기대한다.”

- 바이든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짙어지고 있단 우려가 나온다.

“지난 10년 사이 미국 내 정치적·대중적 정서가 점점 더 보호주의로 쏠리게 된 것은 사실이다. 이런 흐름이 당장 바뀔 것 같진 않다. 수출의존형 경제인 한국과 달리 미국에선 대통령이나 심지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무역이란 단어를 별로 쓰지 않게 됐다. 무역이 정치적으로 약간 불편한 문제가 됐다. 이 또한 지나가겠지만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미국은 입장이 비슷한 나라들과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 바이든 정부는 ‘규칙에 기반한 질서’가 가져올 이익에 대해서 한국, 일본, 호주, 유럽연합(EU) 등 파트너들과 더 긴밀하게 소통하기를 권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8월1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인플레이션 감축법에 서명한 뒤 이 법안을 주도한 조 맨친 상원의원에게 펜을 건네고 있다. 워싱턴 | AP연합뉴스

- 이런 상황에서 한·미 동맹의 ‘경제·안보 동맹 격상’이 가능할까.

“한국 기업들이 미국 내 투자를 통해 미국에 확고한 약속을 했듯이, 미국 역시 한국에 대해 그렇게 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볼 때 한·미의 경제, 기술 파트너십은 굳건해질 것으로 본다. 지금은 한·미 FTA 원칙에 기반한 경제 관계가 재배열되고, 양국이 함께 구축한 규칙에 기반한 질서가 조정되는 시기다. 이 과정에서 일부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그래서 양국 정부나 기업 간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 대만 유사시 미국이 주한미군에 모종의 역할을 기대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대만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가 무력으로 대만 통일을 시도하는 재앙적인 결정을 할 것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잘못된 셈법을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한국에도 상당한 도전이 될 것이다. 주한미군 문제는 2006년 전략적 유연성 합의에서 (주한미군의 분쟁 개입과 관련해) 한국인의 의지를 따르도록 한 것에 기반해 논의될 것이다. 한국의 안보와 관련해선 대만해협에서 분쟁이 일어날 경우 평양이나 베이징이 어떤 행동을 취할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 한·미·일 3국 협력을 강조하는 미국이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까.

“미국이 정부나 민간 차원에서 역할을 하려고 했고 어떨 땐 도움이 되지 않은 때도 있었던 것 같다. 어렵지만 미국은 한·일 간 공통분모를 찾기 위해 중재 역할을 해야 하는 일정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동맹인 일본과 한국이 너무나 오랫동안 머물러 있는 것은 지켜보기 고통스러운 일이다. 진전이 만들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워싱턴 | 글·사진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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