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브릿지> 헤밍웨이 "피츠제럴드는 주정꾼·바보·겁쟁이"
[EBS 뉴스]
이혜정 앵커
세상을 연결하는 뉴스, 뉴스브릿지입니다.
20세기 미국 최고의 작가로 불리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그의 미출판 작품들이 얼마 전에 공개돼 화제를 모았습니다.
오늘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이승복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 나눠봅니다.
어서 오세요.
방금 얘기한 헤밍웨이의 미출판 작품들, 펜실베이니아주립대가 공개를 했습니다.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을까요?
이승복 교수 /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네, 얼마 전 뉴욕타임즈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지난 달 21일에 펜실베이니아 주립대가 헤밍웨이의 자료를 정리하다 4편의 단편 소설과 원고 초안, 개인 메모, 사진 수백 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 자료들은 헤밍웨이가 자신의 즐겨 찾았던 술집에 맡겨놨었는데,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치고 오랫동안 창고에 보관되었습니다.
그러다 수년 전에 헤밍웨이의 오랜 친구였던 토비 브루스의 아들인 벤저민 브루스가 역사학자 등과 함께 물품 목록을 작성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는데요.
벤저민은 2017년 NYT와 인터뷰에서 "수집품이 영구적으로 보관될 곳을 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고 펜실베이니아주립대 측이 지난해 이를 구입했습니다.
구체적인 금액은 밝혀지지 않았고요.
이혜정 앵커
얼마인지도 궁금하네요.
그중 특히 주목받고 있는 한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주인공 이름이 바로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의 이름에서 따온 소설이라는데, 그건 어떤 내용인가요?
이승복 교수 /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그것은 3장 분량으로 소설이라기보다는 짧은 이야기인데요.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피츠제럴드라는 권투 선수가 시합을 한 후의 모습을 그렸는데 상대 선수에게 맞아서 코가 부러지고 두 눈이 검게 멍들 정도로 힘들게 경기를 했지만 결국 이겼다는 내용입니다, 아주 짧은 이야기입니다.
이혜정 앵커
권투선수 피츠제럴드가 얻어맞았다, 이런 내용인가봅니다.
원래 헤밍웨이와 피츠제럴드의 관계, 어떤가요?
이승복 교수 /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아주 재밌는 관계예요, 애증의 관계라고 할까요?
방금 설명드렸던 이야기는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쓴 것입니다.
헤밍웨이는 1929년에 몰리 캘러헌이라는 캐나다 소설가와 정식으로 권투 경기를 벌입니다.
그 경기에서 우세하게 경기를 이끌다 힘이 빠진 추가 시간에 결정타를 맞고 KO패를 당하죠.
그런데 이때 심판을 보면서 추가 시간을 준 사람이 피츠제럴드였어요.
헤밍웨이는 당연히 자존심이 상했고 피츠제럴드를 비난했죠.
나중에 캘러헌이 자신의 작품에 이 일에 대해 쓰기도 했습니다.
이혜정 앵커
이렇게 두 사람의 관계가 좋지 않았던 이유가 있을까요?
이승복 교수 /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헤밍웨이 입장에서는 자신이 모든 면에서 피츠제럴드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1939년에 맥스웰 퍼킨스라는 편집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항상 피츠제럴드에 대해 어린 꼬마가 또래 꼬마에게 가질 만한 우월감을 느낀다고 했는데, 다부진 꼬마가 연약하지만 재주 있는 꼬마를 비웃는 듯한 그런 우월감이라고 말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에게 상당한 호감을 가졌는데 헤밍웨이는 그렇지가 않았나봐요.
처음 만났을 때 헤밍웨이는 피츠제럴드가 남자치고 너무 예쁘게 보여 충격을 받았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피츠제럴드를 묘사할 때 술주정꾼, 바보, 여자 같은 남자, 겁쟁이, 수다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고요.
헤밍웨이는 특히 피츠제럴드가 술에 취했을 때 행동에 몹시 불쾌해했는데, 어느 정도인가 하면 헤밍웨이 부부가 파리에 살았을 때 피츠제럴드가 술에 취해 집에 찾아올까 봐 집 주소를 알려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혜정 앵커
피츠제럴드가 상처를 많이 받았겠습니다.
이승복 교수 /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무엇보다도 둘은 기질이 안 맞았어요.
여러모로 대조적입니다.
성격이나 외모, 그리고 특히 글 쓰는 스타일이 완전히 달랐죠.
피츠제럴드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은 헤밍웨이에게 은인이죠.
무명이던 헤밍웨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면서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가 출간되도록 도우며 헤밍웨이의 작품에 도움말도 많이 주었습니다.
피츠제럴드를 통해서도 둘의 관계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피츠제럴드는 1925년부터 둘의 만남을 기록했는데, 1929년에서 1940년까지 네 번 만났을 뿐이고, 1926년부터는 사실상 친구가 아니라고 적은 걸 보면 둘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혜정 앵커
네, 재미있는 관계입니다.
다시 헤밍웨이로 돌아와서, 헤밍웨이는 어떤 사람이었고, 그의 삶이 작품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지 궁금합니다.
이승복 교수 /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헤밍웨이의 삶이 작품에 영향을 끼친 것은 분명하고, 자전적인 요소가 반영된 작품들이 많습니다.
'무기여 잘 있거라', '킬리만자로의 눈', '노인과 바다', 그리고 닉 애덤스라는 소년을 주인공 세운 여러 편의 단편 소설처럼 자신이 직접 경험했거나 머무르던 곳을 소재로 삼은 작품들이 많이 있어요.
그리고 헤밍웨이하면 남성적인 면모를 강조하는 마초적인 이미지를 떠올리는데요.
실제로 사격이나 복싱, 사냥 등 격렬하거나 위험한 육체적인 활동도 중시해서 작품에 그런 활동이 적지 않게 묘사가 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자로서의 경력이 헤밍웨이의 작품 활동에 아주 큰 영향을 주는데요.
기자 생활을 하다 보니 글을 쓰는 스타일 자체가 신문 기사처럼 군더더기 없이 굉장히 건조합니다.
이런 스타일을 hard-boiled style, 즉 감정을 담지 않은 문체라고 합니다.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나 판단을 철저히 배제하고 사실만을 다루는데 주로 대화를 통해 짤막하게 쓰였기 때문에 독자들은 문장이나 단어 뒤에 숨은 뜻을 찾아 읽어야 합니다.
헤밍웨이의 작품을 보면 어려운 단어는 없어도 의미를 찾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이혜정 앵커
그런 특징이 있네요.
헤밍웨이의 작품을 두고 '허무주의'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봤습니다.
'허무주의'가 무엇인지, 또 헤밍웨이의 작품이 어떤 면에서 그런 평가를 받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승복 교수 /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허무주의를 간단히 설명드리면 기존의 가치체계와 권위를 부정하는 태도, 다시 말해서 세상의 모든 진리나 인간의 삶이 헛되고 의미가 없다는 태도를 말하는데 서구에서는 1차 세계대전의 영향이 큽니다.
전쟁이 끝나고 기존 질서나 가치관이 무너진 상황에서 삶의 방향을 잃어버린 세대들이 사는 것에 대해 허무함을 느끼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헤밍웨이의 작품 중 '무기여 잘 있거라'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같은 소설이 이런 분위기를 잘 포착했습니다.
이혜정 앵커
'노인과 바다'는 노벨상을 받기도 했고요.
계속 말씀해주신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같은 작품도 너무나 유명하고 중요한 작품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죠.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미국 문학에서 어떤 위치에 있을까요?
또 후대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이승복 교수 /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헤밍웨이는 윌리엄 포크너와 함께 20세기 미국 소설계를 대표하는 작가입니다.
물론 두 작가 모두 노벨상도 받았고요.
미국 문학사에서는 헤밍웨이, 윌리엄 포크너, 피츠제럴드를 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3인방으로 꼽는데, 대중적인 인기나 영향력에서 헤밍웨이가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후배 작가들이 본받고 싶은 작가로 가장 많이 꼽는 작가가 바로 헤밍웨이였습니다.
이런 이유들로 미국 문학계에서는 20세기의 미국 소설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작가로 평가합니다.
이혜정 앵커
그렇다면 헤밍웨이의 이번 미출판 작품, 공개된 이번 작품이 미국 문학사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마지막으로 한번 여쭙겠습니다.
이승복 교수 / 숭실대 영어영문학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일화나 특정 작품에 대한 집필 동기 등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 연구에 다양한 시각을 제공해 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혜정 앵커
네, 미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작가죠.
피츠제럴드와의 관계부터, 이렇게 메모로 글까지, 역시나 마지막까지 흥미로운 작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교수님, 오늘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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