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완산에서 한지문화와 함께 꽃핀 '완판본' 맥 이어야죠"

박임근 2022. 10. 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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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전주 완판본문화관 안준영 관장

전주 완판본문화관 안준영 관장. 완판본문화관 제공

“기록문화라는 소중한 자산을 보유한 전주에서 생산한 완판본을 보전하고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

전북 전주시 한옥마을에 위치한 완판본문화관의 안준영(64) 관장의 소신이다. ‘완판본’은 전주의 옛 지명인 ‘완산’에서 출판한 옛 책과 그 판본을 말한다. 완판본문화관은 전주지역에서 생산한 각종 출판유산을 보전하고, 기록문화의 산실이었던 전주의 역사·문화를 재조명하기 위해 2011년에 문을 열었다. 그는 2017년부터 관장을 맡고 있다.

오는 16일까지 열고 있는 <완판본과 떠나는 전주 서포(옛 서점) 여행> 전시를 계기로 안 관장을 지난 2일 전화로 만났다.

‘완판본과 떠나는 전주 서포’ 전시중
조선시대 민간 출판한 ‘방각본’ 위주
10년 작업해 찍어낸 ‘심청전’도 소개
‘대장경문화학교’ 수강 제자 등 복각

21일부터 ‘동의보감’ 완영본 특별전
“복간 너무 방대해 지자체 지원 절실”

전주 완판본문화관의 서포에서 지난 2일 안은주 학예실장이 2017년 완성된 ‘완판본 심청전’ 복각 목판을 소개하고 있다. 박임근 기자

이번 전시는 조선시대 ‘방각본’을 중심으로 소개하고 있다. 전라감영에서 발간한 완영본과 달리, 방각본은 ‘조선시대 민간의 출판업자가 판매를 목적으로 출판한 책’을 말한다. 지역방(坊)에서 발행됐고 목판으로 새겨(刻) 책을 간행했기에 방각본으로 불린다. 주로 한자 학습, 상례와 제례, 역사 등과 관련한 교양서적과 고전소설을 간행했다.

방각본은 영리를 목적으로 간행했기 때문에 대중적인 기호에 맞는 책을 만들어 냈고, 자연히 대중과 긴밀한 연결을 갖고 있는 소설로 이어진다. 조선후기 전주에는 전주성 남쪽에 해당하는 남문시장 주변에 서계서포, 다가서포, 완흥사서포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역에 따라 서울의 경판본, 경기 안성 안성판본, 전주 완판본 등으로 구별해 지칭했다. 완판본은 종류와 규모에서 최고로 알려져 있다. 배경은 전라도·제주도를 관할하던 전라감영에서 출판물을 많이 만들었고, 책 제작을 위한 한지가 전주의 특산품으로 대량 생산된 덕분이었다. 전주시가 지난해 4월 ‘책의 도시’를 선포하고, 시민들이 독서를 편리하게 즐길 수 있도록 책놀이터와 이색도서관을 확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완판본 목판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목판을 제작하는 기술인 판각 기능의 전수도 이어지지 않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안 관장은 대장경문화학교를 운영했고, 완판본 맥 이어가기 전통 판각 강좌 등을 진행했다. 14기를 거쳐 400여명을 배출했다고 한다.

“전주는 조선시대 민간 출판이 많았습니다.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인데 그 기능들이 사라져 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제가 판각 기술을 가르친 이유입니다. 지방정부 등은 이를 계승·발전시킬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대학교 국문과 교재와 각종 상장 등에 활용하면 한지산업과 함께 전주가 새로운 출판산업을 일으킬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대목은 2017년에 완성한 ‘완판본 심청전’ 복각 목판을 전시한다는 점이다. 그해 9월 한글날 571돌을 앞두고 목판 복각 출판기념 특별전시 <100년 만에 핀 꽃, 완판본 심청전>을 열기도 했다. 안 관장의 제자들이 10년 작업 끝에 목판 36판을 복원해낸 것이다. 산벚나무를 가로 52㎝, 세로 27㎝, 두께 5㎝ 크기로 잘라 일일이 글자를 새겼다. 그렇게 완성한 목판으로 찍은 <심청전> 상·하권 71장이 책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내년에는 제자 20여명이 참여해 만드는 목판 <천자문>이 완성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대 젊은 시절 합천 해인사에 우연히 들렀다가 <고려대장경>을 보고 깜짝 놀란 뒤, 목판 문화유산의 복원과 판각·고인쇄 분야 전문인력 양성 등을 위해 힘써왔다.

오는 21일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동의보감>의 가치와 전라감영에서 간행됐던 완영본의 의미를 함께 알리는 특별한 전시도 계획하고 있다. 애민정신이 깃든 동의보감을 활용·홍보하는 사업의 하나인 이 전시에서는 판각을 활용한 다양한 기록문화를 체험할 수도 있다. 그는 “전주에서 발간한 동의보감의 옛 목판은 전북대 수장고에 일부가 남아있다. 하지만 분량이 방대해 목판 900여장을 복각을 하는 작업의 추진은 개인이 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지방정부 등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300년 가량이 지나면 잉크가 사라져 책 보관이 어렵습니다. 하지만 한지에 우리 전통기술로 찍어낸 서책은 천년이 가도 멀쩡합니다. 지구상에서 제일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게 우리 기술입니다. 과거가 없는 민족은 문화유산의 가치를 모릅니다. 새로운 창작을 위해서라도 뿌리가 분명이 있어야 하고, 그래야 그 가치도 높아집니다.” 박임근 기자 pik00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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